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뜨거운 감자인 유승민 원내대표가 필자 눈에 크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2012년 언론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 당시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장의 핵심 측근이었던 그가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했을 때였다. 유 의원은 “MB 정권의 무개념, 무철학 언론정책이 사상 초유의 언론사 연대 파업을 가져왔다”며 “이번 파업이 형식 논리로는 불법 파업일지 모르겠지만, 공정 보도를 위한 기자·PD들의 염원이 표출된 것으로 헌법에 보장한 언론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들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고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파업이 왜 발생했는지 무슨 목적이었는지 그야말로 언론노조에 대한 무지와 무개념을 고스란히 드러낸 발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그의 발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박근혜 차기 체제는 이명박정부와 차별화를 위해 여당내 야당 노릇을 했고 언론노조 문제뿐 아니라 기타 사안에도 야당과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개인의견이라기보다 당시 박근혜 진영 전체의 분위기였다고 볼 측면이 있었다.
박수 받던 대통령 국회법개정안 정국 잘못 풀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만일 현재에도 3년 전과 똑같은 시각으로 언론노조 문제에 발언한다면 필자는 앞장서서 그를 비판할 것이다. 정치판 저리가라 공작과 음모가 판을 치는 치열하고 저열하기까지 한 언론판의 문제에 집권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을 드러낸다면 무책임한 강남좌파의 생리를 못 버린 그를 누구보다 비난할 것이다. 그럴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고 논리와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와 친박의 유승민 찍어내기는 그럴 명분이 없다. 느닷없고 생뚱맞다. 비판을 하더라도 왜 비판의 대상이 비판받아 싼지 이유를 대야 한다. 이때다 하고 좌파언론이 유승민을 싸고도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소위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까지 나서서 그를 감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을 비판하는 것은 명분이 유승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로서 그가 잘못한 것보다 청와대와 친박의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숱한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국회법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그 문제에만 집중했다면 명분은 대통령과 친박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새누리당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블랙코미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법개정안 거부권이라는 가장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유승민은 배신자이니 국민이 심판해 달라’는 가장 사적인 분노를 쏟아내고 말았다. 대통령 스스로 국회법개정안을 사적인 원한관계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난데없이 대통령으로부터 유승민 심판을 요구받은 국민은 당연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통령을 아끼는 정 많고 이해심 많은 국민이라도 대통령이 5천만 국민 중 한 사람을 콕 집어 심판해달라고 하면 그 순간 국민은 이성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명줄을 끊는 문제이니 만큼 국민 역시 본능적으로 책임의식이 발동되는 것이다. 그렇게 명분과 논리로 따진 결과 박 대통령이 원하는 유승민의 명줄만큼은 안 된다는 게 최근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심인 것이다.
유승민 사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초재선 의원들의 원칙 존중해야
이런 민심과 별개로 박 대통령이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있다. 국민이 박 대통령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건 당리당략에 싸움만 하는 국회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자신들 유불리에 따라 원칙이 오락가락하는 그들의 얕은 크기에 크게 실망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 법안이 헌법의 원칙을 위배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 문제를 지적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지지한 것은 그만큼 국민 역시 원칙의 문제를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20여명이 성명까지 내고 항의하는 것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초재선 의원들 역시 유승민 사태에 있어 가장 원칙적이고 중요한 핵심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감성적이고 때론 비이성적이지만 때로는 무서우리만큼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따진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이를 존중하고 당·청 화합에 대해 강력하게 주문했고, 당 지도부는 원내대표의 사과를 비롯해 앞으로의 긴밀한 협의를 약속했다” “원내대표는 당헌에 따라 의총을 통해 선출됐고 최근 당·청 갈등 해소에 대한 약속도 있었다. 이런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을 의원들의 총의를 묻지 않은 채 최고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법률, 새누리당 당헌에 나와 있듯 의회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다. 최고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지키고 키워 왔던 의회민주주의와 당내민주주의는 결코 훼손돼선 안 된다. 특히 당내 화합에 힘써야 할 최고위원회가 당내 분란의 빌미를 줘선 더욱 안 된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개정안 반대 논리만큼 설득력과 충분한 명분이 담긴 내용이다.
유승민 사태 천심이 어디 있는지 살펴야
굳이 한낱 여론조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금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퇴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는 답이 나온 것이다. 무슨 일이든 순리에 맡겨야 하고 고집이 아닌 원칙에 의해 추진해야 명분이 있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원칙주의를 고수하는 박 대통령이니만큼 유 원내대표에 대한 거듭된 실기는 하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또 새누리당 역시 무엇이 대의인지 명분이 있는 것인지 깊이 숙고하리라 믿고 싶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본인이 쥔 명분을 오해해 박 대통령의 지적대로 정말 본인정치를 하려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면 그건 또 금방 탄로가 날 것이고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다. 다만 지금 유 원내대표의 사퇴문제는 민심이 천심이고 천심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다. 현 시국을 오판해 일을 그릇되게 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현명히 수습해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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