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길환영 사장이 내쫓긴 자리는 결국 조대현 전 부사장이 차지하게 됐다. 사장 공모를 다시 해야 한다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KBS 이사회가 어제 신임 사장 후보로 조 전 부사장을 내정했다. 혼란과 무질서, 집단이기주의와 정치공작이 판을 치던 KBS가 안정을 찾으리란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그에 대한 KBS 내부 구성원들의 반응 때문이다. “제2의 길환영”이 될까 우려된다는 언론노조 측 반응 밑에 숨어있는 진짜 의도, ‘기회주의’에 가깝다는 KBS 내부 직원의 부정적 평가가 조 전 부사장이 KBS를 걱정하는 많은 국민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인물일 확률이 높아 보여서다. 만일 우려대로라면 길 사장을 내쫓고 좀 더 노조 친화적인 인물을 사장으로 앉히려는 언론노조 측의 작전은 대성공이 된다. 반면 KBS 이사회는 노조에 휘둘려 KBS를 망친 원흉으로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KBS 이사회는 언론노조가 절대불가라던 고대영, 홍성규씨를 택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리곤 택한 인물이 조대현 씨다. 물론 언론노조의 첫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조대현 씨가 김인규 사장 체제에서 부사장을 맡아 G20, 천안함 등 수많은 관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G20과 같은 국가의 큰 행사와 천안함 폭침과 같은 비극적 사건에 관해 공영방송인 KBS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이상한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일어났다면 KBS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긴가. 황당한 주장이다. 그걸 ‘관제 프로그램’이라 폄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댄 것은 언론노조의 과거 행태로 보아 그만큼 조 사장 후보자에 관대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조 후보자가 그 정도로 친정권적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언론노조가 선정한 부적격 사장 투표에서 고대영 씨가 압도적 반대표를 얻을 때 그는 불과 19%(192명)의 응답률을 얻었다. 이 사실은 그에 대한 언론노조의 반감이 그만큼 덜하다는 얘기다. 즉, 조 후보자가 언론노조로부터 그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조 후보자가 과연 KBS가 저지른 문창극 왜곡보도 만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사장 선임 절차에 치명적 결함 발생시킨 KBS 이사회의 무능과 무책임
조대현 씨를 사장 후보로 내정한 KBS 이사회의 사장 선임 절차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 KBS노동조합의 성명 내용대로라면 조 후보자는 임기 내내 흠집 있는 사장으로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 이사가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예정된 2명의 사장 후보를 면접하지도 않고 최종 표결절차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나. KBS 사장으로 특정인을 사전에 점찍어 놓은 게 아니라면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또 KBS 이사쯤이나 된다는 사람이 사장 후보 면접을, 그 형식과 절차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병원에 가겠다고 후보 면접에 불참을 하나. 면접에 도저히 참석하지 못할 만큼 그때 상태가 심각하기라도 했다는 얘긴가. 도무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대현 후보가 단 1표차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보면, 원칙과 절차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KBS 이사의 이런 무책임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언론노조 측은 조대현 사장 후보자에 대해 당장 길들이기에 들어갔다. KBS본부노조는 그가 사장 후보로 내정되자마자 성명을 내고 “아무리 KBS 이사회로부터 사장 임명제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조대현 씨가 부적격후보라는 딱지를 떼고 정상적으로 사장직을 수행하려면 KBS 구성원들의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의 선결과제로 5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위한 방송법 개정 추진 △취임 1년이 경과한 시점에 신임평가 실시 △주요국장 임명동의제 등 국장책임제 도입 △부당인사 원상회복 및 인적 쇄신 단행 △대화합 조치 실시 등을 내세웠다. 본부노조는 이 다섯 가지 선결 과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부적격 사장’으로서 반대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부적격 사장’이라는 딱지를 미리 붙여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은 이미 언론노조의 전형적인 수법과 행태를 익히 봐왔다.
하자 있는 사장 길들이기 들어간 KBS본부노조의 의도와 작전에 모두가 꼭두각시
문제는 조대현 사장 후보가 이런 노조의 수법을 가볍게 물리치고 KBS의 고질적 병폐를 과연 해결해나갈 수 있는 뚝심 있는 인물이냐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든 조 후보는 보수우파정권 시대에(보수우파정권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현 구조 속에서 언론노조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일지 모른다. 그런 우려가 현재로서는 너무나 크다. KBS 구성원 중에는 그가 지나치게 노조에 친화적인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충 정권의 눈치도 보면서 임기 내내 노조에 약점 잡혀 끌려 다니다 개혁은커녕 KBS를 더 깊은 수렁에 몰아넣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태로 그가 문창극 왜곡보도 만행을 저지른 노조에 원칙적으로 개혁의 칼을 댈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대현 사장 후보는 자신이 내정된 직후 모 언론사에 "조만간 KBS 내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반드시 KBS의 왜곡보도 만행에 대한 수습책과 방지책도 나와야 한다.
일부 언론은 KBS 이사회가 사장 후보로 비교적 중립적 인사를 선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그러나 언론노조로부터 반발이 심한지 덜한지가 중립인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언론노조가 그동안 보였던 극단적인 이념, 진영, 패거리의식, 집단이기주의 행태는 오직 노조의 기득권 보호와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른 진영논리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언론노조에게 거부감이 덜한 인사라고 중립 인사라는 것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언론의 공정성과 진정한 의미의 중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KBS 이사회가 공영방송 사장을 선정하는 기준이 이렇다면 볼장 다 본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번 사장 선임은 그 절차에도 심각한 하자가 있을뿐더러, 이사회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건데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KBS 이사회가 모든 책임져야
필자는 원천적으로 이번 사장 선임이 절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KBS 사장 임면권이 있는 박 대통령이 이를 지적하여 사장 공모를 다시 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절차상 하자가 있는 데도 조 후보자를 그대로 내정한다면 잘못된 관례를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영이 서지 않는 사장, 약점이 있는 사장이 노조 개혁을 포함해 KBS 개혁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대현 사장 후보자도 이런 문제를 안고 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점을 안다면 본인이 먼저 사장 공모를 다시하자고 해야 옳다. 절차적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KBS 사장이 이런 식의 엉터리로 확정된다면 개혁은커녕 어~하는 사이 눈뜨고 코 베이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피해는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책임은 전적으로 KBS 이사회에 있다. 무책임과 무능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KBS 이사회가 앞으로 벌어질 모든 사태와 파장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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