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는 유명하다.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나 인상적인 발언이 나오면 언론이 매번 그것과 연관짓는 분석을 내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역설적이게 박 대통령이 쉽게 위기에 몰리는 이유도 그것과 무관하지가 않다. 믿었던 인물에게 받은 실망과 상처가 크다보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인물이나 겪어보지 못한 인물을 쓰는 건 더욱 기피한다. 특히 계파나 진영이 다른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은 더더욱 쓰지 않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대통령 성향의 근본적인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인사를 두고 ‘고소영’ 등의 희화화된 비판이 많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그러다보니 그보다도 더욱 협소해진 느낌이다. 5년 동안 국가 운영을 맡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인재풀이 극도로 협소하다는 건 그만큼 국가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사가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다.
이완구 국무총리 임명이나 친박 인사로 채운 내각은 무감동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위기를 더욱 키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각의 3분의 1을 친박 의원들로 채워 분열과 편가르기 이미지만 더욱 강하게 했다. 이번 개각은 국민을 의식했다기보다 마치 친이계를 의식한 것처럼 느껴진다. 청와대와 정부에 박 대통령의 ‘친박’ 흑기사들만 잔뜩 끌어 모아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다분히 방어적인 모양새의 인사가 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 대통령이 닮은꼴이라는 일부 네티즌들의 지적처럼 성문을 굳게 채우고 첨탑을 더욱 높인 꼴이다. 국민이 ‘박근혜성’을 쳐들어갈 적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국민을 보지 않은 듯한 대통령의 인사는 그런 이미지를 주고 말았다. 더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을 장관으로 줄줄이 차출해 가는 것도 진심을 의심케 한다. 대통령이 잘 모르지만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 세대와의 공감을 위한 젊은 인재 등 이런 국민적 기대와는 정반대의 인사로 실망만 잔뜩 안겨주고 말았다.
친이계와 또 선 그은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무거운 메시지
올 한해는 박근혜 정부로서도 성패가 갈릴 중요한 시기이지만 불황으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대다수 국민 입장에서도 너무나 어렵고 힘든 한 해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한계가 너무나 분명한 인물들로 앞으로 닥칠 여러 난관을 헤쳐가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가 있을 장관들을 보면서 국민이 무슨 희망을 갖겠나. 그렇다면 대통령과 정부의 인사들은 국민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필자는 그 첫 실천이 바로 의원 겸직 장관들의 불출마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이 정권 성공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 의원들이라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번에 입각하는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국민에게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취임하자마자 퇴임 날짜를 세는 장관 밑에서는 어떤 개혁 과제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는 건 불문가지다.
정권 출범이후 지금까지 인사를 통해 친이계와 분명한 선을 그어온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친박으로만 친정체제를 꾸린 이상 친박의 운명은 자명하다. 물론 계파와 상관없이 새누리당 전체가 현 정부와 운명공동체임은 분명하지만 친박은 더더욱 그 무거운 책임에서 피할 길이 없다. 어떤 면으로 보면 그만큼 대통령이 친박에게 전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친박 세력이 그동안 박 대통령의 우산 아래에서 성장해온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친박이란 타이틀을 달고 정치를 해온 이들은 대통령의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친박 장관들은 대통령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이 하나라는 인식하에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살고 국민도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장관직이 내년 총선 배지를 다시 달기 위한 지름길이나 가속 패달 정도로 국민 눈에 비춰지는 건 막아야 한다. 내키지 않지만 대통령 차출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오해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총선 불출마 선언이란 ‘진심’으로 국민의 마음부터 움직여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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