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개월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정에서 찬.반 진영 모두가 동의한 것이 있다. 한미FTA가 한국 사회와 경제에 `양날의 칼'이 되리라는 점이다.
한미FTA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양날의 칼'임을 인정한다면 전체 분야 가운데서도 투자만큼 이를 절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분야도 드물다.
한국은 미국 투자자들에게 안전판을 제공함으로써 성장 재료인 외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공공정책상 필요하다면 미국 자본을 규제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찬성진영은 투자자-국가간 소송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평가하지만 반대진영은 `주권포기'로 해석하고 있다.
◇ 美기업 한국투자 한층 유리해져
국내에서도 제법 팔린 미국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PT크루저'는 1930년대 클래식카를 연상시킨다.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관세가 FTA 협정 발효 즉시 폐지되지만 이 차의 가격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미국회사 크라이슬러의 제품이지만 미국이 아닌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어진 '메이드인 멕시코' 품이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임금수준이 낮은 멕시코로 생산기지를 옮긴데 따른 결과물이다.
이는 NAFTA 체결로 인해 멕시코의 투자관련 제도가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미국 자본의 실질적 국경이 리오그란데강 이남으로 크게 확장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은 '코러스(KORUS) FTA'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세계 투자의 '블랙홀'인 중국이 옆에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동북 아시아 주변시장을 노리는 미국기업의 생산기지나 사업거점이 제도적으로 투자 안전성이 보장된 한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2004년 47억1천800만달러에서 2005년 26억9천만달러, 지난해 17억100만달러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미국기업의 한국투자를 되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가까운 물리적 거리와 저임금을 노린 미국 기업의 멕시코 투자와는 양상이 좀 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원의 게리 허프바우어 연구원은 "한국이 보호해온 서비스 분야에서의 미국 기업 활동이 급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특히, 유통.금융.통신과 특급화물 수송에서 미국의 활발한 진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예상하고 있는 미국으로부터 직접 투자 추가 유입액은 연간 5억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서양속담처럼 투자유인 효과를 내기 위한 '비용'으로 투자자의 권리는 한층 강화됐다.
한미FTA 투자부문 협정은 기업이나 주식.채권.지적재산권 등 투자자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자산을 모두 '투자'로 규정했다. 또 진입단계에 있는 투자나 투자자에 대해서도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를 보장했다.
아울러 미국의 투자기업에 제품의 일정비율 수출의무나 국내산 원재료 사용 의무, 기술이전 등의 요건을 부과할 수 없도록 했다. 경영진의 국적도 제한할 수 없다.
무엇보다 협정에 따른 권리가 침해되고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미국 투자자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제기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정부규제가 FTA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 투자자-국가간 소송 위헌 논란
지난 2000년 미국의 세계적 물류회사 UPS는 캐나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1억6천만 달러를 물어내라는 소송을 국제중재기관인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제기했다.
이 회사는 캐나다의 우편기구 `캐나다포스트'의 자회사인 소포배달업체가 모회사의 우편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특혜이며 이로 인해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UPS가 이용한 것이 바로 NAFTA 11장 분쟁해결 절차가 규정한 이른바 투자자-국가간 소송(Investor-State Dispute:ISD) 제도다.
이 제도는 `수용시 법률이 정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과 달리, 수용과 유사한 형태의 간접수용까지 ISD를 통한 손해배상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 국가내 최고 판정기구인 사법부의 재판결과까지 손해배상 대상으로 삼고 있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도 샌드라 오코너 연방대법원 판사가 "(미국) 헌법 3조는 연방법원에 각 사건과 논란의 결론을 내릴 권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미 의회는 이러한 법률적 권력의 핵심을 다른 심판위원회(tribunal:국제중재기구들을 지칭)에 넘기지 않을 것"이라며 ISD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미국-호주 FTA에서는 호주측의 반대로 이 제도가 빠졌다.
하지만 한미FTA는 NAFTA와 같은 형태의 ISD를 도입한다는 데 양측이 합의해 UPS건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검찰의 수사를 거쳐 재판과 국세심판이 진행중인 론스타 사건의 경우 ISD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측이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외국환거래법이 규정한 경제위기시의 일시 세이프가드(일시적 해외송금제한)에 강한 거부의사를 피력하면서 "굳이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하겠다면 ISD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던 점도 이 제도가 미국측 투자자들에게는 익숙한 제도임을 뜻한다.
또 보건.환경.안전.부동산정책 등이 양국의 합의로 ISD 대상인 간접수용의 범위에서 제외됐다고 하지만 이들 정책도 '예외적인 경우'(In rare circumstances)에는 ISD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정부는 이 제도를 '쓴 약'으로 받아들이고 법무부의 주도로 공공정책 입안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ISD 제기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내년 설립될 정부 법무공단에 ISD 전담기구를 두는 방안도 준비중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제도를 수용하는 대신, 그만큼 해외 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우리가 해외에 진출할 때도 이 제도를 이용해 투자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진호 법무부 차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한미 FTA에서 ISD는 미국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고 앞으로 중국,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할 때 필요한 조항"이라며 보건.부동산정책 등이 원칙적으로 제외되는 점을 들어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ISD는 지금까지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정부 규제를 바꿔놓는 효과와 공공정책의 정당성을 해외의 제3자가 판정하는 부정적 효과가 혼재해 있다. 이 제도가 한국의 경제.사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전적으로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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