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소위 ‘문창극 사태’로 KBS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지만 우리는 이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좌파언론으로부터 ‘제 식구 감싸기’라는 조롱을 받은 중앙일보와 이웃 집 난리를 불구경하듯 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태도 문제다.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좌파언론과 언론노조 기관지들이 정파와 이념을 앞세워 KBS의 보도를 이용해 선동하던 것이야 그들의 습성이니 그렇다 치자. 평소 중도연 하던 중앙일보가 문창극 파동에서 가장 우익적 보도에 앞장선 것이나, 우파의 가치를 강조하던 조선과 동아일보가 KBS의 왜곡 보도를 검증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하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익보도나 우파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진영논리, 패거리의 논리와 이익을 최우선하는 좌파언론의 병폐 못지않게 이번 문창극 파동은 우파언론이 얼마나 각자의 사익에 충실한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단말마의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끝난 문창극 총리 후보의 자진사퇴 사건은 이를 주도한 KBS 언론노조와 무기력한 정부여당의 책임뿐 아니라 정의로운 ‘우파지’를 자임하는 이들 언론의 무책임하고도 의도적인 방관 속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이 총리감 문창극의 자질을 비판적으로 검증 보도한 결과가 낙마였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문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조중동의 사익적 계산이 빚은 결과라 참담하다. 사실 이번 문창극 보도에서 가장 빛이 났던 건 중앙일보였다. 친일파로 낙인찍힌 채 대다수 언론으로부터 반론권조차 얻을 수 없었던 문 후보자에 대해 앞장서서 그의 해명을 전하고, 진실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보도했다. 또 KBS가 어떤 방식으로 문창극을 난도질을 했는지 언론학자와 자사 논객들의 칼럼을 통해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독자에게 알렸다. 이때처럼 중앙의 기사와 사설, 칼럼이 빛이 나고 주옥같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문창극부터 김영희까지, 김진과 송호근을 함께 싣는 게 중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좌파언론의 조롱에, 안타깝지만 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문창극이 중앙일보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 신문이 과연 이렇게 열정적으로 정론 보도할 수 있었을까. 조선이나 동아 출신의 인물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 보도했을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중도의 자세라는 것이 마치 이편도 나쁘고 저편도 나쁘니, 혹은 이편도 옳고 저편도 옳으니 여론 눈치까지 적당히 봐서 종합해 둘 사이 적절한 위치에 서는 것인 양 호도하던 것이 바로 중앙일보였다. 문창극과 김영희(대기자)를 지면에 다 실어주는 게 마치 중도인 것처럼 뽐내던 게 이 신문의 자세였다. 계열사인 JTBC의 손석희 뉴스가 검증되지 않은 다이빙벨 선동에 눈이 멀어 국민을 기만해도 비판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바로 중앙일보였다. 그랬던 중앙이 문창극 사태에서만 유독 KBS의 왜곡보도를 비판하고 언론의 보도를 꾸짖으니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해를 할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앙일보의 문창극 보도는 그 어떤 언론과 매체보다 정론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중앙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점도 분명하지만, 그렇다 해도 언론이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중앙처럼 보도해야 하는 것이 옳다. 언론의 정파적, 이념적 보도가 지금처럼 강한 시기에서 정파적 보도는 무조건 지양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도 힘든 시기에, 각 신문이 논조에 따라 반대하는 진영과 인물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KBS식으로 거두절미하고 엿 먹이겠다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매장시키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해 보도하는 것은 좌우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공공의 적으로서의 행위다. 일시적으로 이런 행위들이 누군가에 득이 된다고 이런 분위기에 눈감고 용납한다면 이런 저질의 황색 언론이 활개를 치는 사회는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목을 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게 틀림이 없다.
문창극 사태를 계기로 중앙일보가 문창극부터 김영희까지, 김진과 송호근을 함께 신문에 싣는 게 중도라는 편리한 개념부터 재고해보길 바란다. 중앙 나름의 고민은 있겠지만 분명한 건 지면에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명품신문, 명품언론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사안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따지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고, 화합과 통합을 위해 타협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과연 중앙이 그런 선택을 ‘가치’에 따라 했는지, 아니면 상업성이나 적당주의를 기준으로 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봤으면 한다. 문창극 구하기에 나선 중앙일보의 정의로운 보도가 단지 중앙 출신의 행운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필요하다.
KBS 허위보도 판결나면 조선과 동아의 비겁함도 기록될 것
초기 문창극 사태에 두 손 놓고 방관하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뒤늦은 KBS 비판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KBS의 첫 보도 때 받아쓰기하던 이 두 매체의 자세는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문창극 친일파’ ‘총리 후보자의 식민사관’ 등 온갖 왜곡이 판을 칠 때, 이런 여론이 과연 진실인지 KBS의 보도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가장 먼저 따졌어야 할 언론이 바로 이 두 신문이었다. 좌파진영이 문창극 개인 뿐 아니라 정부와 우파세력 전체를 친일의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이 두 신문은 초기에 팔짱만 끼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우파의 가치를 지키는 정론지를 자처하던 이 두 신문이 잘못된 정보로 한 개인이 인격이 말살되고 마녀사냥을 당하는 광경을 그냥 구경꾼처럼 지켜봤다는 건 충격이었다. MBC가 문창극의 교회 강연 동영상 전체를 공개할 즈음에야 뒤늦게 나서서 진실을 적극 보도하기 시작했다는 건 비극 중 비극이다.
필자는 이 두 신문이 초기에 왜 문창극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 대한민국 언론 중 가장 많은 특종을 내고 능력 있는 기자들을 많이 배출한 조선과 동아가 처음부터 동영상 전체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욱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다만 문창극이 경쟁사인 중앙 출신의 인물이라서라는 일각의 오해가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라도 문창극 사태는 언론이 주도하고 또 언론이 직무유기한 최악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문 전 후보자가 KBS의 왜곡보도를 끝까지 문제 삼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건이 법원으로 간다면 필자는 100% 문창극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표면적인 단어 몇 개로 문 전 후보자의 진의를 완전히 왜곡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만큼 대한민국 국민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허위보도로 피해를 입지 않을 권리를 우리 법원은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법원이라면 공직자 검증보도를 핑계로 한 개인을 짓밟은 KBS의 횡포를 그냥 둘 리가 없다. 그런 법원의 결과까지 나온다면 조선과 동아의 비겁함은 사실상 법원의 판결까지 받는 셈이 된다. 문창극 사태는 사실과 진실을 뭉개는 좌파언론의 압도적인 진영의식, 패거리 의식 뿐 아니라 소위 우파언론의 비겁함과 옹졸함까지 보여줬다. 사적 이익보다 사실보도, 진실보도를 먼저 생각했어야 할 신문들이 그렇지 못했다는 건 우리 언론이 병들었다는 얘기가 되고 그런 언론이 조성한 여론 가운데에서 사는 국민이 스스로 과연 정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국민이 모든 언론을 의심하게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 좌파언론의 극단적인 패당짓거리를 비판해도 모자랄 판에 우파언론마저 믿기 어렵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문창극 사태를 계기로 언론은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증명해야할 위기에 처했다. 그 심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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