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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고건, 문국현만도 못한 안철수의 새정치

2014년 값어치 없는 안철수의 새정치는 퇴출시켜야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 때부터 줄곧 정치권의 태풍의 핵으로 존재했던 안철수 의원이 사실 상 민주당으로 입당했다. 형식상으로는 제3신당 창당 후 민주당과 합당한다 하지만, 늘 창당과 합당을 반복해온 민주당의 역사로 볼 때, 개별 입당에 가깝다. 특히 안철수 의원 측은 김성식, 윤여준 등등의 이탈 조짐을 보이면서, 실상 안철수 한명의 입당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안철수의 새정치 선동이 막을 내리면서, 과연 과거의 새정치 혹은 제 3후보들의 행보와의 차별점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정치에 이은 제3신당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 사기극의 여파를 예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박찬종 전 신정당 대표이다. 박찬종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여당 공화당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소장파를 자임, 80년대 야당 돌풍의 근원지 신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뒤 김대중, 김영삼 양김 분열 이후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외로운 독자 노선의 길을 걸어갔다.

3김 최절정기에 정면승부를 건 박찬종의 원조 새정치

이런 박찬종 전 대표에게 최적의 기회가 온 것은 1995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이 때 박찬종은 여당의 김영삼 세력, 제1야당의 김대중 세력, 제2야당의 김종필 세력과 홀로 맞붙는다. 초반에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던 박찬종 대표는 그러나 김대중과 김종필 연합세력이 밀리면서, 결국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그 이후 박찬종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에 입당하며, 독자노선을 접게 된다.

박찬종 전 대표의 정치실험은 성공의 결실을 맺지는 못했으나, 이른바 3김의 최절정기 시절, 이 3김과 맞서면서 도전했던 실험은 훗날의 제3 노선의 원조로 기록된다.

그 다음 후보로는 고건 전 총리이다. 물론 그 이전에 97년 대선에 독자신당으로 참여한 이인제 의원이 있다. 그러나 이인제 의원은 독자노선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 사실 상 상도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아 이 글에서 제외한다.

고건 전 총리는 오랜 관료생활 끝에 김대중 정부에서 전문가 영입 케이스로 서울시장의 자리에 오른다. 서울시장으로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무현 정권에서는 초대 총리로 영입된다. 이런 고건 전 총리에게 기회가 온 것은 노무현 탄핵 사건이다. 2004년 3월 11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고건 전 총리는 약 3개월 간 대통령 대행 자리에 오른다. 당시 친노세력들의 도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정치권에서, 조용한 행정의 고건 전 총리는 온건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하루아침에 대선후보 1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문제는 친노세력의 열린우리당과 보수세력의 한나라당 사이에서의 노선 문제였다. 고건 전 총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서울시장과 총리를 지냈으나, 평생 온건보수 노선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그러다보니 열린우리당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등 대선후보가 즐비했던 한나라당에서의 영입콜도 없었다. 승부는 오직 독자신당이었으나, 양대 세력의 사이에서 공간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2006년 10월 김정일의 북핵폭탄 실험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이에 고건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 이후의 통합신당의 입당도 예상되었으나 깨끗하게 대선후보 자리를 포기했다.

이미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이 5%대에 머물렀던 시절, 친노세력의 재집권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직 친노세력의 집권 방식은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하여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친노세력의 심판을 추진해온 보수우파 세력은 고건 전 총리가 친노세력의 정치생명을 이어주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그 점에서 고건 전 총리의 자진 퇴진은 2007년 대선에서의 친노세력에 대한 심판을 용이하게 해준 측면이 있다.

고건 전 총리가 퇴진하자, 이번에는 유한킬벌리의 문국현 대표가 제3후보로 급부상한다. 이 역시 친노세력의 퇴조로, 그 누구도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맞설 수 없다보니, 외부에서 영입론이 거세진 셈이다. 문국현 후보는 성공한 CEO로, 샐러리맨의 신화 이명박 후보와 맞상대할 유일한 야권 후보로 손꼽혔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 역시 이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친노세력과 손을 잡아서는 정치를 이어갈 수 없다 판단 창조한국당을 창당하여 독자노선을 걷는다. 대선에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 다음해 총선에서는 본인이 이명박 정권의 가신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3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에 걸리면서, 결국 꿈을 접고 만다.

인생을 건 도전을 했던 박찬종과 문국현, 한계를 알고 용퇴했던 고건

박찬종, 고건, 문국현 이들 3인과 현재 안철수의 새정치를 비교하면 너무나 극명히 대비된다. 박찬종, 문국현은 일단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민들의 제3노선의 열망을 이어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다해서 양대 세력과 맞붙었다. 그 과정에서 박찬종, 문국현은 거의 전 재산을 정치에 다 바쳤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서울시장 재보선, 대선, 이번 지자체까지 단 한번도 독자노선으로 승부를 건 바가 없다. 모두 박원순, 문재인, 김한길이라는 기존 민주당 세력과 야합했다. 도저히 승부가 어렵다면, 차라리 고건 전 총리처럼 용퇴의 길을 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도 않았다. 물러날 때 은근슬쩍 한쪽을 지지하며 한 다리를 걸쳐놓았다.

최근 박찬종 대표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새정치는 한번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시대마다 구태 정치가 쌓이면 새정치의 바람으로 쓸어나가는 것이다”라며 새정치의 효용성을 인정했다. 박찬종 대표가 3김 시대를 끝내지는 못했으나, 3김시대에 기생해온 구태 가신들의 입지를 좁히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고건, 문국현 등은 정치도박에만 매몰된 친노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과연 지금껏 안철수는 박찬종, 고건, 문국현 만큼의 새정치의 긍정적 효과라도 내놓은 게 있을까. 특히 김대중 시대의 잔재나 다름없는 김한길과 손잡은 새정치가 가능이라도 할까. 최소한 2014년의 새정치가 박찬종, 고건, 문국현 만큼의 값어치도 없다면, 하루빨리 퇴출시키고 또 다른 새정치를 찾아내는 게 대한민국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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