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누가 와도 정권 입맛에 맞는 친박 인물’이 될 것이라는 한겨레신문의 예상은 아마 맞을 것이다. MBC 사장 선임이 이대로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된다면 말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꽂힐 수도 있다. 방송문화진흥회 보궐 이사에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 인사가 사뿐히 내려앉은 것처럼 말이다. 낙하산 논란에서 대통령과의 인연을 트집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통령과 큰 인연이 없었어도 정연주 전 KBS 사장만큼 강력했던 낙하산 사장은 보지 못했고, 최문순 전 MBC 사장과 같은 정권밀착형 사장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선 캠프에 몸담았느냐, 대통령과 그 핵심 측근들과 친한가가 낙하산 논란의 본질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방송을 했느냐 아니면 정권을 위한 방송이었느냐가 핵심이다.
노무현 정권만큼 방송을 정권 홍보와 이념투쟁의 충실한 도구로 악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방송의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그 정권에 충성을 다 바친 공영방송사 사장들을 한 번씩은 꼭 언급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누가 와도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이란 표현은 사실 노 정권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방송을 오염시킨 당사자들은 전 정부와 이 정부의 인사를 낙하산으로 매도하기 일쑤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에서는 소위 진보좌파시민사회 단체들이 공영방송 사장 선임 문제에 개입해 ‘정권이 찍은 낙하산 인사’라는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노 정권 때 노무현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서동구씨를 반대하여 물러나게 하고 정연주씨를 KBS 사장으로 앉힌 것이 좋은 사례다. 정씨는 KBS를 정권의 코드에 맞춰 앞잡이 수준으로 타락시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권의 낙하산’ 비판은 덜 수 있었다.
정권 말만 잘 듣는 낙하산 사장으로는 MBC 앞날, 어림도 없다
MBC 김종국 사장 임기가 2월이면 끝나는데 사장 선임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가 조용하다는 것은 낙하산 논란을 또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길한 징조다. 방문진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경재 위원장을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들의 임기가 오는 3월로 끝난다는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이 현 정부의 뜻과 무관하게 사장 선임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시기는 늦춰지고, 물밑에선 치열한 줄대기가 있을 것이며, 그동안 많은 시민단체와 국민이 제기한 MBC 제반 문제와 개혁안을 토론할 기회도 마련되지 못한 채 또다시 낙하산 논란을 되풀이하는 지겨운 파업쇼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현 정권은 부담은 부담대로 안으면서 그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다. 그리곤 그 한심한 꼴을 보다 못한 보수우파가 또 수습에 나서면서 희생하는 차례로 이어지게 되는 뻔한 시나리오가 눈앞에 훤하다.
이명박 정권에서 보고 느낀 것이 있다면 현 정권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1년의 기간이 채 안됐다곤 하지만 김종국 사장의 무능과 기회주의적 습성이 증명된 만큼 일찌감치 MBC 개혁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해야할 게 아닌가. 어느 날 느닷없는 인사 한명 꽂아서 낙하산 사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내내 노조 압박에 시달리다 임기나 겨우 마치는 무능한 사장도 괜찮다면 몰라도 방송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정치노조의 궤변과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장을 원한다면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정권의 말만 잘 듣는 사장으로는 현 정권 남은 기간 동안 정상적인 MBC를 바라기는 힘들다. 노조의 꼭두각시를 거부한 김재철 전 사장과 같은 로또 복권 당첨식 케이스는 흔한 일이 아니다. MBC 사장이 되겠다는 모든 개혁적 인사들에게 기회를 주고, 좌우가 모두 참여토록 하는 검증과정을 거쳐 방문진이 임명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의 생각 없는 MBC 사장 선임, 반정부 투쟁에 기름을 부을 수도
낙하산 사장을 끌어내리고 친노좌파시민사회의 힘으로 정연주 사장을 선임토록 한 노무현 정권의 사례를 참고하라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주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정연주 전 사장처럼 방송을 정권의 홍위방송으로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다. MBC 사장 선임에 있어 공개적 검증작업을 거친다면 별다른 능력도 없으면서 정권에 줄을 잘 댄 무의미한 인사들도 걸러낼 수 있고, MBC 노조와 야권 정치세력, 좌파강성시민사회단체들이 자신들 반정부 투쟁을 위해 마구 붙여대는 낙하산 딱지도 당당히 걷어낼 수 있다. 그렇게 임명된 사장이라면 노조에 약점을 잡힐 일도 없고,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단체협약을 선물로 내주고 속수무책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이 나아갈 바를 정확히 알고 이끌 줄 아는 인물이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방문진이 조용하다는 것은 이런 투명한 검증절차를 거부하는 징조로 보여 안타깝다. 김종국 사장이 들어온 뒤 안 그래도 MBC가 퇴보하는 현상이 보이는데다가 몇 달 뒤에 또 무능력한 낙하산 사장이 선임될 경우 한풀 꺾였던 노조는 다시 반정부 투쟁에 나설 동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낙하산 한 명 앉히려다가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진보좌파진영은 물론 보수우파진영도 납득할 수 없는 인사가 MBC 사장이 된다면 그 뒷감당은 그야말로 정부 혼자 오롯이 지게 될 수도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눈앞에 닥쳐온 공영방송 사장 등의 선임 문제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할지는 자명하다. 답이 명확한 질문을 정권이 피해간다면 국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박한명 POLIVIEW(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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