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최근 발언을 놓고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정반대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안 원장은 지난 3일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란 주제로 열린 전남대 강연을 통해 “정당이나 당파보다는 개인이 미래 가치에 부합하는지 등을 봐야 여러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소수의 조직화된 이익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려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또 “사회가 커지면 다수 개인의 의사보다는 소수 이익집단의 의사가 반영되기가 쉽다”며 “정파적 이익에 빠진 사람들보다는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원장은 4일 경북대에서 열린‘안철수 교수가 본 한국경제’란 특강에서도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이어갔다. 그는 이날 “이번 대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12월에 제3당 창당은 안 한다고 했는데, 창당했으면 (이번 총선에서)꽤 (의석)확보를 많이 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제가 안 했던 이유는 사회 발전의 도구로 쓰이겠다고 결정해야 (정치를)하겠다는 것이었다. (정계 입문은)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한테 주어지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투표 독려 발언도 빼놓지 않고 했다. 그는 “점심 뭐 먹을지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회적 재원을 배분하는 정치인을 아무렇게나 찍어서야 되겠느냐”며 “나라 전체가 조직화된 소수 이익집단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투표에 열심히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 강연 내용이었던 대기업에 대한 그의 비판적 관점도 여전했다. 그는 대기업 발전이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믿음 하에서 정부가 그간 대기업의 약탈행위를 방조했다며 “지금부터 2018년까지 6년이 (대한민국의)가장 큰 고비”라며 “정파, 이념을 떠나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강연 중 유독‘향후 6년’ ‘2018년’을 강조했다. 그는 “20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한다. 6년 남았다. 고령화 문제가 본격화될 수 있다” “2018년부터 (인구 감소로)잠깐 고용률이 높아질 수 있겠지만 청년 고용률이 낮아 심각하다” “향후 6년간은 세대 간 일자리 다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안 원장이 강조한 향후 6년은 차기대통령 임기에 해당된다. 차기대통령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취지로 올 대선 중요성을 그만큼 강조한 것이다.
유시민 “요 며칠 간 말씀은 새누리당 쪽에 좀 더 도움 되는 발언들”
영호남의 대학을 찾아가 이 같은 내용으로 강연한 안철수 원장에 대해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사뭇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유 대표는 6일 BBS라디오‘고성국의 아침저널’에 출연, “안철수 교수가 지금 야권에 도움이 되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지금은 안 된다. 오히려 요 며칠 간의 말씀은 새누리당 쪽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발언들이라고 본다”고 경계했다.
유 대표는 “ ‘세력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고 찍으라’ 그렇게 얘기하면 일반적으로 우리 유권자들이 뭐라고 이해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정권심판론’으로 이번 선거를 치르려는 통합진보당 등의 입장에선‘인물론’과‘정파 대립 배제론’으로 요약되는 안 원장 발언이 사실상 새누리당 선거를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대표는 또 “대립, 분노보다 원만하고 따뜻하며 인격이 성숙한 분을 뽑는 것”이라는 발언과 관련해선 “야권 입장에서는 대립이나 투쟁을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이나 민주주의의 파괴 이런 것들을 비판하고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현재 있는 것들을 세게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유 대표는 “그러면 새누리당은 그런 것을 피하기 위해‘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미래를 보고 가자’는 식으로 지난 잘못을 감추고 거짓말하고 나간다”면서 “잘못된 과거를 단절 안 하고, 심판 안 하고 새로운 미래로 어떻게 나가나”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의 선택은 지난 시기의 정책에 대한 판단을 통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난 4년간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나 폭정에 대해서 지적 안할 수 없다”며 “사실상 의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새누리당에게 우호적인 발언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 우려대로 여권에서는 정반대의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안철수 영입론’을 제기해왔던 새누리당 소속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5일 동아일보 종편 채널A‘박종진의 쾌도 난마’에 출연해 안 원장에 대해“나보다 더 새누리당스러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미래한국 국민연합이 주최한 지도자 포럼에 참석해“나보다 더 한나라당과 잘 맞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데 이어 공식적으로 두 번째다.
김 지사는 “안철수 원장의 경우 뜨기 전에 경기도에 초청해 강의도 듣고 했다”며 인연을 소개한 뒤“사실 나보다 더 새누리당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다 라고 밀어내지 말고 새누리당과 함께 좋은 나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애국적인 생각을 가지고 좋은 판단을 내려 새누리당과 함께 우리나라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0.26 서울시장 선거 때 영향 끼쳐 총선서도 재연될까
안철수 원장 발언을 놓고 여야 반응이 이렇게 엇갈린 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경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선거에서도 투표일을 3일 남겨둔 시점에서 박원순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안 원장의 지지행보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선거 일주일 전 사실상 새누리당에 유리한 발언들을 한 안 원장 위력이 총선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
반면 김문수 지사의‘러브콜’은 성격이 좀 달라 보인다. 총선 후 여권이 또 한 번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안 원장에 대한 요구가 야권보다 여권에 더 절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꾸준히 지지율이 오르면서 야권이 문 이사장 중심으로 대선 구도가 짜여 지는 상황에서 안 원장에 대한 절실함이 초기보다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며 “반면 여권은 총선 성적에 따라 박근혜 책임론이 등장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안론이 부상하게 된다. 정몽준, 김문수 등 다른 잠룡들의 지지율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치고 올라오지 못한다면 그만큼 안 원장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분석대로 총선에서 소위 야권연대가 압승한다면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문 이사장의 대세론이 탄력을 받게 되고 반대로 참패한 여당은 안 원장의 존재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안 원장이 새누리당 지지로 볼 수 있는 발언을 선거 일주일 전에 한 것도 해석에 따라 여권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려는 신호로도 읽힐 수도 있다.
안 원장은 4일 경북대 강연에서 “(정계 입문은)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한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시종일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란 이분법을 경계하면서 사회(정치)발전에 자신이 도구가 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 온 안 원장은, 명분만 주어진다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정치 세력을 선택해 몸담을 가능성을 얼마든지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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