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와 함께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무너진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언론계 진보좌파 진영으로부터 영웅 대접받던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남 아닌 본인들의 행위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 총리가 3천만원 수수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계속해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하면서 본인에 대한 신뢰를 허무는 짓을 했다면 손 사장은 ‘신뢰받는 언론인 1위’ 답지 않은 저급한 특종장사를 한 것에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해 신뢰를 깎아 먹고 있다. 흥미로운 건 손 사장을 비판하는 좌파진영 언론계의 논리적 잣대다. “JTBC, 공익성·신뢰성 모두 놓쳤다”는 성명을 17일 발표한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제이티비시 <뉴스룸>은 시청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한 프로그램이며, <뉴스룸>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남들보다 빠른 뉴스가 아니라 믿고 볼 수 있는 공익적 보도다. 공익성에는 취재의 윤리성까지 당연히 포함된다. 이번 보도는 공익성과 신뢰성을 모두 놓쳤다”고 비판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녹음파일 야당에 넘긴 언론의 비윤리성에 눈감았던 좌파언론
당사자인 경향신문은 물론 ‘뉴스룸’ 측의 비윤리적 태도를 비판하는 좌파진영 언론계가 취재의 윤리성을 이유로 손 사장을 비판하는 대목을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좌파 측 언론계에서 무리하고 불법적인 취재행위나 허위, 과장, 왜곡보도가 나올 경우 우파 측이 취재의 윤리성을 들어 비판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내밀던 논리가 ‘공익보도’ ‘국민의 알권리’였다. 국민 알권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하던 대략 용서할 수 있다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펴곤 했다. 딴 사례를 들 것도 없다. 몇 달 전 국무총리 지명자 시절 이 총리가 기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발언을 한국일보 기자가 몰래 녹취해 녹음 파일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건넸을 때 좌파언론들은 어땠나. 기자가 특정 정당 쁘락치나 다름없는 짓을 했어도 좌파언론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비윤리적인 취재행위라는 비판이 나오자 오히려 별 문제없다는 식으로 대부분 옹호하기 급급했다.
“취재윤리에 반하는 중대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면서 한국일보가 사과문을 올리자 그걸 비난한 민언련이 낸 논평을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 읽어보라. 아마도 낯부끄러운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렇게 취재윤리라는 걸 똥값 취급하던 이들이 손석희 사장이 내세운 ‘국민의 알권리’에는 “취재윤리”를 이유로 비난을 퍼붓고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언론인이 특정정당 쁘락치와 같은 짓을 한 것이나, 장물과 다름없는 녹음파일이란 걸 뻔히 알았을 텐데도 남의 특종을 가로채 미리 보도해 시청률 장사한 것이나 모두 취재윤리를 어긴 부도덕한 행위라는 점에선 모두 똑같다. 그런데도 먼저 것은 ‘네 편’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으니 취재윤리 따위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알권리를 내세워 무시하다가 ‘내편’에서 그런 자중지란이 벌어지니 이제와 취재윤리를 따져보자는 식은 지나치게 뻔뻔한 것 아닌가. 손 사장을 비난하는 경향신문이나 기타 좌파언론들의 속내도 결국 ‘손석희 이 양반아, 알 만한 사람이 이거 왜 이래. 우리끼린 예의 지켜야지’ 이 수준 아니고 도대체 뭔가.
선 넘고도 “내가 완벽할 순 없다”고 변명한 손석희 사장은 경향신문에 정식으로 사과해야
어쨌거나 손석희 사장의 JTBC 뉴스룸이 경향신문의 특종을 가로챈 짓은 따져볼 여지없는 부도덕한 행위다. 공개된 성 회장의 음성파일에는 경향신문이 보도한 것 그 이상의 공익성이 없었다. 성 회장 유족측이 직접 전화 걸어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타 언론사보다 몇 시간 앞서 긴박하게 방송할 만큼 다른 내용도 가치도 없었다. 그걸 같은 ‘나와바리’ 사람들이 비판하자 공익성 운운하면서 내놓은 변명이란 게 녹음파일 보도가 “시청자가 사실을 넘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고심 끝에 궁극적으로는 고인과 가족들 입장, 시청자의 진실 찾기에 도움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입수 경위나 저희가 되돌아봐야 할 부분은 냉정하게 되돌아보겠다” 등의 소위 ‘착한 척’ 하는 태도는 보기 민망하다.
더 압권은 “언론의 속성이란 것 만으로는 양해되지 않는다는 것 잘 이해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감당해 나가겠다. 저나 기자들이 완벽할 순 없지만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부분이다. 언론으로 보나 보통의 상도의로 보나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어놓고, 게다가 그 행위가 뭘 의미하는 것인지도 다 알고도 해명이랍시고 이런 변명을 내놓은 건 어떤 비난을 사도 마땅하다. JTBC 손석희 사장과 뉴스룸은 이번 행위를 “저나 기자들이 완벽할 순 없지만...” 따위의 변명으로 넘어갈 순 없는 일이다. 이번 논란은 손 사장이나 기자들이 완벽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 심하게 얘기해 본인들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도 불사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제대로 사과해야 마땅하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손사장과 JTBC 측이 이런 비윤리적인 취재행위도 감수하도록 만든 건 경향신문과 좌파언론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뭘 하든 “지당하십니다”를 외치며 손석희를 감싸고 영웅으로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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