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2012년 MBC 파업 사태가 낳은 여러 심각한 문제와 후유증은 별개로, 이 파업이 누군가에는 인생의 큰 기회가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소위 ‘시용기자’ ‘자질미달’ ‘영혼 없는 기자’ ‘부속품’ 등 온갖 모욕적 표현으로 폄훼당한 경력직 기자와 피디들이 딱 그렇다. 그런데 이들 40여명에 달하는 사원 중 다수가 최근 자신들을 그렇게 저주하던 언론노조의 품에 안겼단다.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다. 무슨 스톡홀름 신드롬 현상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곧 그것이 지금의 MBC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MBC가 이 꼴이 날 것이라는 징조가 있지 않았나. 작년 말 MBC 노동조합(제3노조)이 언론노조 MBC 본부가 거의 협박하다시피 경력직 사원들을 반강제로 언론노조에 가입시키고 있다고 폭로했을 때 지금의 사단은 기정사실화 돼 있던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MBC.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나.
김재철 전 사장의 임기를 이어받은 김종국 사장이 MBC에 들어와 한 일이라곤 ‘김재철 지우기’ 뿐이었다. 사장에 임명되자마자 나온 첫말이란 게 ‘나는 김재철 아바타가 아니다’였다. 임명 직후부터 미디어오늘 등 언론노조 기관지들이 전략적으로 만든 ‘김재철 아바타’ 프레임에 갇혀 혼자 허우적거렸다. 그러니 내내 ‘나는 김재철 아바타가 아니에요’를 증명하는 길 외엔 할 일이 없던 것이다. 안정감 있는 진행으로 막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기 시작한 권재홍, 배현진을 내리고 언론노조 소속 앵커들로 갈아치우더니 MBC의 다른 노동조합(제3노조 등)의 면담 요청은 묵살했다.( <‘‘노조가입 강요’ 즉각 중단하라!’> 2013년 12월 11일 MBC노동조합 성명) 그러고는 최근엔 파업 관련 소송 전에서도 판판이 졌다. 필자는 김 사장이 재판에서 ‘지기위해’ 고의적으로 노력했다고까지는 보지 않는다. 단지 그가 유일무이하게 최선을 다한 ‘김재철 지우기’의 결과가 그렇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김종국 사장 연임이 절대 불가한 명백한 이유
보수우파가 김종국 사장에 분노하는 것은 딴 게 아니다. 김재철 전 사장 개인이 좋아서 사사건건 그와 비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론노조 MBC본부가 주인인, 언론노조가 사장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사실상 배후조종하고 더 나아가 정권까지 좌지우지하는 통제 불능의 빗나간 언론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는 ‘MBC 개혁’의 오랜 숙원을 김 전 사장이 물꼬를 터주었기 때문이다. 김재철 전 사장이 자신들 후배에 대해 개인적 미안함을 넘어 냉정을 잃지 않고 어렵사리 원칙을 지켰던 것을 김종국 사장은 모두 허물어버렸다. 공적 영역은 물론 사적 영역까지 감시당하고 인격적인 살해까지 당하는 묻지마 폭로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몰렸어도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나약한 김종국 사장 때문에 모두 퇴색해 버렸다. 김 사장은 언론노조가 만든 김재철 아바타란 허깨비와 싸우느라 1년의 시간을 허비했다. 공영방송의 의미, MBC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 등 공적 책임감을 우선하지 않고 노조란 이익집단에 백해무익한 온정주의로 일관한 탓이다.
김종국 사장의 죄는, 연임이 불가능한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MBC 개혁을 위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당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의 바람으로 사장직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르고 MBC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단지 ‘나는 김재철 아바타가 아니에요’를 언론노조 MBC본부에 증명하겠다는 그의 열등감에 희생당했다는 게 더욱 어처구니없다. 김 사장은 MBC 개혁에 대한 철학이나 최고 리더로서 MBC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신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전임의 그림자 지우기에만 열심이었던 못난 사람, MBC를 망치는 원흉이라고 많은 국민이 손가락질하는데도 언론노조에 온정적인 사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어떤 원칙이 MBC에 필요한 지 무지한 사람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다시 사장으로 임명하리라는 것은 필자로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못 믿을 방문진, MBC 사장 공청회가 기대되는 이유
방송문화진흥회에는 김광동, 차기환 이사, 고영주 감사 등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 기회주의와 보신주의, 출세주의형 인물에 불과하다. 이런 방송문화진흥회가 김재철 전 사장을 내쫓고 김종국 사장을 임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과거로 회귀하는 현재의 MBC다. 언론노조가 주인인 회사, 언론노조가 입사한 직원들을 상대로 언론노조 가입 협박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곳, 반강제로 가입시켜도 사장이 모른 척 하는 곳이 바로 MBC다. 이런 언론노조가 민주주의를 독점하고 공정언론을 떠들어도 모든 언론이 침묵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게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현 주소다. 이런 MBC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바위도 종국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미세한 가루로 남는다.
방문진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결과가 말해준다. 그렇기에 오늘 열리는 MBC 사장 공청회의 의미가 더욱 크다.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시민단체협의회 등 우파진영 시민사회가 주최하는 이 공청회는 MBC 사장에 도전하는 이상로 IMBC 이사와 박명규 전 MBC아카데미 사장 등 후보자 검증 뿐 아니라 어떤 인물이 MBC 사장이 되어야하는지 분명한 해답을 다시 한 번 제시해줄 것이다. 많은 국민이 바라는 MBC 개혁이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좌초돼선 안 된다는 점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증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MBC 개혁이 좌우의 이념 싸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착각에서 빨리 깨기 바란다. 이념이 아닌 거대 기득권 언론노조가 대한민국을 장악할 정도로 무소불위 언론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 현상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지 그 본질을 모르는 자들은 MBC 문제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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