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집단이 누군가를 악당으로 낙인찍기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다보면 그 사람 본연의 모습과 상관없이 어느 덧 악당이 되어버리는 것,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 현상을 간파하고 매스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을 상대로 끊임없이 상징조작을 시도하는 집단으로 정치권과 타락한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KBS 신입기자가 과거에 수없이 다양한 사이트에 가입해 썼을 글과 댓글 중 일베만을 특정지어 ‘일베기자’로 낙인찍고 대중에게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베 기자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과연 그 신입기자를 그렇게 규정지어도 되는 것인지, 맞는 것인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도 없는데 KBS언론노조는 허상을 만들어 자꾸만 퍼뜨린다. 일베 기자란 네이밍을 만들어 확산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중을 겨냥한 노조의 상징조작이라는 얘기다.
이미 이런 비슷한 상징조작이 이웃 공영방송 MBC에서도 꽤 오랫동안 있어왔다. 이명박 정권 들어 김재철 전 사장 시절을 거치며 경영진을 ‘김재철 키즈’ ‘김재철 사단’ 등으로 김 전 사장과 끊임없이 엮어 최고의 악당들로 만드는 방식이다. 단지 김재철 전 사장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는 이유로 이들은 그들이 실제로 한 일보다 과장되게 혹은 터무니없는 매도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상징조작으로 왜곡된 이미지로 큰 피해를 본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이진숙 대전MBC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23일 MBC 논설위원을 지냈다는 안성일씨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이진숙씨와 조능희 PD, 그래도 MBC 포기 못해>란 글을 읽으면 그 심각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우선 이 글을 읽은 독자로서 소감 한 마디 하자면 매우 유감스럽다. 공영방송 논설위원까지 지낸 인물치고는 졸렬하고 협량한 소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다운 기본적 태도랄까 인성이랄까 그것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진짜 기자정신을 상실한 MBC기자협회, 기자정신 잃지 않았던 이진숙
안씨는 이 글에서 자신이 이 사장을 이진숙씨라고 부르는 이유를 밝혔다. MBC 기자협회가 기자 이진숙을 제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협회가 이진숙 기자를 제명한 이유를 안씨가 인용한 것을 옮겨보면 이렇다. “그 자신이 MBC 기자회의 회원이면서 기자회 제작거부의 대표성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정치적 의도와 배후가 있다는 날조된 주장을 흘렸”으며, “김재철 사장의 부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로서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과 상식을 저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김재철 지키기의 최선봉에 섰다”는 것이다. 풀어 말해, 김재철은 천하의 나쁜 악당으로 그런 악당을 제거하려는 기자협회를 방해한 인물이 이진숙이라 협회에서 쫓아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김 전 사장이 최고의 악당이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장을 걷어치우고 법적 결과만 놓고 보자.
MBC언론노조는 김 전 사장이 6억 9천만원을 부정하게 사용했고, 직위를 이용해 특정무용가를 밀어줬다는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법원이 죄를 인정한 부분은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1천100만원뿐이었다. 다시 말해 나머지 금액은 모두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의미다. 법원이 인정한 또 다른 죄는 방문진을 감사한 감사원에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 전 사장이 받은 징역 6월의 집행유예 2년의 죄과는 이것이었다. 어쨌든 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하는 만큼 유죄판결을 받은 부분은 김 전 사장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씨가 마치 거룩한 집단이라도 되는 양 이진숙을 쫓아냈다는 MBC 기자협회가 속한 노조는 어떤가. 업무용으로 쓴 6억 8천 9백만원이란 금액을 배임으로 덮어씌웠다. 특정무용가에 관해 날조되고 왜곡된 내용을 주장하다가 노조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숱한 언론들이 허위, 왜곡보도로 정정하는 수모를 당하게 만들었다. 또 애꿎은 어려운 환경에서 기술개발에 애쓰는 중소기업을 사찰프로그램을 만드는 몹쓸 기업으로 몰아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부도덕하다 비난을 받을 쪽이 대체 어딘가. 이진숙 사장이 기자로서 합리적 의심과 상식적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는 건 이런 법원 결과와 그간의 숱한 고소고발 사건의 결과가 말해준다. 이진숙은 MBC 직원으로서 자신의 직무와 책임에도 충실했다. 노조는 조합원 파업징계와 관련된 사건을 제외하면 파업 과정의 각종 고소고발 사건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 법원은 대개 사측 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기자협회의 제작거부로 시작된 총파업으로 인해 MBC는 수백억원의 손실과 각종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다.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인해 빚어진 방송 파행이 시청자에게 입힌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이진숙은 보도본부 책임자로서 반토막이 난 뉴스데스크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피해를 복구하는 데 기여했다. 시청자 국민이 받을 피해는 아랑곳 않고 정치적 계산에나 밝았던 그런 기자협회와 자신의 위치에서 시청자에 대한 약속과 책임을 다한 이진숙 사장 과연 어느 쪽이 더 기자답다고 할 수 있나.
'飮水思源(음수사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MBC를 출세의 디딤돌로 이용한 이는 누군가
“MBC 사옥에는 '飮水思源(음수사원)'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그러나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에 대해 MBC 구성원 사이에 생각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사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언론기관으로서의 방송이 가지는 권력을 시청자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의 근원을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방송의 소유구조와 정치권력과의 관계에만 밝은 사람들은 근원을 당대의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언론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위해 MBC에 입사했는지, 세속적인 출세의 디딤돌을 만들기 위해 입사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라고 주장하는 MBC 전 논설위원 안성일씨의 사고방식과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노조의 막장 파업에 자기 몸을 던진 이는 의인이요, 전문 언론인이고 그런 파업을 막기 위해 애썼던 이들은 김재철의 똘마니요 기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말이지 실소가 나올 정도의 황당무계한 논리 아닌가.
안씨 말대로 전문 언론인으로서 자기완성을 위해 MBC에 입사했는지 아니면 세속적인 출세의 디딤돌로 만들기 위해 입사했는지 목적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는 모습과 결과도 달라진다. 그게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MBC에서 양지 볕을 쬐다 줄줄이 야당으로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인사(정동영, 신경민, 박영선, 최문순, 노웅래, 박광온 의원 등등) 들의 얼굴만 확인하면 안다. 안씨가 몸담은 MBC언론노조와 민언련이 참된 언론인 출신이라며 칭송하는 이들은 그렇다면 ‘전문 언론인으로서 자기완성을 위해 MBC에 입사’했기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었던 것일까. 안씨가 이제 ‘고작’ 대전MBC 사장을 하는 이진숙에게 ‘세속적 출세의 디딤돌’ 운운하는 건 황당한 얘기 아닌가. 기자협회에서 제명된 이진숙 사장은 본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물건을 갖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함께 했던 후배들로부터 작년에 받은 감사패라고 한다.
그 감사패에는 이런 문구들이 담겨 있다. “당신은 후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기자였습니다. 행동으로 ‘기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만든 기자였습니다. 이른 새벽 14번가의 프레스 빌딩에서, 백악관에서, 국무부에서, 또 헤리티지와 브루킹스에서 당신은 그 존재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뉴스가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꼿꼿한 눈빛으로 현장을 지키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짧았지만 그래서 더 강렬했을지 모를 당신의 두 번째 워싱턴 특파원 시절을 우리 모두는 오래도록 아름답게 떠올릴 것입니다.” 기자 정신이란 사장 내쫓겠다고 뉴스현장과 방송을 내팽개치고 장장 반년씩이나 파업할 수 있는, 정치로 물든 썩은 정신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과 성실함에서 나온다. 기자정신과 패거리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MBC 전 논설위원 안성일씨는 후배 이진숙이 가는 길을 조롱하고 야유하기에는 기자정신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한참이나 못 미친다.
김재철 아닌 MBC를 지켰던 사람들, 과거를 잊어가나
이진숙 사장을 비롯해 일부 인사를 제외한 현 경영진 대부분은 김재철의 똘마니, 키즈, 사단이 아니라 광란과 광기의 시기에 중심을 잡고 MBC를 지키려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믿기 어려운 광풍의 시기는 지나갔다. 안씨처럼 노조 편이냐 아니냐란 유치한 기준이 아닌 이들에 대한 판단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진숙 대전 MBC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은 김재철의 똘마니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위험했던 시기를 극복해낸 MBC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MBC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노조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징계를 당했다고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피해자인양 화장하는 건 가증스럽다. MBC가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누군가의 똘마니란 모욕과 상징조작을 견디며 돌맹이를 맞고 버티면서 이겨낸 이들이 인사에서 보상받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MBC 안팎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필자가 MBC를 예전과 달리 바라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사람이든 국가든 어려운 시절을 잊고 혼자의 일신영달만을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많이 생긴다는 건 망조의 신호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필자는 MBC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MBC가 미래로 거침없이 달려가되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현명하고 겸손하며 지혜롭길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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