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말기가 되자 4대강 살리기 사업에 흠집내기 위한 이들이 힘을 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최근 보니 4대강 찬성론자 명단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아니다. 그럴 거라면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4대강 반대론자 명단을 만드는 게 맞다. 4대강은 반드시 재평가 받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의 신화를 예로 드는 것도 그래서다. 국민들을 선동, 4대강사업을 ‘실패한 국가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국익을 저버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의 마인드는 안 봐도 비디오다. 반대를 해 왔던 이들에게 4대강이 역할을 다하고 국위선양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뼈아픈 일일거다. 거짓말쟁이가 되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게 두려운 나머지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아지고 있는 게 요즘이다. 기를 쓰고 깎아내릴 것이며 앞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4대강 탓으로 넘길 것이 뻔하다. 가만히 잘 있던 푸른 산에 골프장 만들자고 산을 깎고 갈아 엎은 거라면 4대강은 욕 먹어도 싸다. 하지만 거의 해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수해와 가뭄을 겪어왔던가. 4대강 주변 사람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수재민들의 고충을 아는가. 목숨을 잃은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북한 김정은이 박근혜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인사를 초청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왜일까. 참 뻔뻔하게도 지난 대선에서 김정은은 대놓고 박근혜 당선인을 유치찬란하게 비판하지 않았던가. 철면피를 들이대며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이유가 뭘까. 북한은 지난 번 미사일을 날리며 모든 것을 잃었다. 안으로는 미사일 개발로 주민들 3년치 식량에 달하는 비용을 날렸다. 굶주리는 2500만 주민들을 뒤로 한 채 강행한 미사일 발사였다. 굶주리는 주민들과 군부로부터 충성심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물론 지금 당장은 광명성 발사가 성공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그 헛영광 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어가기란 어려운 상황. 밖으로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마저 북한에게서 눈을 돌렸다. 세계 각국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라고 경고 또는 권고했던 바. 유엔까지 나서 강력한 제재를 시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든 경고를 코웃음으로 날려버린 북한이다. 우방이었던 중국까지 국제적 룰을 어겨가며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옹호하기 힘들다. 이미 해외 지원 없이는 북한의 수많은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되지 않았던가. 세게 최빈국 수준의 북한에게 올 겨울은 혹독할 것이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가늠하려고 하면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평화만을 봐 온 청년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이 왜 있어야 하는지, 안보가 정말 중요한지 혼란스러울 게다. 쓸데없이(?) 전투기 사업에 왜 돈을 들이는지, 미군 주둔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을 거다. 1968년 1월 21일이었다. 1.21사태, 청와대 습격 미수사건, 혹은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 발생한다. 청와대를 폭파하고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의 목을 따러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서울까지 진입했다. 요즘 청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거다. “청와대를 깨부수고 박정희의 목을 따서 자동차를 탈취하여 북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된 27살 북한무장간첩 김신조의 얘기였다. 31명의 무장 특공대들이 5일분의 식량만을 갖고 북한 연산을 출발, 휴전선 미2사단 방책선을 뚫고 법원리를 거쳐 노고산을 경유, 비봉을 넘어 세검정 자하문을 지나 청운동 부근에 6일 만에 도착했다. 이후 검문에 부딪치자 이들은 검문하는 종로서장을 사살하고 총격전을 벌였다. 경찰병력과 첫 접전에서 게릴라들이 먼저 자동소총을 쏘며 수류탄을 투척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탄에
지난달 12일 오전 9시 51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던 문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나서서 북한에게 발사를 중단할 것을 요청해왔던 터다.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뒷통수를 날리며 미사일을 쏜 북한이다. 당시 우리 외교통상부는 긴급 고위간부 대책회의를 소집,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북핵 문제를 담당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도 기존의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강화했다. 주요국과의 협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함을 강조했다.북한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수차례 경고됐던 대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용하고 싶을 뿐이다. 이용당해 준다면 그들과 손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용당하면 그들이 호의로 대해줄 것인가.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용을 위해 욕심을 내게 할 뿐이다. 이제 UN이 나선다. 안전보장이사회가 곧 북한의 로켓발사에 대한 대응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UN안보리는 지난 4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이 미사일 등을 추가 발사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합
2013년 1월 17일로 북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이 결성된 지 67주년이 됐다. 67년간이나 청년들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게 세뇌 당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년동맹은 북한에서 노동당 다음으로 강력한 정치조직으로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사회단체다. 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동맹’으로 창립됐다가 1951년 ‘남조선민주청년동맹’과 통합해 ‘조선민주청년동맹’이 됐다. 그 후 1964년 5월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으로 개칭됐으며 1996년 1월 현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에서 민주청년동맹 결성작업이 본격화된 것은 1945년 10월부터다. 단일한 청년조직으로 민청 건설의 추진되는 과정에서 학생동맹의 민청조직에 가입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리하여 노동청년, 농민청년, 학생청년을 모두 망라하는 단일한 청년조직인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이 탄생하게 됐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무조건 옹호 관철하며, 이를 인민대중에게 침투시키는 선봉적 역할을 한다. 쉽게말해 저항하기 쉬운 청년들에게 오히려 체제논리를 주입시켜 이를 선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전 동맹원을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도
최근 세계의 민주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쟈스민향을 풍기며 중동국가들까지 독재의 압제로부터 벗어났고, 인권유린의 과거사를 영화 속 얘기 정도로만 치부할 정도로 세대가 변했다. 과거와 달리 정부의 무력진압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가장 완화된 진압 수단인 ‘물대포’에도 국민들은 분노하는 시대다.세계의 민주화 물결 속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역행하는 세력이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이다.김정은이 북한을 장악했어도 여전히 북한인권 상황은 여전히 ‘처참’하다.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서면 북한의 인권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개선 징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최근 유엔 최고인권대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주민 20만명이 여전히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고 수감자들에게는 고문과 성폭행, 강제노동 등 반인권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자그만치 20만명이다. 2011년 기준으로 강원도 강릉시의 총 인구가 22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 개 시에 달하는 인원에게 끔찍한 만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김씨 3대를 흉봤거나, 기독교를 권유하거나, 대한민국의 문화를 감상했거나 조금
1월 14일. 노동적위대 창설 54주년이다. 북한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이 철수한 이후 병력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1959년 1월 10일 노동자, 농민, 제대군인, 학생 등 약 50만명으로 노농적위대를 창설했고 14일 군단급 노동적위대를 만들었다. 노동적위대는 만 47세부터 60세까지의 교도대 미편성자와 노동자 농민 사무원을 대상으로 직장및 행정단위별로 편성되며 지휘관은 해당 직장 및 지역의 노동당 책임비서가 참모장은 노동당 민방위부장이 맡는다. 현재 약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의 주임무는 민방위 엄무와 함께 직장과 주요시설의 경계 및 지역방어 대공방어에 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한 모든 일에 활용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참고로 교도대는 북한의 예비전력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민간군사조직으로 만 27세~50세 사이의 제대군인 남녀로 구성돼 있으며, 붉은청년근위대는 중학교 4~6학년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예비군이다. 노동적위대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이들 비정규군은 무려 6백여만명. 쉽게 말해 노동적위대는 우리의 예비군, 민방위에 해당한다. 북한이 연평도 공격 이후 비상경계태세에 돌입, 교도대·노동적위대 등을 소집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대북 라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 그 사이트에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비판하는 글로 가득 차 있었고, 지난해 불법방북으로 논란이 됐던 노수희를 옹호하기 위한 사이트 링크가 걸려 있었다. 결성 22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는 공지와 더불어 신년사로는 북한 김정은의 연설문이 실렸다. 여기는 북한 사이트가 아니다.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는 단체는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23년째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조선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이른바 범민련이다. 23년.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제목 ‘26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들 이적단체가 결성돼 활동한지 23년째를 맞았다는 얘기다. 요즘 세상에.. 라고 놀랄만한 일들을 이들은 23년째 이어왔다. 우리는 26년전 발생한 일에 대해 ‘사태’인지 ‘혁명’인지는 재조명하고 싶어하면서도 진짜 국가전복 의지를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23년째 묵과하고 있나. 그 시간동안 그들은 국론분열과 거짓선동을 주도해 왔고 그 결과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사이트를 살펴보니 22주년을 축하하는 단체들이 잔뜩 있다. 이적단체로 불리는 단체들부터 민주노총이라는 거대 노조단체까지 이들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즉 NPT 탈퇴를 선언한 지 10일로 꼭 10년이 된다. 우리를 공격할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선포한지 10년이 되는 셈이다. 그 10년간 북한은 더 고립됐고, 궁핍해졌으며, 위험해졌다. 2003년 1월 10일. 그날 북한은 정부성명을 통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선언했다.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국제적인 의심 속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기 위해 NPT를 탈퇴한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NPT탈퇴로 국제적인 핵사찰 의무를 벗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기도가 성공한다면 핵무기확산금지체제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핵엔 핵으로 맞서라며 NPT를 탈퇴를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다. 따라서 이 체제의 유지 임무를 위임받고 있는 IAEA나 이 체제의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 보유국들로서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북한의 NPT탈퇴가 남북한간의 문제를 떠나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찌됐든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북한 스스로는 자주적 독립노선을 걷겠다는
새해 첫날 북한 김정은의 입에서 ‘조국통일’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통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떠들었고 박수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피식’ 나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남한 정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일체 빠져 있었다. 5.24조치로 궁지에 몰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쥐새끼 무리라느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느니 떠들었고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막말했던 김정은이다.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해 동족을 사상케 한 자가 갑자기 ‘조국통일’을 말한다? “지나온 북남관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입니다.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동족대결정책을 버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의 발언이다.악수하다 말고 뒷통수에 별안간 비수를 꽂더니 우리가 다투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는 왜 갑자기 “통일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돌발적인 이번 행보는 사실 개그 꽁트를 보는 것만 같다. 대선을 앞두고 햇볕정책을 펼치는 진보정당을 무작정 밀더니 막상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정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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