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범여권의 정치 판도를 흔들어 놓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2일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것과 정치 세력화가 양립하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오전 경제학부 전공 수업인 `경제학연습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사는 데 몇 가지 도덕적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과 정치 세력화가 양립하기 쉽지 않았다"며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그는 "양립할 수 있었다고 해도 정치 세력화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라는 말도 덧붙였으나 정치권에 대해서는 "불출마 선언문에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 있다"라며 "그만 둔 마당에 무슨 할 얘기가 있겠나"라고 말을 아꼈다.
정 전 총장은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장 시절을 담은 기록도 정리하고 화폐금융 등 전공에 관한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내겠다. 정년이 5년 가량 남았으니 교수를 계속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7일로 예정된 충북대 특강의 경우 "그쪽에서 오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가겠다"라고 말해 특강 행보를 계속할 뜻을 보였다.
한국야구연맹(KBO) 명예총재를 지낼 만큼 `야구팬'으로 소문난 그는 "18일에 학생들과 함께 두산-기아전이 열리는 야구장을 갈 계획이다. 야구와 관련된 책도 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잿빛 정장에 파란색 셔츠를 받쳐 입은 정 전 총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류 가방을 든 모습이었지만 지난달 30일 공개적인 불출마 선언으로 그동안 자신에게 가해졌던 여러 압박과 수많은 추측에서 자유로워진 듯 홀가분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주변에서 아쉽다는 연락도 많이 오고 있지만 정치 행보를 내켜 하지 않던 딸을 비롯한 가족은 (불출마 선언을) 좋아했다. 나 자신도 후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매주 하던 수업인데 특별할 것 없다"는 말에서 짐작되듯 정 전 총장은 동료 교수와 약속을 잡고 서울대 출입기자들과 부담 없는 회식을 갖기로 하는 등 `서울대 교수 정운찬'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정 전 총장의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수업을 듣는 한 경제학부 학생은 "정 전 총장은 월요일에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라고 밝혔었다. 교수로서 학교에 더 남아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더 뵐 수 있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도 "시기가 좋지 않을 뿐더러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대권 경쟁에 뛰어들면 다칠 수 있다.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며 정 전 총장이 학자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