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지곤 하는데 YTN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YTN 사장에 은행장 출신 인물을 낙하산으로 꽂은 이 정부의 창조적인 인사에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처음엔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언론노조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반은 정치꾼인 노조원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구본홍 전 사장과 같은 이보단 차라리 백지상태의 인물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고 부정적 효과와 충격은 더 컸다. 조준희 사장은 YTN에 오자마자 노조 대부격 인사를 핵심 요직에 앉히는 등 골수 노조원들을 승진키면서 배석규 전 사장의 개혁 유산을 해체시켰다. 경영난을 해결하러 왔다더니 오자마자 제돈 아니라고 수억원어치 식사권을 뿌리면서 직원들의 환심이나 사는데 열심이었다. 사장이 이렇게 일찌감치 노란 싹수를 보이니 천하의 YTN 노조가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좌편향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보도에선 태극기 방화범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경찰이 과잉수사 하고 있다고 하더니 이번엔 영화 ‘연평해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연평해전' 개봉...시민 등 7천 여명 투자해 완성> 이란 제목을 단 뉴스는 도대체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제목만 보면 자세한 제작배경이나 개봉하기까지의 난관, 사연을 알려주고 이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줄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딴판이다. 시민 7천여명이 어떻게 투자하게 됐는지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알려주기는커녕 “재미없는 반공 영화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뜨거운 감동을 주고 있지만 걱정되는 점도 있습니다.”라고 딴소리를 한다. 그러고 소개한 게 "당시에 어떤 과정과 상황 속에서 벌어졌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야만 국민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건데 그 안에 휴먼 스토리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인 상황과 총체적인 구조 시스템을 볼 수 없기 때문에..."란 평론가의 평이다.
연평해전 YTN 보도 방치한 조준희 사장은 뭐하는 사람인가
이 영화가 재미없는 반공영화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대체 누가했다는 건가. 기사를 쓴 기자는 나이가 몇이라 그런 구닥다리 본인 선입견부터 자랑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요즘 영화판이 재미없는 반공영화를 만드는, 만들 수 있는 그런 현실인가. 연평해전을 일단 깎아내리려니 그런 생각 없는 상투적인 문구를 붙이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군을 적으로 그린 영화라 재미없는 반공영화가 될 것이라고 본건가. 북의 포격에 맞서다 산화한 우리 장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니 ‘무찌르자 공산당’ 식이 될 거라고 봤다는 건가. 영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개념도 없는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평론가의 구조 시스템 운운하는 대목을 붙인 것도 가소롭다. 휴먼스토리를 강조해 관객들 반응이 좋으니 못 마땅하기라도 하다는 얘긴가. 웬 구조 시스템 타령인가. 평론가의 평론 자체보다 그런 평론을 갖다 붙이는 YTN 기자 속내가 더 궁금할 뿐이다.
YTN의 <[뉴스통] 영화 '연평해전' 1위...이념 논쟁 번지나?> 기사는 더욱 어처구니없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우리 장병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념 논쟁거리가 될 수가 있나. 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 적에 맞서 조국 영토 지키다 간 젊은 목숨을 이념논쟁 거리로 보도하나. 대한민국 대표보도채널이라는 언론사의 시각이라는 게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YTN이 영화에서 문제 삼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분도 그렇다. 햇볕정책을 고수한 김 전 대통령이 북한의 눈치를 살폈고, 그런 대통령의 눈치를 본 언론들이 제2연평해전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건 언론인들이 고백한 사실이다. 제2연평해전은 그런 국가적 홀대 속에 젊은 목숨들이 외롭게 사라져간 아픈 역사다.
김 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불안감이 커질까봐 월드컵 폐회식에 참석했다는 궁색한 해명을 대신한 부분도 황당하다. 그러면 YTN은 박 대통령이 메르스로 방미 취소했을 때 국제사회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은 왜 하지 않았나. 영화가 정부 안보장사 차원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대목은 할 말을 잃을 정도다. 도대체 YTN엔 데스크 게이트키핑 이란 게 작동하고 있나. 이 따위 보도가 나오는 동안 조준희 사장은 뭘 하고 있었나. 직원들에 펑펑 인심이나 쓰고 강성노조원들 승진시켜 심기나 살피면 만사 장땡인가. YTN 사장이 조 사장 체면이나 세우고 인심이나 쓰는 자리인가. 두고 보자 하니 갈수록 가관이다. YTN 보도가 이렇게 망가지도록 인사한 이사회에게도 묻고 싶다. 이게 이사회가 바라던 YTN의 모습인가.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MBC 흔든 방문진 이사들, MBC 시한폭탄만 키워
새 사장이 오고 YTN이 이렇게 개혁은커녕 과거로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몇 주 후 있을 방문진 이사 선임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인사들이 먹잇감 노리듯 자리를 노리고 권력에 줄을 대려 아등바등 할지 알 수 없다. 제 역할도 못할 거면서 이사 자리가 주는 사회적 지위 고액 연봉 MBC 인사들의 아부와 대접이나 즐기는 그런 인물들이 이사회에 들어가는 순간 MBC 앞날도 볼장 다 본 것이다. 지금 조용하다고 MBC가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한과 불만을 가진 이들은 단지 좌파노조만일까. MBC 내부로부터 필자의 귀에까지 들려오는 아우성에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지금 경영진 하는 걸 보면 차라리 좌파 정권 때가 낫다”고 비난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로 MBC 직원 사이에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해 있다. 내부의 자기편도 보듬지 못하고 칼만 휘두르다 다 적으로 돌려놓으면 그 폭탄은 정권이 바뀔 경우 어마어마한 핵폭탄이 되어 터질 수밖에 없다.
방문진 이사들이 책임의식이 있었다면 MBC 내부에서 퍼지는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는데도 노력했어야 했다. 좌파노조의 적폐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MBC가 권력에 취한 일부 경영진 전횡에 망가지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방문진 이사들은 과연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나. 미디어오늘이 평가했듯 야당 이사들은 무능했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말하는 것처럼 좌파노조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MBC 경영진과 거래를 해서 뭔가를 얻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MBC 전체를 생각한 어떤 비전제시와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 측 이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연임으로 9기 이사진에 안착한 ‘뉴라이트’ 인사 김광동·차기환 이사는 철저하게 MBC 경영진을 비호했다. 자신들의 이해와 배치될 때만 경영진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김재철 전 사장 해임 건 역시 여당 이사들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평가했다.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MBC를 흔드는 행위는 MBC를 제대로 관리감독하는 것이 아니다.
YTN은 앞으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최소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인사로 인해 언론사가 어떻게 180도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좌파노조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경영진의 전횡까지 방치하면 우군도 적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는 MBC다. 언론사 사장이 어떤 인물이냐 만큼 중요한 것이 그 언론사를 관리감독하는 이사진에 어떤 인물이 선임되느냐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방문진 차기 이사들은 MBC 내부에 오랫동안 쌓인 언론노조의 적폐 문제를 당당히 드러내어 개혁하는 일과 더불어 가뭄에 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변한 MBC 내부의 분열과 반목을 치유하는 작업도 동시에 해야 한다. 좌파노조를 핑계로 MBC 일부 경영진이 칼을 휘두르는 전횡도 뿌리 뽑아야 한다. 언론사 YTN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방문진 차기 이사진에 제대로 된 인물이 선임될 수 있도록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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