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서 보고와 내부 결재 절차를 무시해 직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에 대해 좌파진영이 연일 그의 발언과 행적을 띄우며 ‘영웅 만들기’에 몰입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이어 윤 지청장을 정권에 맞서 홀로 싸우는 강직한 영웅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현 정권 및 국정원이 ‘악당’으로 비춰질 수 구도가 만들어지게 돼 반정부 여론 확산을 노린 전략적 계산으로 읽힌다.
그러한 한 예로 경향신문의 21일자 기사 <윤석열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를 꼽을 수 있다. 기사의 내용은 간략하다. 기사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21일 국회 법사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윤 지청장은 ‘검찰은 하다못해 세간의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다. 도대체 무슨 꼴이냐. 증인은 조직을 사랑하나’는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의 힐난섞인 질문을 받고 ‘대단히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에 정갑윤 의원이 ‘사람(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윤 지청장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짤막한 사실전달 기사에 불과하지만, 내부 규정과 법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검찰 내분 사태의 한축으로 떠오른 윤 지청장을 오히려 ‘정치검사’ 비판에서 자유로운, 법에 따라 수사하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인상을 주는 기사다.
윤 지청장의 경력 등을 자세히 소개한 한겨레신문의 이날 기사 <대표적 ‘특수통 검사’…평소 “나는 보수다”>도 마찬가지이다. 기사는 먼저 윤 지청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권력의 측근을 구속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그런데 지금 국정원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 검사다. 친민주당이다’라는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억울하게 생각하죠?”라는 ‘윤석열 띄우기’ 질문을 던진 박지원 의원의 발언과 이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드리기가 곤란하다”는 윤 지청장의 답변을 전했다.
이어 기사는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인 윤 전 팀장은 스스로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말하곤 한다”면서 윤 지청장의 검사 경력을 나열했다. 한겨레의 이 기사는 ‘보수 검사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분노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로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를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띄우던 것과 비슷한 방식처럼 보인다.
“정략에 따른 ‘영웅만들기’ 보도는 천박한 저널리즘의 전형, 그런 언론이 사회발전 막아”
한편 채동욱 전 총장에 이어 윤석열 영웅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 뿐 아니라 일부 좌파·진보 성향의 인사들과 인터넷매체들도 윤 지청장에 대한 ‘영웅만들기’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국정원 댓글수사에서, 뜻밖에도 권은희 경정, 윤석열 검사를 만날 줄이야”라며 윤 지청장을 추켜세웠다. 한 교수는 “현실에 실망하다가도, 이런 꿋꿋한 공직자를 보면 감동이 온다. 한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지만, 그 한명의 존재는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 힘내시라!”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행동으로 독립이 올 것이라고 확신해서 목숨을 걸었을까요? 왜놈의 개가 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고 강변할 친일파들에게, '다른 길'도 있음을 대비시키는 효과도 있었던 게지요”라며 권 경정과 윤 지청장의 행위를 독립운동가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부 매체는 ‘윤석열 어록 화제’ 등의 기사로 벌써부터 야권의 스타 중 한명처럼 띄우고 있다.
그러나 검찰 내분의 한 단면으로 비춰지는 이른바 ‘윤석열 사태’를 가지고 야권이 ‘영웅 만들기’에나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언론이 윤 지청장의 ‘단독 플레이’에 객관적 평가와 분석보단 일방 옹호하는 것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자유언론인협회 박한명 사무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검사들이 윤 지청장처럼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행동한다면 대한민국 검찰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말 것”이라며 “내부에서부터 갈라져 투쟁이나 하는 검찰이 수사하는 결과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총장은 특히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정부 권력과 대립한다고 툭하면 영웅만들기나 하면서 반정부 여론몰이에나 몰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만약 정권이 바뀌고 입장이 달라졌을 때 내부 절차도 무시하고 영웅놀이하는 검사가 나오면 경향과 한겨레가 그때도 영웅으로 취급할까?”라면서 “언론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로 보도하면서 툭하면 영웅이나 만들어내는 보도행태야말로 천박한 저널리즘의 전형이고 그런 언론의 수준 낮은 행태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