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 미 의회 사상 처음 열리는 `일본군 종군위안부 청문회'에는 위안부 출신 한국인 할머니 2명과 함께 푸른 눈의 백인 할머니도 증언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 84세로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네덜란드 국적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바로 그 인물.
지금까지 2차대전 당시 강제로 일본군의 성(性)노리개로 동원된 종군위안부 여성들은 대부분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왔다는 점에서 서양인인 오헤른의 미 의회 증언은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헤른이 평생동안 가슴에 담아온,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세상을 향해 처음 토해낸 것은 지난 1992년.
당시 보스니아 전쟁에서 여자들이 무참히 강간당했다는 뉴스가 세계적 분노를 사고 있을 때 TV를 통해 한국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정부를 향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애처로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는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이후 오헤른은 도쿄를 비롯해 북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 등 전세계에서 열리는 종군위안부 관련 행사에 참석,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아시아 종군위안부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고, 전쟁으로 인해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오헤른은 과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고 아름답고 큰 집에서 요리와 정원일, 빨래를 해주는 시종과 운전사 등을 두고 살 정도로 넉넉하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세 처녀였던 1942년 3월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침략하면서 꿈많고 아름다웠던 오헤른의 미래와 행복한 인생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점령군' 일본군은 남자는 물론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일본군 수용소에 억류한 뒤 17세 이상의 젊은 여자들을 종군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던 것.
오헤른은 3년 반동안 수용소에서 강간과 폭행, 굶주림 등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이하의 끔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오헤른은 호주의 한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추해 보이면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모두 잘라내 흉측한 대머리 소녀가 됐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면서 심지어 일본인 의사들도 일본군의 강간대열에 합류했다고 폭로했다.
오헤른은 당시 자신과 다른 네덜란드 소녀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일들을 `강간당한 자의 절규'라는 수기로 기록, 보관해오다가 지난 1992년 우편으로 이를 딸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알렸다.
오헤른의 딸 캐롤은 어머니의 수기를 읽은 뒤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수기를 집어던지고 티슈 한 통을 다 써야 할 정도로 통곡했으며 어머니를 찾아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호주 TV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편, 오헤른은 위안부 시절 뼈아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손수건에 이름을 쓰고, 수를 놓아 간직해왔으며 이 수건은 지금 호주전쟁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오헤른은 인터뷰에서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시아 종군위안부들이 일본정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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