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으로 불리는 한국 신세대가수들이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시장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가수들이 일본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며, 본 조비나 롤링 스톤즈 같은 세계적 뮤지션들이 공연했던 도쿄돔에서도 한국가수들의 공연은 빈번히 이뤄진다. 과거 일본에서‘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히트시켰던 조용필과 일본식 엔카로 인기를 누렸던 김연자, 계은숙 등에 비해 훨씬 다양한 장르,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이전에 활동했던 한국가수들보다 훨씬 크다. 이에 비해 J팝이라 불리는 일본음악이 한국에서 거둔 성적은 어떠한가? 현재 한국에서 J팝은 여전히 낯선 장르다. 일본 포르노배우들 이름을 줄줄이 꿰고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일본가수 이름들은 아직 낯설다. 일본가수들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본노래는 한국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J팝은 절대 한국에 보급될 수 없어 보인다. 한국정부가 너무나도 견고한‘장벽’으로 J팝의 한국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허울뿐인‘문화개방’ 1998년 김대중 정권시절 일본과의 우호, 교류 증진을 위해
인터넷 상에서 일본을 찬양하고 한국을 비하했다는, 이른바‘친일카페’운영자가 13세 중학생으로 밝혀져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친일카페에 대한 폐쇄, 접속차단 등 강경책으로 맞서고 있다. 화제가 된 13세 소년은 태극기를 태운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여타 게시물 중에도“독립 운동가들은 조센진들의 광복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광복으로 천황폐하가 치욕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에 복수해야 한다”등 한국인들의 공분을 일으키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쥐새끼’라 욕해도 제재 안 받는데, 친일카페는 폐쇄?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하고자 한다. 친일카페 폐쇄라는 강압적 조치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다. 일본은 현재 외교적으로 볼 때 우리의‘우방국’이다. 그런데 우방국을 찬양하는 것이 왜 법적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중국이나 미국을 찬양해도 비슷한 처분을 받을까? 만약 한국에‘몽골찬양카페’가 생겨도 한국정부가 폐쇄조치를 취할까? 칭기즈칸을 찬양하며 무기력했던 고려정권을 비판하고, 공녀를 진상했던 고려왕들을‘고려의 딸들을 팔아먹은 자들’이라 비난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접속차단조치를 내릴까? 아마 그렇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간 외교 및 감정 대립이 심해진 가운데, 중국 역시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일본과의 마찰이 커지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언론은 경쟁적으로 상대방 국가를 비난했고, 정치가들은 국민들 박수를 받으려 과격한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각 나라 시위대가 보여준 모습들은 심히 유감스러웠다. 먼저 중국에선 시위대가 일본 브랜드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파손시키는‘화끈한’모습을 보여줬다. 일본 브랜드라고는 하나, 일본에 대가를 지불하고 중국에서 중국인이 사용하는 자동차는 분명‘중국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일본상표라는 점 때문에 자국자산을 파괴하는 행동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댜오위다오는 중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시위대가‘댜오위다오는 중국의 것’ ‘아오이 소라(중국서 인기 많은 일본 포르노 배우)는 세계의 것’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것과 완벽히 일치하는 수준의‘반일(反日)’이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이에 질세라‘과격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반일시위대가 일본제 오토바이 수입에 반대한다며 일본 메이커 오토바이를 모아놓고 불을 붙여 태워버린 것이다. 화재 자체는 물론 연소 시 발생되는 연기와 유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다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갑자기 뜬금없는 ‘다카키 마사오’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인터넷 포털에서는 갑자기 ‘다카키 마사오’라는 검색어 순위가 급등하고, 덩달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또하나의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알려진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이름까지 검색 랭킹에 등장했다. 이것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무책임하게 트위터, 인터넷 댓글을 양산하며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를 들고 나와 박정희와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소동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말을 퍼뜨리고 있는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박정희의 창씨개명이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느냐고 말이다. 그들의 대답은 뻔하다.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2001),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그리고 재미 언론인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1999), ‘김형욱 회고록’(1985),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의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14일 각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기사가 있다. "일본여성들 광복절 맞아 ‘위안부문제’ 진심으로 사과"란 제목의 기사였다. 수십 명의 일본여성들이 기모노(着物)와 한복을 입고, 손에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이 뉴스는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에 등장하며 대대적으로 노출됐고,“양심적인 일본인” , “당신들은 죄가 없다”, “일본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등 의견이 댓글 란을 채우며 독도 문제, 올림픽 욱일승천기 문제 등으로 흥분이 가시지 않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각 언론에선 미리 협조라도 한 듯이 그들의 사죄시간에 맞춰 카메라로 그 대견한 모습을 담아내기 바빴다. 사죄의식이 끝난 후 기자들은 일본인 대표에게‘한국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한 마디’를 기대하며 취재공세를 벌였다. 물론 그 일본인은 “우리의 사죄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를 씻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먼 이국땅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분들께 같은 여성이자 일본사람으로서 진심어린 사죄를 드린다”고 언론의 기대에 100% 부응하는 코멘트로 화답했다. 중요한 정보는 말하지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가 한일전 승리 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 그러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 올림픽 규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동메달 수여를 유보하고 조사에 착수, 한국사회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한국 측은 처음엔 ‘잘못은 했지만, 고의성이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분위기였지만, 곧 ‘일본에 대해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본 체조팀 유니폼이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인데, 침략전쟁의 상징인 욱일기는 왜 문제 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 한국사회는 욱일기에 성토일색 반응을 보이며 IOC의 불공정성에 비판이 시작됐다. 한국사회 절대 금기‘욱일기’ 욱일기에 사용되는 문양은 본래 중세일본 무인집안에서 사용되던 문장(紋章), 즉 ‘가문’(家紋)에서 유래됐다.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양한 형태의 버전이 존재한다. 이것이 변형돼 1870년 육군기로 정식 채용됐고, 이후 해군에서도 형태가 변형된 욱일기가 사용됐다. 그리고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을 거치면서 욱일기는 ‘군기’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한국
한국 남자유도의 올림픽 기대주였던 조준호 선수가 66kg이하 급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 선수를 상대로 패배, 4강 진출이 좌절됐다. 그런데 일본선수와의 이 8강전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상황을 다시 돌아보자. 양 선수 모두 팽팽한 접전을 펼치면서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났고, 연장에 들어가서도 득점하지 못해 결국 심판 판정으로 승부가 정해지게 됐다. 그리고 3명의 심판 모두 한국선수의 승리를 선언했다. 조준호 선수는 두 손을 불끈 쥐어 올리며 기뻐했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국의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 환희는 오래 가지 않았다. 심판위원의 이의 제기로 3명의 심판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더니, 이번엔 반대로 3:0으로 일본선수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갑작스런 판정 번복에 조준호 선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 응원단과 코치진은 기뻐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일본의 에비누마 선수는 기뻐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판정에 얼떨떨해 하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번복된 판정으로 결국 조준호 선수는 4강행이 좌절됐다. 조 선수는 전례가 없는 판정 번복에 눈물을 삼키며 쓸쓸히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가 폭발한 대한민국 이
일본의 프로야수 선수 모임인‘일본 프로야구 선수회’가 지난 7월20일 임시총회를 열고 내년 3월로 예정돼있는‘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불참할 것을 전원일치로 결의했다. 이유는 단순하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수익구조’에서 더 이상 곰 노릇은 안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실 일본은 그 동안 치러진 두 번의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세계에 일본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을 뿐 아니라, 축구에 밀려 점점 인기가 수그러들고 있는 일본 내 야구열기에도 다시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대회 때도 WBC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결선경기가 펼쳐지는 미국에선 3년에 한 번 펼쳐지는 국가대항전임에도 미국대학농구(NCAA)보다도 인기가 뒤지는데다, 높은 관심과 시청률을 보이는 것은 한국과 일본뿐임에도 그 수익은 대부분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 중심인 주최 측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선수의 유니폼, 포스터 등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경우 참가국들 권리를 보장받아 각국 수입으로 인정을 받는데 반해, WBC는 대회본부와 메이저리그 사무국 수익이 되고, 이는 다시 메이저리그 선수들 연금을 위해 쓰인다. 대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 동상을 세운지 반년이 넘었다. 설치 당시부터 이 동상은 많은 화제를 뿌렸다. 구청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구조물인데도 구청은‘국민감정’을 이유로 사실상 설치를 묵인했고, 이후 한일관계에 잡음이 생길 때마다 집회와 항의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인증’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었고, 언론은 이를 칭송하듯 그런 사진들로 지면을 채웠다. 이후 일본의 우익인사가 그 앞에서‘독도는 일본의 영토’란 푯말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의 감정을 폭발시킨 상황을 계기로 그 자리는 한국인들의 분노와 한(恨), 그리고 슬픔과 눈물을 나타내는‘감성(感性)’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그 동상을 대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보도’가 아닌‘드라마’중계를 연상케 한다. 비가 오는 날 동상 옆에 서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경찰관 사진을 내보내며 애국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박수를 보내는 보도도 그 중 하나다. 경찰관은 범죄를 단속하고 예방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지 동상에 우산을 씌워주고 목도리를 채워주고 발싸개를 해주는 것을 업무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과잉반응이자 이성과 규율보
지난 7월2일 미국 백악관은 웹사이트를 통해 그동안 한일 양국 네티즌들이 인터넷 상 서명운동을 통해 미국정부의 지지를 호소했던‘동해 vs. 일본해’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한국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커트 캠벨 국무부 차관보의 이름으로 발표된 미국입장에 따르면“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수역에 관해 미국은 오랫동안‘일본해’로 인지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에 대해 명칭 변경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이‘일본해’라고 사용하는 명칭에는 국가주권과는 관련이 없다”라고 규정했다. 즉 미국은 오래전부터‘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해왔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외교·정치적 의미도 없으며, 한국의 호칭은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미국이 일본 편을 든다’며 분노하고 있고, 한 한국 언론은“ ‘동해’10만 vs.‘일본해’2만…그런데‘2만’손들어준 미국”이라며 미국의 판단이 일방적이고 무성의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의미 없는 소모적 논쟁은 그만둬야 누군가 필자에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필자는 당연히‘동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물어본다면‘Sea of japan’이라고 할 것이
최근 한국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된 한일군사정보협정에 대해, 대부분 언론이 전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군사협정을 체결하게 됐다, 그로 인해 군사정보의 누출이 우려된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협정을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언론들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니 대중은 당연히 혼란을 느끼며 걱정스런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일련의 기사들을 보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군사정보협정 내용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 내용과 배경 전달엔 소홀한 언론 언론들이‘한일군사정보협정’이라고 표현한 이번 협정의 정확한 명칭은,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다. 그런데 많은 언론은 이를 줄여‘한일군사정보협정’이라 표현하고 있고,‘한일군사협정’이라고 표현하거나 심지어 ‘한일협정’이라고 제목을 뽑은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일수록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해야 한다. 사소한 차이라도 그를 보고 듣는 독자나 시청자들에 끼치는 영향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보도를 보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몰래 처리했다’는 내용은 많은데, 그 협
일본의 유명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 최신호(6월21일자)는 충격적인 이혼기사를 보도했다. 보통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이혼소동 등은 언론의 단골 소재이자 좋은 화젯거리이기도 하지만, 이번의 이혼기사는 그런 단순 가십거리가 아니었다. 일본 정치계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오자와 이치로(70) 전 민주당 대표의‘황혼이혼’에 대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내용은 오자와의 정치생명을 크게 흔들 수 있는‘1급 폭로’였다. 방사능 무섭다고 도망치는 정치인과 같이 살 수 없다 오자와 이치로의 부인은 오자와의 선거구인 이와테현의 지인에게 보낸 11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통해, 오래전부터 일본 정계의 실질적 지배자로 꼽히고 있는 오자와가 2011년 3월11일 일본을 덮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당시 보인 추한 모습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에는 오자와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둔 사생아의 존재도 크게 작용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이 최고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할 정치가가 자신만을 생각하고 국민과 지지자들을 내팽개쳤다는 것이었다. 그의 지지기반이자 오랫동안 선거구로서 14선 의원 오자와의 표밭 역
통합진보당의‘종북(從北)’문제로 정가가 시끄러운 가운데, 이번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 폄훼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 남쪽으로 온 젊은이를 향해‘변절자 XX’라고 쏘아붙였다는 건이다. 이를 두고 임 의원의 사상을 비판하는 의견들이 속속 터져 나오고 있다. 물론 임수경 의원은 바로 사과성명을 내고 자신의 발언이 탈북자들에 상처를 준데 대해 머리를 숙였지만, 임 의원의‘변절’기준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탈북자가‘변절자’라면 그것은 누구에 대한‘변절’이며, 임 의원이 따르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즉 탈북행위가 북한에 대한‘변절’이라면 임수경 의원은 북한을 따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임수경 의원 측도 곤란하다고 느꼈는지“변절자는 탈북자가 아니라 새누리당으로 간 하태경 의원을 지칭한 것”이라고 탈북자 폄훼의도를 부인하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조총련에서 민단으로 전향한 ‘미스코리아’ 이번‘변절자’사건이 터지기 불과 1개월 전 국내연예계에서도‘친북’문제가 불거졌었다. 미스코리아 일본대표 출신으로 한국연예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재일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로 정국이 시끄럽다. 한 정당 안에서도 계파 간 갈등이나 분열은 늘 있어왔지만, 이번의 진통은 좀처럼 쉽게 누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그간 범(汎)좌파세력의 지지를 받아온 정당이었지만, 이제 좌파세력 내부에서도 종북세력으로 분류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좌파언론, 지식인들은 당권파를 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고, 당권파는 이를 거부함으로써 내분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이 아니어도 한국의 우파세력은 그간 쉼 없이 종북세력에 비판을 쏟아내 왔지만, 사실 좌파세력일지라도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중요시하는 세력이라면 그 역시 북한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설령 종북이라 할지라도 반일(反日)이란 마법의 주문 앞에서는 그를 수용하고 또 찬동해온 과거가 있다. 다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란 책의 경우다. 반일감정 선동해 한일수교 방해하려는 의도의 책 재일교포 연구가 박경식에 의해 1965년 일본에서 처음 발간된‘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원제‘朝鮮人强制連行の記’)은 한일관계사와 일제강점기 연구에 있어 일종의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