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제가 어리석고 순진했습니다.” 얼마 전 대법원으로부터 해고 최종 확정 판결을 받은 후 노조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조승호 전 YTN 기자는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대선캠프 특보 출신이 언론사 사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하면 사장 임명을 철회할 줄 알았고, 선배들이 힘을 실어줄 줄 알았고,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 할 때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막아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란다. 그래서 선배들과 대법관에게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었단다. “X까” 라고. 조 기자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 대목에서 솔직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하다. 힘 있는 권력자의 집 앞까지 찾아가 ‘골프는 못 쳐도 골프백은 잘 든다’고 알아서 재빠르게 백을 빼앗아 들쳐 업는 그런 기민한 사람을 순진하다고 보긴 어려운 얘기 아닌가. 그렇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공정 언론을 사수하기 위해 정권의 낙하산을 거부한다던 조 기자와 YTN 노조는 이렇게 10여년 전 노무현 정부 땐 실세 사장 영입을 위해 캐디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실세로 불렸던 박모 전 수석을 사장으로 영입하려다 실패한 사실도 이미 폭로된 적이 있다. 조 기자를 비롯해 노조 지도부는 정권마다 권력자나 장관급 인사를 찾아다녔다. 실세를 YTN 사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YTN 노조를 공정방송과 언론자유를 사수하는 정의의 사도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이렇게 노골적이고도 은밀한 이야기들은 필자가 지어낸 게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노조 스스로 게시판에 자랑스레 떠벌려 놓은 것들이다. <사장 선임 투쟁 과정 정리> 시리즈, <윗선의 전화를 기다리는데...> <사장이 돼도 강의는 나갈 수 있는지...> 등을 읽다보면 지금도 낯이 달아오른다. 자신을 순진하다고 강조하는 조 기자, 그의 투쟁은 그리 순진하지 않았다.
양심 없는 자들의 ‘양심 팔이’ 그 천박한 이중성
“예전부터 '세상 물정 모른다'며 제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 하셨던 떡봉이 선배님들”에게 시원하게 “X까”를 외친 조 기자가 “사법부에 묻는다”며 준엄하게 꾸짖는 장면은 솔직히 마치 무슨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미디어오늘에 기고를 하고, 그 글에서 “조국과 명예는 지킬 수 있었다”며 영화 <300>의 전사들을 찬양하고, “두려움의 크기가 언론인의 양심과 자존감의 크기를 능가하지는 못했다”고 스스로를 미화하며 “역사는 그런 면피성 행위로 결코 발전하지 않는다.”고 4.19와 5.18, 6.10 항쟁 운운하는 오버의 극치까지 가면 웃음기가 절로 가신다. 세상을 속이는 자보다 더 불쌍하고 위험한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다. 남을 의식한 자기최면과 자기미화가 병적 수준에 이른 자다.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X까”라는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얕고 천박한 본성을 감추지도 못하면서 무슨 역사 운운하나. 그럴듯한 단어와 양심가연 하는 문장을 잘 쓴다고 그런 인물이 되는 건 아니다.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조승호 기자는 미디어오늘 기고문에서 “내가 비록 어리석고 순진하지만, 그래도 양심을 저버리고 권력에 야합하지는 않은 채로 살아왔다. 또 앞으로도 계속 어리석다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더라도 비겁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6년 전으로 되돌린다 해도 뜻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계속 옆에 있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정치권력의 의중이나 개인 신상의 유불리가 아니라 나와 내 동료들이 공유하고 있는 언론인으로서의 건전한 상식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라고 썼다. 실세의 골프백을 기꺼이 날랐던 조 기자를 어리석고 순진하게 보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실세를 찾아 헤매던 전력까지 낱낱이 까발려지고도 언론인으로서 건전한 상식, 양심 운운하는 여전한 모습도 꼴사나운 일이다. 정의의 보루인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언론장악을 막아줄 줄 알았다며 꽤나 순진한 척 하면서 노조 게시판에다가는 대선배와 대법원을 향해 “X까”라는 이중인격을 드러내 보인 것도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방송 공정성과 언론자유와 같은 단어들이 때 묻고 닳고 닳은 용어로 전락한 것도 조 기자를 비롯해 아수라백작 같은 언론노조의 이중성 때문이다.
조 기자는 앞으로 언론인으로서 건전한 상식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실세를 찾아다니며 영입활동을 벌이던 과거의 모습이 건전한 상식에 따라 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게 방송 공정성과 언론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해고까지 당할 만큼 신념 있다는 사람이 할 짓은 아닐 것이다. 조 기자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알 만큼 아는 국민, 더 이상 기만 하지 말고 정말 언론인으로서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조 기자와 노조에게 필요한 건 순수한 게 아니라 정직한 모습이다. 정치투쟁을 언론자유 투쟁으로 둔갑시키는 뻔한 거짓말은 멈춰야 한다. 회사의 경영권까지 침해하면서 저지른 불법 행위와 막장 행위들을 온갖 정의로운 형용사로 덕지덕지 치장하는 헛수고 말고 진짜로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따라야 한다. 선배들이 그럴 줄 몰랐다며, 대법원이 그럴 줄 몰랐다며 순진한 척 여론을 기만하면서 뒤로는 “X까”를 외치는 양아치스러움부터 버리기 바란다. 그게 조 기자와 노조가 써야 할 진짜 반성문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