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권력자 이문열을 맹공격했던 여자 돌쇠 전여옥
‘여자 돌쇠’, 인물비평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에게 붙여준 닉네임이다. 물론 이는 전 의원이 정계에 진출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나 칼럼니스트 전여옥이나 정치인 전여옥이나, ‘여자 돌쇠’라는 닉네임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한 바는 없다.
전여옥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이나 유시민에 버금갈 정도로 극단적으로 갈린다.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거의 증오 수준이고, 보수진영이라 할지라도 다들 긍정적 평가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의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정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의 최측근이라 불리던 전여옥의 180도 다른 행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박근혜 캠프에서는 이명박 대세론에 기승하기 위한 배신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전여옥의 과거 행보를 기억해보면 그렇게 정략적으로만 평가할 부분이 아니다.
전여옥 하면 으레 보수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그러나 전 의원은 1997년 이문열의 가부장제 예찬 소설 <선택>에 대해 “주인공 장씨 부인은 매춘부에 다름없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이문열 측은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노발대발했었다. 표현의 수위나 내용을 떠나, 전여옥이 당시만 해도 보수진영 최고의 문화 권력자 이문열에게 직설적인 공격을 한다는 건 정략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포털과의 싸움을 시작한 최초의 정치인 전여옥
정계에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 의원이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였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전 의원은 탄핵 직후 유시민 현 보건복지부 장관과 노무현 인큐베이터론으로 서슬퍼런 논쟁을 벌였다. 유 장관이 “노대통령은 시대가 낳은 미숙아”라 하자, 전 의원 곧바로 “미숙아는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야 합니다”라며 맞받아쳐, 노빠들의 원한을 사게 된 것이다. 이 역시 표현의 수위나 내용을 떠나, 탄핵 직후 전 방송과 인터넷에서 탄핵반대의 물결이 출렁일 때, 혈혈단신으로 공중파 토론에 나서 노대통령을 공격한다는 건 웬만한 배짱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국회의원들도 토론하자면 다들 도망다녔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전 의원은 정계 진출 이후 정치인 중 그 누구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거대 포털과의 싸움을 시작하기도 했다. 네이버의 제목 조작에 항의하며 민사소송을 내어 포털의 언론권력에 관한 첫 판례를 승소로 이끌어냈다. 마치 개혁과 진보를 위해 선택받은 인물들처럼 행동하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포털 문제만 대하면 혼비백산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전여옥의 배짱은 여기서도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전여옥은 박근혜의 최측근인 적이 없다
전여옥이 정치에 들어온 이유는 탄핵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초토화될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라 밝혔다. 그 당시 전 의원은 당 대변인을 맡아 박근혜 전 대표를 보좌하며 총선 현장 곳곳을 누볐다. 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팬이 된 것도 이 당시부터였다. 오직 당의 재건을 위해 1분 1초라도 아껴 유세를 다니는 박 전 대표의 모습에서 숙연함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120여석을 건져 당이 살아난 뒤 당 일각에서 박근혜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전여옥은 남성 의원들의 배은망덕함에 또 다시 울분을 토했다. 이 점 때문에 당 내외적으로 전여옥이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측면이 있다.
전 의원이 지난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최고위원에 당선되었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최전방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전여옥 의원 측에서는 “전당대회 결과 대의원 표보다 여론조사 표를 훨씬 더 높이 받았다. 나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라며 이런 관측을 부인했다. 한 마디로 박근혜에게 빚진 게 없다는 말이다.
전 의원은 이번 재보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당 지도부의 공천 불혐화음이 패배를 자초했으니, 당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이다. 박근혜 측의 도움으로 당선된 강재섭 현 대표에게 물러나라는 요구나 다름없으니 박근혜 측에서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전 의원이 박근혜 측을 맹비난한 것도 이러한 당내 권력 관계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전여옥의 신념과 원칙, 한나라당을 살려낼까
한 정치인의 특정 발언을 분석할 때, 그 정치인이 그간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최근 10년 간 전여옥은 본인의 신념과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그 신념과 원칙이 과연 보편타당할 정도로 올바른 것인지는 추후에 논의하더라도, 최소한 자기기만과 위선적 행태를 보인 적은 없다는 말이다.
전여옥은 평소에 늘 “한나라당이 집권하지 못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발언을 자주 한다. 전여옥 스스로의 판단으로 볼 때, 재보선 참패가 문제가 아니라, 그 뒤로도 정신 못차리는 한나라당이 이대로 집권이 가능한 것인지, 위험한 적신호를 읽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집권이 불안한 이유는 “과연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동안 못 해먹은 것 해먹으려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을까” 이러한 의심을 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여옥 의원이 사실 상의 박근혜와의 결별 선언 이후 보수단체에서는 전여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자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분명한 건 당직까지 그만둔 전 의원이기에 활동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한나라당 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원칙주의자 전여옥이 스스로 자초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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