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파업 주도자들에 대한 MBC의 징계를 무효로 돌린 서울고등법원의 재판 결과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법이 가진 한계를 보여준다. MBC의 파업은 누가 봐도 정치파업이었다. 법정에서 아니라고 발뺌했던 노조에서도 뒤돌아서선 슬며시 웃는 이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됐든 노조는 승리했고 법은 MBC 파업의 진실을 또 외면하고 말았다. MBC가 당시 파업으로 입은 피해나 많은 국민들이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죽도록 얻어맞은 피해자가 재판에서 가해자로 뒤바뀌어 배상금까지 물어주게 된 꼴이나 뭐가 다른가. 사건의 진실과 사실이 사뭇 다르고 또 법적 판단은 더더욱 별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결과였다. 그러나 어찌됐든 법원 판결이 내려진 이상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법원이 사건의 발생과 진행, 결과를 총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노사협약과 같은 형식을 핑계로 면죄부를 준 결과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MBC를 일반 기업 논리로 재단한 법원,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외면했다
MBC 언론노조 측은 법원이 “방송공정성을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판결문을 보면 표면적으로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판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제했다. 법원조차 노조가 말하는 방송공정성이 진짜 공정성을 의미한다고 판결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법원은 방송공정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의 공정성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주관적 가치에 따라 그 판단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추상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사정에 기초하여 또는 공정한 방송의 실현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쟁의행위에 나아가는 것은 사용자가 처분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한 것으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법원은 ‘공정보도는 언론인의 근로조건’이라며 법원이 전향적 판결을 내렸다고 떠드는 MBC 언론노조 세력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얘길 한 것이다.
법원이 “방송공정성을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판결한 이유는 방송공정성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때문이었다. 법원이 방송공정성은 상대적 개념이라 파업 이유가 안 된다고 설명한 뒤에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방송의 제작, 편성, 보도 등 구체적인 업무수행 과정에 있어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실제적으로 근로환경 내지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쟁의행위에 나아가는 것은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기존에 합의된 단체협약을 사용자가 지키지 않는 경우 그 준수를 요구하기 위한 행위는, 단순히 기존의 단체협약의 해석, 적용에 관한 사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협약의 이행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준 이유가 바로 법원이 밝힌 위의 설명에 자세히 나와 있다. 방송공정성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법원이 보기에 어찌됐든 마련된 제도적 장치를 MBC가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다시 말해 MBC가 단체협약 이행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방송공정성’ 내용을 판단한 것이 아닌 ‘방송공정성 보장 요구’에 대한 MBC 대처를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문제의 핵심은 아주 명확해졌다. MBC가 그동안 여러 소송에서 판판이 깨진 데에는 불공정 단체협약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방송제작과 편성 보도에 노조가 경영진의 개입을 차단시키고 자기들 입맛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온갖 장치들을 단체협약에 집어넣기만 하면 그걸 근거로 말도 안 되는 정치파업을 일으키고 회사와 국민에게 얼마든지 피해를 입혀도 법원은 정당했다고 판결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영방송 바로잡으려는 언론사의 노력과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법원 판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원의 이번 판결 논리라면 MBC의 정치파업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임기가 정해진 사장이 계속 바뀌면서 오랜 세월 노조가 쥐락펴락 하는 노영방송이었던 MBC의 단체협약은 그동안 노조의 ‘사장 길들이기’ 축적물이었다. 노조가 제작, 편성, 보도는 물론이고 경영에까지 간섭하고 공정보도의 심판자를 자처할 수 있게 된 오늘의 현실은 모두 낙하산 사장과 MBC의 주인이었던 노사의 야합의 산물이었다. 노조가 주인인 MBC에서 그러나 임기가 정해진 사장들이 노조의 압박과 무언의 협박을 거부하기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노조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면 파업을 일으키고 소송으로 가고 법원은 단체협약을 이유로 지금과 같은 판결을 내리고 다시 불공정 단체협약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조의 유무형 압박과 파업을 두려워 한 대다수 사장들이 그래왔고 방문진이 사장직에서 내쫓았던 김재철 전 사장이 거의 유일하게 그걸 거부하다 망가졌다.
법원은 “외견상 경영권에 속하는 사장의 퇴진 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쟁의행위라도, 그것이 오로지 사장의 교체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으로서 주장된 것이라면, 사장의 퇴진 그 자체는 쟁의행위의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그러한 쟁의행위가 반드시 목적의 정당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과연 진실로 그러했나. 2012년 MBC 언론노조는 1월 기자총회가 열었고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불신임에 이어 곧바로 김재철 퇴진 파업에 들어갔다. 법원은 방송공정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단체협약을 거론했는데,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면서 법원의 ‘주장’처럼 단체협약을 따졌던가. 사장이 근로조건을 어겼다고 파업한 것이었나.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김재철 퇴진, 그리고 그걸 정당화하려는 부수적인 공정보도란 허울 좋은 구호뿐이었다. 2010년 방문진이 처음 김 사장을 선임하자마자 노조가 낙하산 사장 반대한다고 파업부터 시작한 사실은 하나의 방증이다.
사회적 공기인 MBC와 국민은 안중에 없었던 법원의 기계적이고 안일한 판단
2012년 파업 그 과정은 또 어땠나. 세상에서 가장 저열하고 비열했던 온갖 방식으로 사장 모욕하기, 회사 내 기밀 외부로 빼돌려 MBC 흔들기, 회사가 망하라고 저주의 굿판을 벌였다. 여론을 선동하고 방송차질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시청률 추락, 신뢰도 추락, 매출 추락 등 MBC를 저 깊은 나락으로 잡아끌어내려 추락시켰다. 이게 과연 MBC를 사랑하고 공정보도를 원했다는 행위일 수가 있나. 법원은 방송공정성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잣대일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노조가 주관적인 잣대로 정치파업을 일으킨 걸 단체협상 핑계대며 면죄부를 주었다. 법원은 ‘집권하면 사장을 자르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안철수를 데려다가 뻔뻔하게 공정보도를 운운하는 철면피 노조가 만드는 그런 방송을 국민이 봐야한다는 얘긴가.
법원이 전임 사장이 단협에 불성실했다는 그런 이유만으로 노조의 정치파업에 면죄부를 준 건 사회적 공기인 MBC의 존재와 국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을 한 것이다. MBC는 단지 단체협상이란 일반 기업의 논리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 노조의 사장 길들이기 단체협상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사장이 거부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온갖 독소조항으로 가득한 노조의 전리품이나 다름없는 단체협상 의무를 강조한 이번 법원 판결은 결과적으로 사실상 노조의 사장 길들이기, 압박과 협박을 정당화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사 파업을 바라보는 법원의 안일한 시각이 빚은 또 다른 차원의 참사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MBC가 대법원의 최종 심판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2012년 MBC 언론노조의 파업은 공정보도를 위한 순수한 언론인들의 의로운 파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파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그들만의 파업, 국민이 외면한 특정 진영의 파업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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