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아침 안개 속에서 희미한 형체의 건물들이 문득 문득 솟아오른다. 이런 날 운전대를 잡고 길을 나선다는 건 은근한 부담이 된다. 속도를 내고 달리다가도 어떤 순간엔 블랙홀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듯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안개란 잘 아는 것들을 낯설게 익숙한 것들을 생경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하찮은 물방울들이 뭉친 집단의 힘이다. 2014년, 이제 막 시작한 새해엔 그런 작은 것, 하찮은 것들이 모여 힘을 발휘하는 남다른 해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이 도로 위의 오만한 난폭자들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길 위가 마치 제 세상인 듯 거들먹거리는 교활한 기술자들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꺾어야 한다.
깜도 안 되는 김종국 사장, 차기 사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인재여야
이번 달로 임기가 끝나는 김종국 MBC 사장과 새로운 사장 선임 작업에 나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그리고 언론노조와 MBC 노조, 좌·우진영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2월 한 달을 팽팽하게 잡아당길 것 같다. 무려 반년동안의 깽판에도 ‘공정방송을 위해서라면’ 이란 단서만 달면 합법이라는 최근 1심 법원 판결은 이들 사이의 긴장감을 한층 더 높였다. 언론노조의 막강한 권력에 맞선 작은 물방울들의 수고를 산산이 흩뿌린 법원 덕에 하찮은 것들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비바람에도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강하고 깊은 심지의 인물, 언론노조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여야만 한다는 당위가 더욱 절실해졌다. 노조와 맞서면서 거의 반강제로 옷을 벗은 김재철 전 사장이 지금까지 언론노조 측에 집요한 정치·사회적 스토킹을 당하고 개인의 자유에까지 간섭받는 것을 보면 그렇다. MBC에는 정신적으로 더욱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이 MBC 사장직에 지원할지 모르겠다. 방문진이 또 어떤 생각과 기준으로 선택할지도 전혀 모르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MBC 사장은 노조의 각종 유무형의 외압과 공작을 간파해 잘 대처할 줄 아는 이여야 하고,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선 반드시 이길 줄 알아야하며, 한편으론 당당히 대화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당당하다는 것은 투명하다는 것이고 노조와의 투명한 대화는 싸움의 명분을 축적하는 것이다. 국민 앞에서 검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와 뒤에서 야합하는 것은 이미 싸움에서 진 것과 같다. 야합이란 스스로 명분을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연임하겠다는 김종국 사장이 부조리한 내용으로 가득한 노사 단체협약에 관해 한마디 내던지고 그 뒷수습을 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고는 대구MBC 사장 임명이라는 인사권부터 휘두르려했다. 그가 어떤 유형의 인물인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차기 사장은 직을 걸고 노조 파업 사건 최종 승소로 이끌어야
차기 MBC 사장은 할 일이 많다. 우선 꼼꼼한 준비와 대응으로 노조 파업과 관련한 여러 사건을 최종 승소로 이끌어야 한다. 법에 규정한 쟁의대상이 아닌데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공정방송을 이유로 노조의 정치파업을 합법이라고 한다면 언론사 전체, 나아가서 모든 기업의 노조는 자신들의 특수성을 들어 정치파업을 정당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MBC의 미래뿐 아니라 대한민국 노사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건이니만큼 차기 사장은 직을 걸고 이 사건을 책임져야한다.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MBC 시청률도 개선해야 한다. 소위 미디어생태계 지도가 바뀐 만큼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MBC의 중장기 발전전략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MBC는 상업방송과 마찬가지로 100% 광고로 운영·유지되면서 지위만 공영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MBC는 궁극적으로 본래 자기 모습인 민영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기 사장의 머릿속에도 이점이 분명히 각인돼 있어야 한다.
2012년 노조의 비정상적 파업에 비록 1심 법원이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내렸지만, 국민은 이미 진작 결론을 내렸다. 무려 반년 이상 지속됐고, 언론노조를 무조건 지지하는 매체들이 홍위병처럼 매일같이 나발을 불어댔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 파업에 내내 냉담했다. 귀족노조의 궤변은 먹혀들지 않았다. 이처럼 사실상 국민심판이 내려진 데에는 노조와 파업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쳤던 폴리뷰와 MBC 개혁을 지지하는 보수우파 일부의 노력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MBC 귀족노조들은 그런 이들을 하찮은 물방울쯤으로 여겼지만 작은 물방울들이 모인 힘은 노조를 놀라게 하고 길을 헤매게 했다. 귀족노조가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무시한 작은 힘들은 뭉쳐 2014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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