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아이러니하지만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고 돌아갈수록 오히려 그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기구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방송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데 있어 관계법을 근거로 원칙과 기준대로 하지 않고 야당이 반발한다고, 여론이 불리하다고 눈치껏 적당히 타협해선 논란의 불씨만 키울 뿐이다. KBS 언론노조가 입맛에 맞는 부분만 짜깁기 보도해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를 친일파로 둔갑시켰던 <뉴스9>에 방통심의위가 ‘권고’란 다분히 정치적 결론을 내린 것도 마찬가지다. 방통심의위 다수 위원들은 야당 측 위원들이 퇴장과 심의 거부 등으로 실력행사에 나서자 그 위세에 눌려 원칙대로 제재할 용기를 잃고 타협하고 말았다. 타협이란 필요할 때 하면 용기이지만 당장의 시끄러움을 피하겠다고 아닌 줄 알면서도 하는 건 비겁함이다. 필자는 이번 방통심의위 다수 위원들의 태도가 그랬다고 본다.
야당 측 일부 위원들과 언론 등은 방통심의위가 합의제 의결기구라는 점을 들어 다수 위원들의 판단이 반영된 현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가 마치 부당한 횡포인 것처럼 선동하지만 황당한 일이다. 합의제 의결기구란 의사 결정을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의견을 모아 한다는 의미일 뿐 여야 만장일치 합의에 따라 결론내리고 징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의에 신중을 기하고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의견이 맞설 때 다수의 판단을 따르는 건 민주주의 질서의 당연한 모습이다. 문창극 낙마사태를 낳은 KBS의 왜곡보도를 중징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음에도 야당의 전략적 반발에 넘어가 가벼운 행정지도로 끝낸 이번 방통심의위의 모습은 그런 민주적 기본절차를 무시한 것이었다. 더 심각한 건 방통심의위가 ‘권고’란 하나마나한 행정지도로 끝냄으로써 KBS의 야비하고 교활했던 보도를 비판한 많은 시청자 국민을 별 것 아닌 것에 눈에 핏대나 세운 한심한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문제 있다는데 동의했다지만, 도대체 어떤 개념을 가져야 ‘중징계가 필요한 왜곡보도’에서 갑자기 ‘별 문제없는 보도’로 돌변할 수 있는지 심의위원들의 판단 기준이 궁금할 뿐이다.
야권의 ‘합의제 정신’ 은 교활한 기만술에 불과
방통심의위가 합의제 의결기구라 다수결 원칙이 부당하다면 야당 측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엔 왜 다수결 원칙을 그토록 열심히 따랐을까. 자신들이 여당이었을 땐 충실히 따랐던 원리를 야당이 되어 불리하다고 거부하는 태도가 과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리할 땐 아무 말 않다가 불리해지니 ‘합의제 정신’ 운운하는 걸 어느 누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의 결과를 놓고 야당이나 친야 단체, 그들의 기관지들은 툭하면 여야 비율의 구조적 한계라느니, 거수(擧手)는 안 된다느니, 합의제 정신을 살려야 한다느니 하면서 선동하지만 이런 얄팍한 행태야말로 국민을 얕보고 교활하게 속이려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지난 달 ‘제3기 위원회에 바란다’는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에서 한국PD연합회 박건식 수석부회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여권추천 인사의 의견이 방통심의위 최종결론과 일치된 비중이 85%인데 비해 야권추천 인사의 의견이 최종결론과 일치하는 것은 23%에 불과한 것은 심의위가 합의제 기구가 아닌 정쟁기구로 변한 것이다. 여당추천 6명, 야당추천 3명의 의사구조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일방향성·획일성만 남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합의제 기구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오도하는 잘못된 주장이다. 다수인 여권 추천 인사 의견이 심의 결과와 일치한다고 정쟁기구라는 논리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KBS의 문창극 왜곡보도나 JTBC 다이빙벨 보도 비호와 같이 야당 추천 위원들이 매번 앵무새 같이 똑같은 논리로 야당과 언론노조를 편들면서 다수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는 그럼 정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야권의 주장만 정의고 진리이고 여권 주장은 불의이고 정쟁이란 말인가? 이런 식의 유치한 주장은 지긋지긋한 진영논리와 이중잣대에 불과할 뿐 합의제 정신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땐 방통심의위를 잘 써먹다가 정권이 바뀐 뒤엔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합의제 운운하며 다수 측을 압박하는 건 오로지 자신들에 불리한 현 구조를 어떻게든 유리하게 바꿔보겠다는 전략에 불과하다. 이번 KBS의 문창극 왜곡보도 심의를 놓고 퇴장이나 심의거부와 같은 방법을 동원한 야권 위원들의 수법도 그동안 자주 보던 구태에 불과하다. 참석이나 심의 자체를 아예 거부하여 ‘반쪽’이라는 딱지를 붙여 방통심의위의 권위와 신뢰에 흠집을 내겠다는 못된 심보에 불과하다.
다수 위원들의 비겁함이 방통심의위를 더욱 정쟁 속으로 몰아갈 것
방통심의위의 이번 심의 결과가 유감인 것은 결과 그 자체보다도 야권의 이런 전략전술에 속거나 아니면 나약하게 타협한 다수 위원들의 비겁한 태도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숱한 심의에서 야당, 언론노조, 시민단체의 압박과 겁박, 여론전에 못 이겨 전혀 생뚱맞은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 위원들을 비롯해 야당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은 야권의 특성상 야당의 논리를 완벽히 대변하는 강성들로만 구성돼 있다. 그런 면에서는 여당 추천 위원들은 그들의 ‘충성심’이나 그들 나름의 정의감에서 나오는 실천력엔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여당 추천 위원들이 그들의 지독한 정파성이나 진영의식 따위를 본받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전문적 판단으로 내린 결론에 대해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야권의 압력이나 여론전에 눌려 타협한다거나 어설픈 정의감에 ‘합의제 정신’ 운운하는 기만술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다수를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야권의 적반하장식 공세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점 명심하길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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