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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시대의 한일관계 어떻게 푸나?

20일 자민당 총재 선출에 이어 26일 새 일본 총리로 선출

 

아베 일본 총리 탄생의 일등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설명 :새 일본 총리로 취임하게 될 아베 신조 장관

오는 20일이면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 총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26일 치러지는 총리 선거를 통해 아베는 정식으로 새 일본 총리로 선출되게 된다. 물론, 자민당 총재선거는 물론, 일본 총리선거에서 다른 후보들과 경합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지만 자민당 의원들의 약 70%가 아베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일본 의회의 60% 이상을 자민당 연립정권이 점유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와같은 두번의 선거는 사실상 '아베 총리 탄생'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1954년 9월 21일생인 아베는 공교롭게도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그 다음날 52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야말로 일본 국민들이 '자민당 총재와 새 일본 총리 선출'이라는 두가지 생일 선물을 동시에 안겨준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대와 70대 정치인들이 득실거리는 일본 정치권에서 52세의 총리는 전후 최연소 총리에 해당된다. 종전까지는 만 54세에 총리직을 차지한 일본 정가의 전설적 존재인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가 최연소 기록이었다. 

 그러나, 다나까와 아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기시(岸)-이께다(池田)-사또(佐藤) 등 3명의 총리 하에서우정상(郵政相, 체신부장관), 통산상(通産相, 산자부장관), 대장상(大藏相, 재경부장관), 자민당 간사장(幹事長, 내각의 2인자) 등을 역임하여 총리로 선출된 다나까와 달리 아베의 경우 관방장관 이외에는 특별한 경력이 없다. 더욱이 국회의원 당선도 29세 약관의 나이로 당선된 다나까보다 10년 늦은 39세였다. 다시말해 다나까가 20대 후반부터 정치가로 성장하는 가운데 요직을 두루 거쳐 총리에 오른 반면, 아베는 고이즈미 내각 하에서 벼락 출세를 한 셈이다.

 이와같은 아베의 '벼락 출세'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강력한 행정개혁'과 '할 말을 하는 일본외교'라는 양대 슬로건을 내건 고이즈미 입장에서 자신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할 '강력한 뉴리더'가 필요했고, 그 조건을 아베 신조가 정확하게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군국주의 내각의 각료를 지냈음에도 자민당의 비주류에 머물렀던 고이즈미와 달리 아베는 철저하게 일본 정치의 성골(聖骨)로 자리매김해왔다. 

 1980~90년대 일본 정치의 대표적 온건파이자 지한파(知韓派)였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가 그의 아버지이며, 기시 노부스께(岸信介) 전 총리의 딸이 어머니이다. 또한, 아시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꾸(佐藤榮作)가 숙부이다. 그야말로 아베 가문 자체가 전후 일본정치의 주류세력을 그대로 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최대의 낙농제품 기업인 모리나가유업(森永乳業) 창업자 모리나가 타이헤이의 외손녀와 결혼하여 재계와의 인맥도 두텁다.


 이러한 아베의 막강한 '배경'이 그의 벼락 출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결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꾜(東京)-와세다(早稻田)-게이오(慶應)로 불리우는 3대 명문학교 출신이 아닌데다 재무관료나 외교관 등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집안이 막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벼락 출세'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베를 정치적 스타덤에 올려놓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납북 일본인 문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처음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부각되었고, 후꾸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의 가파른 상승세로 지지율이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때마침 김정일 위원장 일본열도를 향해 미사일을 쏘아줌으로써 완전히 승세를 굳힐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의 절묘한 어시스트로 사실상 역전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후꾸다 전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곧바로 차기 총리 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였고, 이로서 아베는 '무혈입성'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베 시대를 맞이한 일본...고이즈미 내각과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러나, 아베 앞에 놓여있는 길이 그리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도전이 만만치가 않다. 더욱이, 정권교체를 위한 '올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오자와 이찌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가 '아베 총리 탄생'을 내심 기대해왔다는 것이 이와같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자와는 중도온건파인 후꾸다보다 정통보수파인 아베와의 진검승부가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 내년에 있을 참의원 선거와 후년에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를 꿈꾸고 있다. 


 정치적 상황도 아베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다. 각종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리더쉽 붕괴로 사실상 당 운영 및 개혁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던 고이즈미와 달리 아베의 경우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 오히려 운신의 폭은 좁아진 측면이 있다. 다시말해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당이 사실상 몰락했던 상황에서 그의 당운영에 간섭할 여력을 가진 세력이 거의 없었던 반면, 아베의 경우 여러 계파의 지지는 물론, 자민당 소속의원 상당수가 '현상유지'를 바라며 그를 지지했던 탓에 자신만의 '개혁 색깔'을 내기가 그만큼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첫 내각의 진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있어서 벌써 심각한 내홍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압도적인 지지로 인해 총리로 선출되는 만큼 자민당내 어지간한 중진 의원들은 모두가 스스로를 '아베 총리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총재 지명 을 이틀 앞둔 이 시간까지 내각 구성에 있어서 거의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총재 지명과 함께 내각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던 그동안의 관행도 이번에는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만큼 심각한 난항 양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아베 역시 오자와가 이끄는 민주당을 의식한 정치행보를 할 수 밖에 없다. 5년의 임기가 보장되는 한국의 대통령제와 달리 일본은 총리의 임기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비록 이번에 새 일본 총리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내년 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패배할 경우 아베는 자민당내에서 심각한 '퇴진 압박'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2008년 치러지게될 중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에는 정권이 교체되어 총리직에서 중도하차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아베는 두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즉, '강한 일본',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일본'을 현실화함으로써 정통 보수층의 기대에 부응해야 함은 물론, 한국-중국-러시아 등 이웃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동시에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해온 '행정개혁' 및 '지방개혁' 정책을 계승함으로써 중도온건 성향의 유권자들도 끌어안아야만 한다. 그런 가운데 '야스쿠니 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등 보혁대결 양상을 보일 수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능수능란한 '속도조절'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아베가 이끌게 될 일본 새 내각에 대해 현재 상황에서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참의원 선거와 중의원 선거가 모두 향후 2년내에 잇따라 치러지도록 되어있어 아베는 그만큼 자신의 색깔을 내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오자와 민주당 대표가 자민당내 비주류 세력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인적 구성에 있어서 자기 사람을 심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와는 달리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다찌 쇼오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차관이 유명환 외교부차관에게 이와같은 아베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재임기간중 공식적인 참배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급적 '정치적 공세'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신조 시대의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아베 시대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까? 공교롭게도 아베 내각이 본 궤도에 오르게될 내년에 한국은 대선 정국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아베는 한국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과도 지속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년 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는 상당한 친밀함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 손학규 전 지사, 고건 전 총리 등도 금년 혹은 내년 중에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들 역시 아베와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다.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베 내각이 급격한 보수화 및 군국주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의원 선거와 중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보수층에게로 '올인'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고이즈미가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만이 아니다. '우정성 민영화'라는 강력한 개혁 카드를 들고 나왔기에 보수층과 중도개혁층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아베는 아직까지 정치적 리더로서 검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리더쉽에 대한 아킬레스鍵이 해소될 때까지 자신의 '색깔'을 앞세워 강력한 보수주의로 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바로 이와같은 점에 있어서 오는 2007년은 아베는 물론, 한국의 대권주자들 모두가 2008년 이후의 한일관계를 놓고 치열한 탐색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헌법 개정'에 대해 "최소한 5년 정도는 소요될 것"이라는 아베의 발언 역시 이와같은 맥락 속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외교무대에서 아베가 아직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강력한 우호관계로 인해 동북아 이웃국가들과의 마찰을 상쇄시켜온 고이즈미 총리와 달리 아베의 경우 대미관계에 있어서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확실하게 각인시켜야만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그것이 확고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중국-러시아와 잇따라 마찰을 일으킬 경우 그의 리더쉽은 외교에서 가장 먼저 무너질 수도 있다. 오는 11월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큰 산을 넘으면 곧바로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베가 여러가지 난제를 모두 해결하여 내년 참의원 선거와 2008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압승으로 이끌게 될 경우 그의 '보수본색'은 매우 강력하게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아베를 강력한 리더로 인정한 일본사회는 '헌법개정'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또한번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행보도 여전히 아베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계속 남아있는 한 아베는 그만큼 큰 명분과 리더쉽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핵실험이나 동해에서의 무력도발 등 일본 국민들이 안보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될 경우 아베의 지도력은 탄탄해져 이것 하나만 갖고도 선거를 잇따라 압승으로 이끌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아베를 고이즈미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냐 아니냐의 열쇠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코리아(up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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