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시장'을 추구하는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FTA가 발효되고 한국과 미국이 '단일 시장'으로 묶이면 국내 독과점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 한결 수월해질까.
지금까지 시장점유율이 높은 독과점 기업들은 '경쟁제한성'을 이유로 동종업체 인수에 제약을 받아왔다. 예컨대 시장점유율 63.5%(2006년)로 국내 승용차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는 현대차그룹(기아차포함)의 경우 지금은 승용차 업체 인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양국간 관세철폐를 전제로 한국과 미국을 단일시장으로 보고 계산하면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미 FTA 시대를 맞아 독과점기업들이 그 '멍에'에서 벗어나 동종기업을 쉽게 인수할 수 있을 지가 관심거리다.
정답은 '대체로 그렇다'이다. 다만 분야마다 다를 수 있다. 기업이 M&A를 원할 때 시장을 나누고(시장획정), 경쟁제한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이다. 공정위의 입장은 "한·미 FTA가 발효돼 양국간 관세가 사라진다고 무조건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을 단일 시장으로 볼지 여부를 가리는 핵심 기준은 따로 있다. 바로 '소비자의 행태'다. 이를테면 현대차가 우리나라에서 승용차 가격을 대당 100만원 올릴 경우 소비자들이 현대차 대신 미국산 승용차(일본·유럽계 포함)를 선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가 관건이다.
만약 현대차의 가격인상시 소비자들이 즉각 미국산 차로 발길을 돌린다면 한국과 미국 승용차시장은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자연스레 현대차의 시장점유율도 대폭 낮아진다. 반대로 현대차가 가격을 대폭 올려도 소비자들의 선택에 별 변화가 없다면 한국과 미국은 하나의 시장으로 보기 힘들다.
승용차의 경우 단일 시장으로 인정받을지 여부는 예단하기 힘들다. 공정위도 유보적이다. 김재중 공정위 기업결합팀장은 "국산차 가격이 다소 오를 때 즉각 미국산 차의 수요가 늘어날지 여부에 대해서는 분석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미국산 승용차는 대개 고급 중대형 차량이어서 중소형 중심의 국산 승용차시장과 구분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의 경우 미국과 단일 시장으로 취급될 공산이 크다. 치약의 경우 한·미 FTA 발효 후 3년에 걸쳐 관세 8%가 철폐된다. 값싼 소모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미국 제품을 시험삼아 구입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
만약 국내 치약시장의 독과점업체인 LG생활건강(점유율 44%·SK증권 추정)이 치약값을 10%씩 올린다면 미국산 치약으로 수요가 옮겨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LG생활건강 입장에서는 독과점 지위를 위협받는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치약시장 점유율을 낮게 평가받아 다른 치약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김 팀장은 "독과점 기업의 M&A에 대해 경쟁제한성을 심사할 때 시장 개방이 얼마나 이뤄져 있는 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며 "한·미 FTA로 개방폭이 확대되면 기존 독과점업체들의 M&A가 쉬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배기자 p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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