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전남 행복발전소 공동대표이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용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일개 개원의사이지만 나름 독특한 분야의 시민운동을 하고 있어 존경하는 안 교수님께 한 가지 관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안교수님. 안교수님은 의학도의 길을 가시다가 대의의 길을 찿으신 분입니다. 교수님이 매번 나름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의 순수성은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이과 그중에서도 의료계 출신인 교수님의 삶에 대해서는 참으로 바람직스러운 지식인의 삶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수님의 정치적 성향도 어떻든 존중하며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지식인을 넘어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에도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교수님. 저는 의사로서 세계에서 유래를 찿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이원화의료제도를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공부하고 해결해나려고 하는 과정에서 전통과 근대, 민족주의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과 같은 문화적 미해결의 문제가 우리사회에 상존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여러 학자와 공감 했으며 이 후 이원화 의료제도를 거시적 문화투쟁으로 파악하고 문제 제기를 해왔습니다. 동양과 서양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사기꾼”이라는 말은 20세기초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인 루쉰이 한의사(중의사)를 두고 한 말이다. 중국인으로부터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는 문화혁명가인 그의 인격과 정신, 분투, 예리한 필봉은 중국을 넘어서 인류에게 보물 같은 유산을 남겼다. 역사 1885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미국 북 장로회의 알렌과 힘을 합하여 제중원을 설립하고 근대의학 수용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나타내었다. 일찌감치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자신들의 동양의학을 제거한 일본은 한일 합방 후 한국의 한방 제도를 폐지하였다. 해방 전 경기도의생회를 중심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며 활동하던 한의사들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조선의사회, 동양한의학회 등을 통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51년 9월25일 국민의료법이 공포되고, 한약업자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조헌영의 노력에 의하여 의료법에 한의사가 포함되었다. 법적으로 근거를 마련한 한의사들은 1952년 12월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를 창립하였다. 이후 한의협은 대한한의학회를 조직하고, 1963년 동양의학대학 부활을 통해 한의학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6년제 의과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 1965년 경희대학교가 동양의학대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