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내놓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협상 결과' 보고서에서 농업의 경우 다른 분야와 달리 '타결 내용'만 소개돼 있고 '기대 효과' 항목이 빠져있다.
아무리 정부가 최선을 다해 쇠고기 관세 철폐 기간을 15년까지 늘리고 국내 감귤의 수확기를 반영해 오렌지 계절 관세를 관철시켰다고 강조해도 이번 FTA의 가장 큰 피해 분야가 농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농업에 일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지만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농업이 한미FTA의 파고를 넘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판단 아래, 농가등록제를 시작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농민들도 이제 농사를 단순히 '굶지 않는 직업'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수출길을 뚫고 명품 브랜드로 대접받기 위한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 한.미 농가인구 비율 7% vs 2%
농촌경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쇠고기.감귤 등 국내 주요 농산물의 관세가 한미FTA로 10년안에 없어지면 연간 8천700억원의 국내 생산 감소가 불가피하다. 그만큼 보호막 없이는 농업의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입에서는 "우리 농산물이 너무 비싸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데, 왜 농가의 실질 소득은 크게 늘지 않고, 대외 경쟁력도 없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농업 시장 규모에 비해 종사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5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농가인구는 총 343만4천명으로 전체 인구 가운데 7.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중은 15년전의 절반 수준이지만, 여전히 영국(1.7%), 캐나다(2.2%), 프랑스(2.8%), 일본(3.2%), 호주(4.4%) 등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의 농가 인구 비중도 2%에 불과하다.
농축산업도 '규모의 경제' 원리가 적용되는 분야다. 넓은 땅에서 기계를 동원해 대규모로 생산할수록 인건비, 사료비 등의 측면에서 이롭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농촌마다 1∼2마리씩이라도 소를 기르지 않는 집이 거의 없다.
미국 농무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미국 네브래스카주 평균 초이스급(최상급) 쇠고기의 생산자 판매 가격은 100㎏당 174달러, 도매가격은 322달러로, 작년말 기준 한우 산지 가격의 거의 4~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주산 감귤의 경우 도매시장 가격이 1㎏ 기준으로 1천200원대지만 미국산 오렌지는 960원대로 77% 수준이다. 이번 한미FTA에서는 계절 관세를 인정받았지만 언젠가 관세가 완전히 없어지면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다.
◇ 정부, 경쟁력 갖춘 농사꾼 가려 지원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부터 농가등록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농업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시장에서 버티기 힘든 고령농을 줄이는 대신 전업농의 규모화를 도와 전체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농림부는 등록 프로그램 개발을 6월까지 마쳐 올해 하반기부터 농가 등록제를 시범 실시하고 2009년 전체 농가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농가 등록제는 개별 농가의 경영주체나 소득 규모, 주소득원 등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것으로, 정부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농가유형별로 여건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펼치게 된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전업농이나 중소농에 대해서는 직불제 지원 등을 집중해 소득 안정이나 영농 규모 확대를 지원하는 반면, 개방 등에 적응하기 어려운 고령농의 경우 지원의 초점을 '복지'에 맞춰 자연스럽게 은퇴를 유도한다.
이같은 중장기적 농업 구조조정과 더불어 우리 농축산물을 하나의 '고부가가치 식품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도 추진된다.
내년부터 생산에서 유통까지 낱낱의 기록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이력 추적제'를 모든 한우에 적용하고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도 확대,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한우 쇠고기의 고급화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돼지고기의 경우 환기.배기.분뇨처리 시설 등을 현대식으로 고쳐 각종 소모성 질병의 감염과 이에 따른 폐사를 막는데 주력한다.
과실류에 대한 당도 표시기준 설정, 생산.재배 시설 현대화 등이 추진되고, 채소류의 경우 우수브랜드 경영체 중심으로 우량 품종을 보급하고 계약재배 방식을 확대해 생산성을 높인다.
조만간 정부는 식품산업 발전 종합대책을 세우고 식품산업진흥법(가칭)도 제정, 우리 농산물의 '식품산업화'를 뒷받침할 방침이다.
◇ 농가, 아이디어와 수출로 승부해야
그러나 이같은 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업인들 스스로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서 냉정하게 평가받고, 제 값을 받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며 품종을 개량해야 한다. 지금까지 농업 분야에서 소홀했던 이 모든 것들을 이제 제대로 챙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미 확인된 수 많은 성공 사례들이 미래 우리 농업이 나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새송이 버섯 재배 농가 '머쉬라인'의 정득기 대표는 수 많은 시행착오 끝에 버섯 재배에 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는 현재 1천2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새송이를 대량 생산, 한해 10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서도 최근 한국 농산물은 속속 '승전보'를 전해오고 있다.
현재 이웃 일본의 수입시장에서 품목별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농산물은 백합.장미.오이.가지.고추피망.파프리카.수박.배 등 무려 8가지다. 특히 오이와 가지, 고추피망, 배의 점유율은 100%에 이른다.
일본 시장 점유율 64%, 작년 한 해만 대(對) 일본 수출액이 4천560만달러에 달한 파프리카의 경우 첨단 시설재배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 공급에 힘쓰고, 축적된 생산기술로 단위 수확량을 늘려 네덜란드산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경우다.
일본 뿐이 아니다. 배는 대만 수입시장에서 94%의 비중을 차지,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단감은 동남아시장에서 단연 '넘버 원'이다.
우리 고유의 맛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유자차는 현재 일본.홍콩.대만.중국.미국 등 5개 해외 시장에서 1위에 올라있고, 삼계탕의 경우 일본.대만.홍콩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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