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에서 NLL 논쟁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특정 후보 진영이 과거 NLL 포기 발언이 나왔느니 안 나왔느니 사실관계를 따지기 바쁘고, 또 한쪽에선 명쾌한 해명 없이 막연하게 ‘NLL 사수’만 외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논쟁과 주장들이 모두 국가안보가 중요하다는 기본 전제하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국익을 위한 생산적인 방향과 결론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가안보와 관련해 이런 논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라고 믿고 싶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추억하기만 하거나, 잊는다면 그런 역사로부터 보복을 당한다.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전쟁을 통해 가족을 잃은 아픔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어리석게 되풀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곧 있으면 북한이 우리 서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째가 된다. 지난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은 우리 서해 연평도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포탄 100여발을 무차별 발사했다. 이로 인해 해병대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고, 민간인도 2명 사망, 10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연평도 도발’ 이 사건은 6.25전쟁 이후로 처음, 북한이 직접적으로 대규모 군사 공격을 우리에게 가한 사건이었고, 오랜 정전으로 무뎌진 국민의 안보의식을 다시 깨운 사건이었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해 막연한 감정을 가진 젊은층이 북한의 실체를 다시 깨달았던 사건이었고, 전쟁이라는 것이 교과서에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사건이었다.
시대가 흘러 전쟁 역시도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첨단기기들을 동원한 현대전을 띄더라도, 여전히 피를 흘리고 고통 속에 신음하는 둔탁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내 아들, 동생, 오빠가 북한의 포격으로 고통 속에 죽어갔다는 사실, 정겨운 내 이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북한의 공격으로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눈을 감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대선 정국을 맞아 북한과의 화해·평화론이 무성하다. 정치권은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북한과의 남북정상회담, 공동어로수역지정, NLL 사수를 외치고 있다. 국가안보차원에서 바람직한 모습이긴 하지만, 자칫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상생 모색은 북한이 언제라도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다시 해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비현실적인 화해론, 장밋빛 전망만으로 꾸며진 대북정책은 언제든지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란 역사의 배신을 당할 수 있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되풀이된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연평도 포격 도발을 기억하지 않고서는 북한과 제대로 된 남북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다.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해 벌써 잊는다면 북한의 공격, 역사의 보복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연평도 주민의 눈물과 고통을 기억하고 달래주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 군을 공격하고 국민이 공격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2년 만에 희미해져간다는 점은 그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것밖에 안 된다.
대선정국이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묻히거나 잊혀져선 안 된다. NLL 문제와 더불어 연평도 포격 사건도 대선 후보들이 어느 누구보다 먼저 앞서 기억하고, 고통 받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군을 격려해야 한다.
서울시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가 연평도 포격 도발 2년째를 맞아 오는 18일부터 25일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 사진전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사 장병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일환에서 기획됐다고 한다. 이런 행사들이 특정단체나 이념진영만의 행사가 아니라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국가안보 문제는 정략의 문제가 아니다.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고, 정략적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이고, 핵무기 개발과 보유에 집착하는 호전적인 집단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식으로, 북한을 교과서 속 먼 존재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불과 2년 전 이맘 때 북한은 우리 영토, 우리 국민에게 포탄을 쏟아 부으며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런 북한을 대선 후보들을 비롯해 국민 모두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자신들의 영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가안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또 과거 자신들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되풀이 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치고 기념한다. 역사의 보복은 쉽게 잊을 때 시작된다. 우리 국민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쉽게 잊을 때 또 다른 연평도 도발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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