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으로 욕을 먹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는 시기의 문제 때문이다. 그 미묘한 시기가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비박에 주도권을 뺏긴 친박, 일만 꼬이고 되는 게 없는 청와대, 집권 때부터 지금까지 벼르는 야당과 좌파세력 등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을 반기기보다 불편해할 이들의 신경이 지금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있기 때문이다.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앞두고 자기변명을 하기 위해서 빨리 냈다는 일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은 자원외교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MB는 자원외교 성과를 자랑했고 야당의 비판을 반박했지만 “과장된 정치적 공세는 공직자들이 자원 전쟁에서 손을 놓고 복지부동하게 만들 것”이라며 “해외 자원 개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하여 관련자를 엄벌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원 외교나 해외 자원 개발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그의 반박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읽지 않은 이들을 동원한 한겨레의 공허한 회고록 비판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설령 자화자찬의 자기변명이라고 해도 비판자들이 내놓는 대다수의 비판 논리 역시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회고록이 나온 후 가장 앞장서 비판한 한겨레가 동원한 논리가 그렇다. 7일자 토요판 커버스토리는 노태우, 김대중 전직 대통령들의 회고록을 작성한 작가들을 인터뷰 한 내용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작업이 얼마나 신중하고 객관적인 고증 작업을 거쳐 완성됐는지를 보여줌으로써 MB의 회고록이 가볍고 주관적인지를 강조하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회고록이 2년 만에 나왔다고 사실에 대한 고증이 덜 됐다거나 6년, 20년 만에 나왔다고 해서 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며 훌륭하다는 식의 논리는 엉터리다. MB가 ‘불도저’처럼 회고록을 빨리 냈다는 게 무슨 비판거리인가. 한겨레 스스로 언급했듯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도 2~3년 만에 회고록을 냈다. 이들이 회고록을 빨리 냈다고 그들 나라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지금처럼 유난스럽게 비판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겨레가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을 읽어보지도 않은 이들에게 회고록 평을 묻고, 그들의 비판을 실은 것도 황당하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회고록 집필자 김택근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은 자신이 회고록을 읽지도 않고 세간의 풍문만 들었다는 걸 당당히 밝히면서 이 전 대통령이 왜 지금 회고록을 냈겠느냐는 질문에 이런 평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람들 때문 아닐까. 대통령의 시간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 사람들이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이라는 억울한 측면이 있었을 것 같다. 일종의 항변이라고 느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한테는 직언하고 사태를 종합적, 체계적,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참모들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도자라고 했던 분이 함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 출간 실무를 맡았던 손주환 전 공보처 장관처럼 읽지 않아 직접 평가할 수 없다고 했어야 했다. 함부로 써서 안 되는 건 글뿐이 아니다. 말 역시 그렇다.
왜 품격 높은 잣대는 이명박 회고록에만 해당되나
한겨레의 MB 회고록 비판 시리즈 기사에서 더욱 가관인건 회고록 작가가 검증받지 않은 뉴라이트 논객이라고 비판한 대목이다. 한겨레는 대단한 작가나 신문쟁이들이 대통령의 회고록을 쓰지 않아 유감인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집필자가 반드시 유명 작가나 유명 칼럼니스트일 필요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회고록 작가의 존재감이 희미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생트집을 잡는 것이야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라는 얘기다. ‘시대유감’이란 필명을 쓰는 박용석씨는 ‘폴리젠’ ‘엔파람’ 등 매체를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글을 써왔던 논객 출신이다. 시원한 글맛과 나름의 논리가 돋보였던 이로 검증되지 않은 필력이라며 일방적으로 폄훼당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뉴라이트는 극우라는 프레임을 한겨레가 선호하는 건 알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극보수 운운하는 것도 한심하다. 미국의 기록문화에 대한 책이라는 <대통령의 욕조>를 쓴 이까지 동원해 미국 대통령 회고록 작가들은 역대 대통령들을 꿰고 있는 전문가 운운하는 대목까지 미치면 쓴웃음만 나온다. 그런 잣대를 한겨레는 왜 진즉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회고록 대필 작가들에겐 대지 않았나.
자화자찬이지만 이명박 회고록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MB회고록의 목표와 지향점이 문학상을 타자는 게 아닌 이상, 누구말대로 정말이지 소설처럼 쓴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처럼 써야겠다는 게 아닌 이상 필력 검증 운운할 필요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역사적인 평론까지 곁들인 회고록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MB 회고록의 목표는 읽어만 봐도 그게 아니란 걸 안다. 한겨레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그 유려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망하길 바라는 기도문을 외는 거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듯 중요한 건 포장지가 아니라 내용이다. 이명박의 회고록은 ‘이명박답게’ 씌어졌을 뿐이다. JTBC 손석희를 비롯해 온갖 매체들이 언제부터 그리 조지 오웰을 사랑했는지 몰라도 그가 했다는 말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를 열심히 인용해 비판하지만, MB를 비판하기 전에 크고 작은 거짓말을 열심히 쓰고 가르치고 보도하는 스스로들부터 되새김질 해봤으면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비판 내용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비판은 그저 ‘기분 나쁘다’는 인상비판 수준이다.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팩트에 대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한겨레를 비롯한 일부가 남북간 대화 등 민감해 보이는 일부 내용을 가지고 대통령기록물법을 위반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이 바보인가. 법적 검토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기밀을 담았겠나. MB 회고록이 다른 회고록과 비교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자화자찬의 성격도 강하다. 하지만 소위 10년 좌파정권 이후 정권교체로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가야 했던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고군분투했던 흔적은 잘 나와 있다.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은 MB의 회고록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적 선입견 없이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나 내각에 몸담은 분들이나 여야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각개의 지도자들과 일반 국민들도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굉장히 유익하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담담하게 읽어서 참고할 건 하고 또 동의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으로 하면 된다.” 필자의 생각도 이와 같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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