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KBS 이사회 이길영 이사장이 26일 사표를 제출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이사장의 사표는 그대로 처리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임기가 아직 1년 여 남았는데도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한 것을 놓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이 이사장에 반감을 가진 언론노조 기관지들은 얍삽한 잔머리부터 굴리는 눈치다. 이 이사장이 ‘외부압력’으로 사표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방송장악’ 프레임으로 박근혜정부를 또다시 곤경에 빠뜨려보겠다는 틀에 박힌 정략이다. 이미 길환영 퇴출 사건에서 맛본 익숙한 전략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민희 의원은 당장 “이 이사장의 사표제출이 개인의 비위 때문이라면 합당한 법적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만일 여권의 압력 때문이라면 ‘방송장악 어게인’인 만큼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가정법 하에 이길영 이사장의 사퇴 배경에 뭔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려는 얄팍한 꼼수다.
최 의원은 “이 이사장은 이명박 정권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라며 “세월호 침몰사고를 왜곡·축소보도 하는 등 정권 입맛에 맞춰 이사회를 이끌던 그가, 왜 하필 지금 상황에서 물러나는 지 의아하다”라고 주장했다.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 심판론’의 역풍을 맞고 완패했어도 여전히 세월호 정략화를 버리지 못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강경파의 ‘세월호 관성’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는 주장엔 실소가 나온다. 그럼 이 이사장이 관둬야 할 적정한 시기라도 있단 말인가? 설마 최 의원이 이 이사장이 임기를 무사히 마쳐야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곤 믿기 어렵다. 이유와 시기가 어떻든 이 이사장은 직을 그만두는 것이 맞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언론노조가 의도한 분란을 이유로 길환영 전 KBS 사장의 해임을 주도했고, 결과적으로 언론노조의 공작을 성공시키는 데 그도 한 몫을 한 셈이다.
KBS 이사회가 뽑은 조대현 사장의 기가 막힌 행보
이길영 이사장이 나간 자리엔 보궐 이사가 곧 선임될 것이다. 방송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한 달 내에 새로운 이사를 추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행법과 정치구조 아래에서 KBS 이사로 친박 인사가 추천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친박 인사이든 아니든 그것과는 별개로 현 KBS 이사회가 이길영 이사장 한 명의 사표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련의 KBS 사태와 그 책임을 모른 척 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KBS 언론노조 측의 노림수에 넘어가 우왕좌왕하다가 임기가 보장된 사장을 퇴출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어처구니없는 작태에, 어떤 인물이 KBS의 사장으로 적합한지 비전과 신념으로 선택하기는커녕 각자의 이기적 욕망으로 야당이 그렇게 갈망하던 인사를 KBS 사장으로 앉혀 놓는 황당한 일을 벌였다. 그렇게 탄생한 조대현 사장은 전 사장 퇴출에 앞장섰던 노조 핵심 인사들을 팀장 등으로 앉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국기자협회 최근 기사에 의하면, 조 사장은 김인규, 길환영 전 사장과 달리 ‘소통’ 행보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노조에 대해 “중요한 경영 카운터파트너”라고 밝힌 사실을 증명하듯 25일 열린 보도본부 간담회에서는 기자협회 TF팀이 제안한 국장임명동의제를 포함한 보도본부 혁신안에 대해 “여러분이 원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많은 국민이 방만한 경영과 함께 KBS를 장악한 무소불위 정치노조를 제압하고 개혁해주길 바라는데 신임 사장은 거꾸로 ‘노영방송 KBS’를 더욱 강화시켜주겠단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장 임명동의제는 간부가 노조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최악의 제도로 노조에 칼을 쥐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국장임명동의제가 이루어진다면 보도본부를 비롯해 노조가 원하는 노조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인물들이 KBS를 끌고 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KBS 언론노조가 자행한 문창극 왜곡 보도사태는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도 있다.
‘KBS 사태’의 진정한 책임자는 KBS 이사회, 이사장 한 명으로 꼬리 자르기 안 돼
정치에 물들고 찌든 노회한, 준정치 집단인 노조에 조 사장처럼 ‘경영 파트너’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 접근한다면 방만한 KBS 개혁은 물론 KBS의 온갖 적폐는 절대로 개혁해낼 수 없다. 조 사장이 인간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후배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는지 몰라도 공영방송 KBS 사장으로서는 부적절한 태도다. 사장이 되자마자 예상대로 우려스러운 행보 일색인 조 사장이 문창극 왜곡 보도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미지수다. 사랑스러운 후배들 뜻대로 그저 “여러분이 원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KBS든 MBC든 정치노조에, 그것도 특정 정치세력과 사실상 연대를 하고 있는 편향된 노조에 점령당하다시피 한 공영방송사에 조대현 사장과 같은 인물을 앉혔다는 건 조 사장 개인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최악의 인사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KBS 개혁은 아예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 이길영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들은 작금의 이런 어이없는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이다. 이 이사장 단 한명의 사표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KBS 이사회는 작금의 KBS 현실에 대한 모든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KBS 이길영 이사장뿐 아니라 KBS 이사회의 총사퇴를 요구한 KBS 제1노조의 성명에 필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길 전 사장의 무리한 퇴출 뿐 아니라 신임 사장 선출 과정에서도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여론의 정당한 비판도 무시하고 결국 조대현 사장을 뽑는 강수를 뒀다. 그런 무리수까지 둔 KBS 이사회는 앞으로 있을 KBS 조대현 체제의 행보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공영방송 사장이 국민적 염원대로 KBS를 개혁할는지, 아니면 노영방송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지 똑바로 지켜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져야할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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