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김종국 사장이 얼마 전 MBC 홈페이지에서 “일부에서는 사장이 노동조합에 유화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오판에 근거한 비판”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궁금했다. 잘못된 비판이면 비판이지, 김 사장은 왜 ‘오판’이라고 했을까.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비판이라는 얘기는 뭘 의미하나. 자신이 노조에 유화적이지 않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비판자들이 MBC 사장 선임 상황을 잘못보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가. 그 속뜻이야 무엇이든 현재 오판하고 있는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김종국 사장 본인이다. 오판이란 ‘정치적’ 단어를 쓴 것부터가 그렇다. 김 사장에 대한 비판 근거는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정치적 판단 따위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김 사장의 잘못된 공적 행태를 근거로 한다. 김 사장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MBC가 이 지경까지 온 것도 사장도 본부노조도 정치 과잉인 탓 아닌가.
진영의 이분법에 따라 정의와 불의를 나누는 본부노조의 정치 과잉이나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할 사장이 매사 정치적 판단이나 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MBC를 망치는 것들이다. 현재 MBC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대로 성실하게 치료하면 된다. 노영방송 소리 듣던 MBC가 문제라는 걸 알았다면 그 소릴 안 듣도록 잘못된 노사관행을 뜯어고치면 된다. 그런데 사장직을 맡은 지 9개월가량 됐는데도 김 사장은 재판에서 지고 나서야 홈페이지에 ‘똑바로 하겠다’고 뒤늦게 달랑 글 몇 줄 적은 게 전부다. 임기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근 1년여가 되도록 도대체 뭘 했는지, 감감무소식이다가 이제와 앞으로 잘하겠다고 한다면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나.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김 사장이 ‘연임 쇼’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스 등 언론노조 기관지와 같은 매체들이 김 사장의 연임을 걱정하는 꼴을 보면 ‘노조위원장 출신’ 김 사장의 훌륭한 정치적 감각까지 간접적이나마 느껴진다.
언론노조 기관지들이 연임하기 바라는 김종국 사장
김종국 사장이 정말로 ‘오판’한 것은 자신의 꼼꼼한 성격과 능력을 본부노조와 잘 지내는 데 사용한 부분이다. 미디어스가 극찬한 것처럼 기자 시절 에이스 소리 듣던 그 능력을 대노조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쓸게 아니라 MBC를 개혁하는데 썼어야 했다. “노조에게 ‘악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재철 전 사장 때와는 달리 노사 관계도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미디어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김재철 전 사장보다 더한 사람”이란 비난이 나왔어야 했다. 게다가 사장 선임 정국에서 본부노조와 이들의 기관지들은 아예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이건 또 뭘 뜻하나. 자신들이 떠들어봐야 김 사장 연임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방문진과 정권을 향해 일종의 ‘찬성’ 신호를 보내며 연임을 돕는 꼴이다. 그러나 바로 이 현상이야말로 MBC가 다시 노조가 주인인 회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적신호다.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과 노조가 사이좋은 선후배 관계로 MBC를 이끄는 과거의 최문순 사장 모델을 닮아가는 것이다.
김 사장이 홈페이지를 통해 “MBC가 과거 노영방송이란 평가를 받아왔으나 현재 회사는 경영권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정방송협의회 조항 등 단체협약상의 불합리한 조항을 모두 바꾸는 등 비정상적인 노사 관계를 정상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것도 추상적이다. 보직 간부가 일할 수 있도록 리더십 평가 제도를 없애고, 일반 사원에 대한 인사고과 단계를 바꿨다 정도가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협 등 MBC 고질적 병폐의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래놓고 본부노조에 잘 보이려는 행태만 보여왔다. 김 사장은 그런 자신에 대한 비판을 ‘오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디어스가 이렇게 증명하고 있질 않은가. “지난 10개월의 행보를 돌이켜봤을 때, 노조에게 '악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재철 전 사장 때와는 달리 노사 관계도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 재임 기간 동안 인사권을 동원해 해고와 정직 등 마구잡이로 징계를 남발했던 김재철 전 사장의 행보와 비교했을 때 다소 온순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MBC 정상화는 노조위원장 출신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장이 할 수 있다
김 사장이 추상적 언어로 무의미한 공수표를 날리는 동안, MBC 개혁을 위해 사장이 되겠다는 이들은 구체적인 MBC 개혁 플랜을 제시했다. 김 사장이 “MBC가 노영방송이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막연하게 잘하겠다고만 한 것과 상반된다. IMBC 이상로 이사는 MBC 사장 검증공청회에서 “인사권, 제작권, 편성권은 명백히 회사의 것으로 노조가 아니라 정치권, 하느님도 침해할 수 없는 사장의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사장이 연임 때문에 정권과 방문진의 눈치를 보는 우클릭 행보를 한다지만, 설령 말뿐이라도 이런 수준의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노조 후배들, 언론노조의 눈치를 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공기업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노조에도 무관용, 원칙적 대응으로 방향을 잡은 박근혜 정부가 몰랐다면 모를까, 노조에 온정주의, 눈치보기, 기회주의로 일관한 인물을 다시 사장으로 앉히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김 사장이 2012년 파업 사태의 심각성과 그 극복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증거는 널렸다. 김재철 전 사장이 애써 뽑은 경력기자와 PD들이 회사의 무관심과 방치에 다수가 반강제적으로 언론노조의 품에 안긴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천재지변이 있기 전 개미와 곤충이 이상 징후를 보이듯, 김 사장의 어설픈 양다리 행보, 기회주의는 회사 구성원들에게 MBC의 주인이 언론노조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야 말았다. MBC가 정치에서 발을 빼고 진짜 언론의 정도를 걷는다면 김 사장의 실수나 그야말로 ‘오판’의 결과가 미칠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그에 맞는 개혁의 조치가 불가피하다. 지금의 MBC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급격히 한쪽 정치에 물든 비정상적인 집단이고 그 핵심인 노사관계 개혁의 문제는 사장이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할 당면 과제다. 지나친 권력화로 괴물이 되어가는 MBC본부노조를 견제하기 위해선 강한 사장만이 해답이다. 정치셈법에나 밝은 노조위원장 출신의 사장보다 뚝심과 용기로 개혁을 해나갈 강한 인물이 MBC에 필요하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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