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보통의 많은 질병들은 약물 치료를 하던 도중 중단했다가 다시 치료할 경우 증상이 훨씬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경우 환자가 스스로 다 나은 것처럼 느낀다고 먹던 약을 끊었다가 재발하면 다음 약은 더 독하고 강한 것으로 써야 한다. 한 번 시작했으면 병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지 일시적으로 개선된 듯 느낀다고 섣불리 치료를 중단할 경우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MBC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재철 전 사장이 힘들게 시작한 치료가 김종국 사장에서 중단됐다가 이제 막 다시 시작됐다. 정치노조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MBC를 다시 치료하기 위해 안광한 사장이 진두지휘해 나가겠지만 그만큼 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실 안 사장의 최근 인사를 놓고 MBC본부노조 측이 보복인사라며 비난을 퍼부은 것이나 사측 임원들을 지속적으로 특정인의 하수인처럼 묘사하며 모욕적인 폄훼를 일삼는 것은 공격 축에도 끼지 못한다. 문철호 부산MBC 사장이 며칠 째 노조의 출근저지에 막혀 있는 모습도 익히 봐 왔던 풍경이다. 이런 표피적인 현상보다 미디어오늘이 최근 MBC관련 기사를 줄인 듯한 모습이나 노조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한 잽이나 날리고 있는 걸 더 주목해야 한다. 2012년 파업 실패의 후유증으로 그때와 같은 ‘전쟁’을 지금 치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와신상담의 의미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랄까. 잔뜩 몸을 움츠린 노조는 언젠가 자신들이 불리한 전황을 단박에 뒤집을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안 사장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념과 정치성만 맞으면 밀월관계, 김재철·안광한 사장은 때리기
김재철 전 사장 재임 시절인 2011년 사상 최고의 경영 성과를 올렸던 MBC는 김종국 전 사장의 10개월동안 다시 추락했다. 시청률은 지상파 방송사 중 3위로 내려앉았고, 영업수지 적자의 폭도 상당히 컸다고 한다. 시청률을 올리겠다며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를 갈아치웠는데도 시청자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했다.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이란 한계를 드러내면서 오락가락하며 노조 눈치나 보는 사이 MBC의 경쟁력은 2012년 파업 때로 돌아가는 듯 했다. 안 사장이 취임하면서 “MBC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며 걱정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김재철 전 사장이 시청률 1위, 최고의 경영 실적을 달성했을 때도 온갖 트집을 잡아 동네북 때리듯 하던 본부노조는 신기하게도 경영성과가 그렇게 엉망이었는데도 김종국 사장 때는 별 말이 없었다. 단체협약 문제로 잠시 날을 세우는 듯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쇼였다. 오히려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노조가 현실적 판단으로 김 사장의 연임을 지지했던 점도 분명하다.
이런 점들은 노조가 MBC 사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시청률이나 경영성과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 전 사장의 사례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 전 사장은 코드 인사와 월권행위에도 노조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임기를 무사히 채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모씨의 아들이 출입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 인사위원회를 통해 해고되자 여론 비난이 쏟아지든 말든 당사자도 아닌 사장이 몇 차례의 재심을 요구해 기어코 정직처분으로 만들어줬던 사건은 백미였다. 만일 김재철 전 사장이나 안광한 사장 아래에서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두 사람은 당장 자리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정권에 충성을 다했던 최 사장이 무사히 임기를 채우도록 도왔다.
최 사장이 사장으로 선임되자마자 국장 인사에서 절반에 가깝게 노조 간부들 출신으로 채웠던 코드 인사도 대표적 사례다. 정수채 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증언을 한 적이 있다. “아니 노조라는게 뭐야? 회사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비판할 건 하고 견제할 건 해야지, 최문순 사장이 노조위원장 출신이기 때문에 최문순 사장 때부터 회사와 노조가 '밀월관계'가 됐어. 회사를 비판하는 성명서가 3년 동안 한 장도 안 나왔다고‥. 견제와 비판 기능이 고장난거지. 아니 알면서도 안한거지.”
김종국 사장 거치며 심화된 MBC의 부진, 상당기간 경영 악화는 필연
최 사장 시절 회사를 비판하는 노조의 성명서가 3년 동안 단 한 장도 안 나왔다지만 이후 보수정권의 사장 체제 아래에서 그들은 180도 바뀌어 성명을 밥먹듯 내고 역대 최장기 정치 파업까지 일으켜 회사를 파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노조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장은 코드 인사의 극치, 불공정한 인사와 정권에 대한 비정상적인 충성심을 보여도 침묵하면서 오히려 위기 때마다 사장을 감싸고 보호했다. 최악의 경영실적을 보이고 무능해도 자신들이 허락하는 사장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사장은 최고의 경영성과를 낸 사장이라도 낙하산 사장, 불공정한 사장 등등 입만 열면 비난을 한다. 정상적 인사를 편파인사의 극치라며 매도한다. 최문순 전 사장을 비롯해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노웅래 의원, 권영만 전 EBS 부사장 등 MBC 노조 출신의 인사들과 박영선, 신경민 등과 같은 인사들이 현 민주당에 들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엄기영, 김재철 전 사장과 같은 이가 새누리당으로 가는 건 권언유착의 극치처럼 악악댄다.
이처럼 MBC본부노조가 최문순 전 사장과 같은 이를 감싸면서 김재철 전 사장과 같은 사람에 대해선 최악의 공격을 퍼부은 것은 노조의 이념적 뿌리나 정치적 성향과 무관치 않다. 사원이 열심히 일하는 회사, 1등 방송의 자부심을 갖는 방송사로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낸 사장을 쫓아내려 한 노조의 언론권력 횡포라는 구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MBC의 미래는 어둡다. 안 사장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도 지금의 노조권력과 그런 노조에 기대보려던 김종국 사장이 망쳐놓은 MBC를 금세 회복시키기는 어렵다. 상당기간 동안 저조한 시청률과 경영실적의 부진이라는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조는 그 틈을 타 건수를 잡고 부활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또다시 시청률과 경영실적을 트집 잡아 파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급한대로 노조는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장은 어떤 식이라도 비난할 구실을 찾고 지지하는 사장은 무능해도 별 다른 트집을 잡지 않는다. 안 사장은 2012년 파업 이후 온갖 후유증의 총체적 모습이 현재의 부진한 MBC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단기간의 경영성과에 조급해선 안 된다. 안 사장이 할 일은 분명하다. 노조가 장악한 언론권력 개편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오직 개혁에 나서는 길 뿐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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