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KBS노동조합(1노조)이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출연 프로그램 불방을 길환영 사장이 주도했다는 폭로를 하고 나선 건 속보이는 짓이었다. 언론노조KBS본부가 CNK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과 같은 폭로로 길 사장 공격에 한창 피치를 올리는데, 혹시라도 이 모습에 보수우파 진영이 반발해 길 사장을 퇴진시키는데 걸림돌이라도 될까 박근혜라는 이름을 팔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이야 어떻든 길 사장을 반드시 퇴진시키겠다는 목표는 KBS본부노조나 KBS노동조합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웠던 건 길 사장의 답변이었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외주제작팀장이었던 길 사장은 당초 기획 의도가 4당 대표 가족을 방송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당 섭외가 어려워 방송 시점을 놓쳤기에 불방이 됐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제작에 관여했던 어떤 이는 “처음부터 4당 대표를 모두 초청하는 토크쇼로 기획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고, 길 사장은 다시 “특정 정당 대표 1명에 대해 1시간 분량의 홍보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서 일방적 방송됐다면 오히려 형평성을 크게 잃어 다른 정당의 비판을 받아야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맞는 말이다.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이 특정 정당 대표를 위해 방송을 한 시간씩이나 할애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노조나 길 사장 해명은 둘 다 썩 믿음직하진 않다. 방송과 무관한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이었던 정연주씨가 마치 점령군처럼 사장 자리에 앉아 공영방송을 타락시켰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프로그램으로 야당과 보수 세력을 난도질하던 시기에 보수 야당 대표, 특히나 박정희의 딸에게 애초 그런 방송을 허락할 리 없기 때문이다. 아니, 단언컨대 그 시절 박근혜 홍보 방송은 불가능한 시기였다. 노조나 길 사장 모두 불가능한 얘기를 가지고 불방을 주도했느니 형평성 때문에 그랬느니 하는 건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하다.
노조 뜻대로 방송하면서 ‘정권 방송’ 비난만 산 길환영 사장의 무능과 무기력
KBS 이사회가 길 사장의 해임 여부에 대한 결론을 다음 달 초로 연기한 상황에서 언론노조KBS본부와 KBS노동조합은 총파업에 들어갔다. 뉴스와 예능, 드라마 제작과 방영에 상당부분 차질이 예상이 된다고 한다. KBS본부노조는 길 사장이 세월호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둥, 해임시키지 않으면 월드컵 방송이 중단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둥 유치한 폭로와 협박, 정치공세로 이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좌파진영 각종 단체들도 촛불을 들고 길 사장 사퇴 압박에 나섰다. 길 사장의 해임을 반드시 막아야할 이유를 딱히 찾지 못한 보수우파의 방관자적 분위기 속에서 아마 이대로라면 길 사장은 해임될 가능성이 크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그렇다고 길 사장은 언론노조의 공격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신이 왜 해임돼서는 안 되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만약 자신에 대한 공격과 해임 선동이 부당하다고 느꼈다면, 그래서 분노했다면 아마도 그는 언론노조 측에 전면전을 선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작 반박 보도자료로 항변하고 그저 조용히 있는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길 사장이 만약 해임된다면 그건 순전히 그가 김종국 전 MBC 사장과 같은 길을 갔기 때문이다. 정권과 언론노조 양측을 적당히 눈치 보면서 KBS 개혁보단 자신의 연임에 더 큰 관심과 목표를 두었기 때문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과 KBS본부노조 측은 길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에 간섭하고 청와대의 눈치를 봤다지만 그런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적 인물인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강철왕’ 하나 관철시키지 못했다. 중국 국적을 가진 간첩 혐의자를 옹호하고 그의 일방적 주장과 관점대로 만들어진 시사프로그램이 버젓이 제작, 방영되기까지 별다른 손도 쓰지 못했다. 뉴스보도에서도 길 사장이 막아 아이템이 보도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권에 충성을 다한다’는 모욕적 비난과 왜곡된 공격을 받고 사장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숱한 좌편향 이념적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 KBS를 보수세력을 공격하는 진지로 타락시켰던 정연주 전 사장도 그 같은 이유로 옷을 벗진 않았다.
길 사장, ‘KBS 사태 진상조사특별위원회’로 진실의 파수꾼으로 거듭나야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어이없는 폭로가 촉발한 KBS 사태가 최종적으로 길환영 사장의 해임으로 끝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언론노조 측과 야당, 좌파시민사회단체들은 길 사장의 퇴진과 더불어 KBS 사장 선임 문제 등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또 들고 나올 것이다. 길 사장 한명의 사퇴로 이들이 만족하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길 사장이 KBS 이사회의 최종 결정에 따라 해임되든 아니든 KBS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길 사장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지금까지 보인 소극적 행보를 걷어치우고 달라져야 한다. 실제 KBS를 장악하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어떤 세력인지 국민 앞에 낱낱이 고발해야 한다. 그동안 KBS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부당한 개입을 시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해온 세력의 실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KBS공영노조가 제안한 ‘KBS 사태 진상조사특별위원회’와 같이 노조와 사측을 불문해 모든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일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비겁한 침묵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될 것인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는 길 사장에게 오롯이 달렸다. 길 사장이 가는 길은 김종국 전 MBC 사장과는 달라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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