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를 목표로 이름을 바꾸고 당의 헌법격인 정강·정책도 ‘보수 폐기’ ‘경제민주화’ ‘복지’를 강화하는 등 전면적 체질 변화에 나섰던 새누리당이 4.11총선에서 과거와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인 총선정국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좌파야당들은 온오프 라인에서 각종 이슈 파이팅과 함께 문재인, 손학규, 한명숙, 유시민 등 차기 대선주자들이 대거 선거전에 나와 민심을 공략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변변한 선거 전략도 없이 오직 박근혜 비대위원장 한 사람의 개인기에만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념은 시대착오라며 스스로 탈보수를 선언하는 등 이념논쟁을 기피해왔으면서도 막상 선거전에 들어와선 ‘이정희 여론조작 사건’으로 불거진 경기동부연합 이슈는 적극 활용하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정통우파진영으로부터 빈축마저 사고 있다.
새누리당의 ‘전략 부제’ 문제는 중앙일보가 적극 제기했다. 28일자 기사 ‘"개인기만 기다려" 박근혜만 바라보는 새누리’제목의 기사를 통해서다. 기사는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박 위원장이 벌써 전국 순회에 뛰어들어 당의 선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사는 “새누리당은 요즘 특별한 선거전략 없이 박 위원장만 바라보며 ‘박근혜 마케팅’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란 얘기”라고 지적, 새누리당의 전략 부재를 비판했다.
기사는 또 “수도권의 한 당직자는 ‘박 위원장이 지방에선 상당한 위력이 있지만 서울에선 한계가 있고 연령대별로 20~30대에 취약하기 때문에 당이 이를 보완할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박 위원장 개인만 부각되면서 당의 정책·공약은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선대위 구성도 김형오·서청원·김용환 고문에 황우여·이주영 부위원장, 권영세 선대본부장 등 박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 위주여서 ‘박근혜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네이버 등 포털을 검색하면 새누리당 선거 관련 주요 보도에는 온통 박근혜 위원장 일색이다. ‘박근혜, 시민과 악수하다 "악!" 급히 손 뺀 이유(중앙일보)’ ‘박근혜, 제주·광주·대전 돌며 '광폭유세'(머니투데이)’ ‘‘선거의 여왕’ 새누리 박근혜 위원장, 유세 시작… ‘朴風...(국민일보)’ ‘여 “새누리의 이념은 민생” 새누리 박근혜 17곳 강행군(경향신문)’
또 선거유세 관련 보도에서도 박 위원장의 발언만이 강조될 뿐 정작 후보에 관한 내용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후보들 역시 자신들보다 박 위원장과의 인연과 친밀도를 앞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공약없는 '새누리'…유세전에 '박근혜'만 외쳐(뉴시스)’
‘오직 박근혜’만 있는 선거, 구도 상 매우 불리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후보들이 사실상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고, 또 후보들 스스로도 언론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언론의 의도라기보다는 박근혜 위원장 단독체제로 선대위를 꾸린 새누리당의 선거전략 탓이 커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정보가 부족한 유권자들은 선택에 있어서 박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로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 이런 구도는 당연히 야권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위원장의 경쟁력이 약한 것으로 분석되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런 전략의 부정적 측면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박 위원장 개인기와 더불어 내심 젊은층과 소외계층에 어필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로 내놓은 ‘손수조·문대성·이자스민’ 삼각편대 역시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손수조 후보는 선거 자금 거짓말 논란으로, 문대성 후보는 논문 표절, 이 자스민 후보는 학력 위조 논란으로 각각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처지다. 새누리당이 이들을 앞세워 자랑한 공천 혁명이 ‘구태 공천’이 돼버린 셈이다.
평소엔 이념 기피, 선거 때만 이념 공세하는 구태 습관 되풀이
새누리당이 지양한다던 ‘낡은 이념 논쟁’도 이번 총선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민이 원하는 새 정치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이념 논쟁을 기피해왔다. 하지만 별다른 선거전략이 없는 새누리당은 경기동부연합 이슈를 총선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통우파세력이 이념강화를 주장할 때 반대로 이념 색 빼기에 올인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이상일 대변인은 25일 논평을 내고 "실체 드러난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연합'이 민주와 진보의 가면을 쓰고 총선에 나선다"며 "민주통합당도 눈치 보며 끌려 다니는 현실에 대해 현명한 국민은 '두 당 야합'의 본색을 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조윤선 선대위 대변인도 26일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언론의 보도내용을 거론하면서 "김일성의 신년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을 하고 회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같은 모습에 정통우파진영은 한편으론 다행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버티 헤럴드 김성욱 대표는 30일 조갑제닷컴에 올린 ‘새누리당 理念공세가 힘이 없는 이유’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이 대한민국의 國體(국체)를 뒤집는 從北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명을 낸 것은 다행스럽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이념공세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진정성 결핍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은 온 집안이 불에 타는 동안 구경만 하다가 이제야 큰 소리 치는 격”이라면서 “지난 4년간 무얼 하고 있었나? 진보당과 그 전신 민노당의 從北(종북)성향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가? 이들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 민주당 안에도 김일성에 충성맹세한 자들이 넘치는 사실을 이제껏 몰랐단 말인가? 왜 민주당 당가를 작사·작곡한 사람의 정체는 밝히지 않는가? 대변인 한 명을 빼고는 박근혜 의원은 물론 당 내 중진들은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 주장엔 국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며 “선거철 한두 번 나오는 이들의 이념공세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냉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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