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정부가 원-엔시장 재개설을 검토하고도 끝내 개설하지 않기로 한 정황이 그렇다.
정부가 원-엔시장 재개설 얘기를 다시 꺼낸 건 지난 1월4일 '2007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였다.
당시 정부는 공식자료에서 "원-달러 외에 원-엔 등 이종통화시장의 개설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한 경제일간지는 지나치게 앞서간 탓에 "원-엔시장 재개설한다"는 기사까지 실어버렸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미 외환당국인 재정경제부는 원-엔시장 재개설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즈음 재경부 관계자는 "원-엔시장을 만들어도 실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3개월 간의 검토를 거쳐 나온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재경부는 10일 "원-엔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 수요와 공급이 매우 부족하다"며 원-엔시장을 재개설 않겠다고 공식발표했다.
그런데도 재경부가 지난 1월 당시 "원-엔시장 재개설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던 까닭은 뭘까?
재계의 요구가 적잖게 작용했다. "원/엔 환율 하락 때문에 기업들의 부담이 큰데, 원-엔시장이라도 만들면 좀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대기업 계열의 경제연구소들도 재계의 요구에 힘을 실었다. "원/달러, 엔/달러 시장만 있어서 원/엔 환율이 왜곡되니 원-엔시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보고서가 잇따랐다.
결정타는 국회였다.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왜 원-엔시장을 재개설 않느냐"며 재경부를 몰아붙였다. 재경부가 아무리 "유동성이 부족해 어렵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재경부가 꺼낸게 '전면 재검토' 카드였다. 물론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외환시장을 주도하는 은행 딜러들은 하나같이 "실효성이 없다"는 답만 되뇌었다.
재경부는 원-엔시장 재개설의 필요성을 주장한 연구소의 해당 연구원과도 만났다. 그 연구원 역시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는게 아니고,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정도의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기업들을 상대로 수출대금 가운데 엔화로 결제되는 비중을 살펴봐도 5%를 넘지 않았다. 수입대금에서도 엔화 결제 비중은 10%에 그쳤다. 당장 실수요부터 확보되지 않는 셈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원-엔시장 재개설의 실효성이 낮다는게 기존의 판단이었지만, 국회 등에서 워낙 강하게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검토라도 해보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두고 검토를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1997년 유동성 부족으로 원-엔시장이 사라진 뒤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제대로 한번 검토해 볼 때도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원-엔시장 재개설 논의는 시장논리에 어두운 일부 국회의원과 그 등쌀에 떠밀린 재경부 등이 낳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이상배기자 p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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