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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에 돌아온 그들, 그리고 통합진보당

‘애국심’ 가치 땅에 떨어진 현실, 우리가 처한 ‘미완의 조국’ 되돌아봐야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우리군 유해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국내로 봉환됐다.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공군 C-130 수송기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해 25일 오전 8시45분께 공군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는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들이다. 지난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발굴한 뒤 하와이의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DNA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고(故) 김용수 일병, 이갑수 일병은 6월 중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을 위해 정부는 최고의 예우를 갖춰 맞이했다. 유해가 도착하자 애국가가 연주됐고 조포 21발이 발사됐다. 또 태극기와 국방부기, 육군기, 성조기, 유엔기 등으로 구성된 기수단이 일제히 유해를 향해 깃발을 숙여 최상의 예를 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도착하자 활주로에서 거수경례로 맞이했다. 유해가 운구차에 실려 움직이자 이 대통령도 그 뒤를 따랐으며 국립묘지로 떠나는 운구차를 향해 다시 한 번 거수경례로 예를 표했다. 이후 전통방식에 따라 오동나무관에 입관된 전사자 유해 12구는 12대의 군용 지프로 옮겨져 헌병 사이드카 호송을 받으며 서울현충원으로 이송됐다.

이 대통령은 유해가 봉환되기 전 유족들을 만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며 "국가와 국민들도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6.25 전쟁) 때 나가서 목숨 걸고 싸워 이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없어졌을 것이다. 곤경에 빠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찾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며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 유족들을 위로했다.

62년 만에 돌아온 국군전사자에 가슴 벅찬 국민, 그러나 외면한 공영방송들

공중파 방송이 외면한 이날 유해봉환식은 YTN을 비롯 몇 몇 종편만을 통해 중계됐다. 공영방송을 떠들며 노조가 파업투쟁에 핏대를 올리고 있는 MBC, KBS 공중파들은 그 시간에 시시껄렁한 토크쇼나 내보냈다.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대답 못하고,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이해해야한다는 통합진보당의 인사들이 궤변을 쏟아놓을 수 있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시간까지 마련해 줬던 MBC는 그 시간에 한 여배우의 남자관계를 추적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내보냈다고 한다. 이 모습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반세기도 훌쩍 넘겨서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고(故) 김용수 일병, 고(故) 이갑수 일병의 사연은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아니라도, 군대에 간 아들, 오빠, 동생, 친구들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18살 나이에 학생 신분으로 자원입대했다 전사한 김일병은 미7사단에 배속됐고 북진 후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고 한다.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켜라. 나는 국가를 지키겠다.” 함께 입대했던 형에게 김 일병이 남겼다는 유족의 전언이다. 그 말을 남기고 떠난 어린 학도병은 삶을 압도하는 공포와 혹한 속에서 숨을 다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바라봤을 그 곳은 어디였을까?

이갑수 일병은 34세 늦은 나이에 아내와 아들, 딸을 뒤로 하고 전장으로 나갔다. 이후 미7사단에 배속돼 북진 후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서른 넷 나이에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전장에 서야 했던 가장의 심정은 현재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밀듯 몰려오는 중공군의 위협, 뼛속을 후비는 추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눈 앞에 어른거리는 죽음에의 공포, 후회, 복잡한 심정을 삼키며 마지막 최후까지 버텼을 이 일병. 가족과 국가에 대한 진한 사랑 때문 아니었을까? 애국심이란 단어가 잊혀진 유행가, 촌스러운 개인 취향쯤으로 취급 받는 요즘, 이들의 희생정신은 그래서 더 깊고 향기가 짙다.

김용수 일병과 한대련, 이갑수 일병과 김재연, 너무나 다른 그들

이들의 귀환소식이 기쁘고 가슴 뭉클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운 국민도 많았을 것이다. 60여년 전 국가를 지키다 전사한 김 일병과 같은 또래인 현재 대한민국 일부 청년들이 보이고 있는 시대착오적 모습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와 연루된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란 단체의 청년들. 주사파 NL계열로, 통진당 구당권파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목숨을 다해 지켰던 조국의 청년들이 조국을 태어나선 안 될 존재쯤으로 여기고 악악대는 아이러니. 그 모습을 지켜볼 김 일병의 영혼은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자신이 목숨과 바꿨던 조국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밟히고 있는 현실을 아파하지는 않을까?

‘국가보안법을 의도적으로 어긴 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스펙’이라고 자랑하는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당선자는 이 일병과 같은 30대 초반. 그저 가족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가장의 우직한 의무감이 6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같은 또래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는 현실에 기가 막히지는 않을지. 애국심보다 반국가행위가 인정받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조국의 현실이 이 일병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애국가쯤이야 불러줄 수도 있다는 정당이 조국의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도 가슴을 후빌 일. 그가 바친 희생의 대가가 너무 값싸다.

이번에 정부가 조국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병사들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점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 그러나 이번 성과가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자기 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라는 사실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6.25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과 관련해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한 대목도 서운하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일뿐더러 지금도 끊임없이 미국과 협조하고 북한과도 필요하면 대화해야 한다.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별도로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정권에 영향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힘으로 직접 발굴해 찾아오지 못한 점은 안타깝지만, 아직 첫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역 내 미발굴 유해는 약 3,4만여구에 이른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얘기다. 이번에 조국 품으로 돌아온 건 김 일병의 유해와, 이 일병의 일부 유해뿐이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와야 할 젊은 영혼들이 많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기 바란다. 더불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애국심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정부가 솔선수범하길 바란다. 정부가 먼저 국민을 아끼고 희생하는 모범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김 일병, 이 일병에게는 아직 미완의 조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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