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 공동대표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서울 강남을 공천을 취소당했다. 예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제주4.3사건 영문 표기 논란 건 탓이다.
문제가 된 이 공동대표 논문 영문표기는 “a popular revolt”(5.18광주민주화운동), “communist-led rebellion”(제주4.3사건) 등 영미권에서 보통 사용하는 표현이었다. 가치중립적 표현이란 얘기다. 또 이 공동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겨레 등 좌파언론들의 악의적 오역과 달리 ‘민중반란’이란 표현을 쓴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공동대표 영문 논문에는 ‘(전두환 정권의)학살, massacre’란 표현이 수차례 등장하는 등 좌파진영이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관’의 근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좌파진영 이념공세를 부담스러워했던 새누리당은 이영조 공동대표의 해명과 우파시민사회 항의에도 공천을 즉각 취소해버렸다. 특히 이준석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바른사회가 새누리당 정강·정책에 반대하는 논평을 여러 번 내놓은 점을 거론하며 “그가 과연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사람인지 의심스럽다”며 “이씨를 공천하자고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바른사회는 우파진영 내에서도 온건중도 성향으로 잘 알려진 단체다. 바른사회를 극우단체로 본다면 여타 우파시민사회는 말할 필요도 없게 된다. 결국 이준석 비대위원 발언과 이영조 공동대표 공천 취소 상황은 향후 새누리당이 우파사민사회의 비판 목소리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힐 수 있다. 나아가 ‘단절’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약하게나마 역할을 해왔던 우파시민사회의 존재는 소멸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의 좌경화는 결국 우파시민사회의 몰락과도 연결된 셈이다.
유호열 “우파시민사회는 장식용·제한된 역할 밖에 못해”
우파시민사회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시민사회인사들은 그 원인을 가치와 철학 중심 시민사회운동이라기보다 이익중심 활동을 해온 점, 그리고 새누리당이 좌경화하고 있는 점 등에서 찾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바른사회 공동대표)는 “우파의 한계이자 속성일 수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그에 따라 소리 없는 다수가 움직여왔던 것이 우파의 구조였는데, 냉정하게 볼 때 시민단체가 그 과정에서 장식용, 제한된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며 “우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근본부터 성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직접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런 운동이 이명박 정부 운영에 영향을 못 주고 몇몇 특정인만 혜택을 받고 끝나버리고 말았다”며 “긴 안목에서 보면 지금이 좋은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철학적, 이념적 가치를 재정립해 집권하면 혜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파시민단체들이 어떻게 견제하고 질책할 것인지 역할론을 고민하고 활동 방향도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사회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첫 일성으로 “참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윤 교수는 시민사회 역할이 국회와 정당에 대한 적절한 견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좌파시민사회는 시민단체의 역할을 하면서도 민주통합당에 여러 인사가 들어가고 비례대표로도 많이 거론되는 등 ‘따로 또 같이’가 잘되는 반면, 우파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새누리당의 좌클릭 심화에 따라 냉기가 흐르는 새누리당과 우파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이 현 상태로는 죽겠다 싶어서 왼쪽으로 몰려가는 상황인데,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합의된 바는 없기 때문에 매우 어정쩡한 상태로서 이념적 좌표를 어디다 설정할지 매우 혼란한 상황”이라며 “좌우로 흔들리다 어느 순간 균형을 찾지 않을까 싶다. 아직 100% 실망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경제·정치적으로 세계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점을 들어 우파시민사회도 현재의 생각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전 세계 금융·재정위기 이후로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희망과 기대가 달라진 점이 분명이 있다”면서 “우파시민사회도 그에 맞춰 전 세계적 화두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지킬 건 지키고 바꿀 건 바꾸며 새 단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새누리당의 무시, 이해가 되는 상황”
우파시민사회에 가치·철학중심 활동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정치권 좌경화 현상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정통우파단체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영주 변호사는 “직접 우파단체 활동을 하며 느낀 소감은, 솔직히 (새누리당의 무시가)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는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고 변호사는 “좌파는 우리사회를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로 바꾸겠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자는 우파들은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하듯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겠다는 신념과 목표 의식이 뚜렷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고 변호사는 새누리당이 우파시민사회를 소외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파시민사회가 자초한 면이 크다고 했다. 그는 “선거철엔 강력한 주장을 하다가도 결국 보수분열 안 된다는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새누리당을 밀어줬지 이념이 안 맞는다 해서 거부한 적이 없다”며 “우파들이 구박받을 수밖에 없도록 해왔다”고 평가했다.
고 변호사는 이대로 간다면 우파시민사회가 소멸단계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위기론’도 꺼냈다. 그는 “우파단체가 ‘보수분열’한다는 비난에 또 굴복한다면 가망 없어 보이는 새누리당이 집권해도 관변단체 빼고는 애국시민운동은 소멸할 것이라고 본다”며 “차라리 다시 좌파가 정권을 잡는 쓴 맛을 보더라도 애국단체를 무시하면 모든 것을 놓친다는 교훈을 정치권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행동본부 부본부장을 지낸 양영태 박사도 이와 비슷한 시각이었다. 일방적 새누리당 지지가 우파시민사회에도 결국 독(毒)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양 박사는 “국민생각이 나오고 새누리당 비판하니 우파분열이라고 하는데, 우파분화다. 분화는 많이 될수록 좋은 것이고, 그 분화된 힘으로 좌클릭하는 새누리를 깨야 한다”며 “정치하는 자기들은(새누리당) 행복하고 자기들을 제대로 정치하게끔 지지하고 받쳐준 이들은 다 찬밥신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파정치세력 역시 “이번 기회에 국민생각, 자유선진당, 대한국당 등으로 우화적 분화를 이뤄, 대선에서 뭉쳐 좋은 대선 후보를 내면 된다”며 “새누리당이 깨지면 위장좌파 하나 깨는 큰일을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탈당 전 새누리당 소속으로 정통우파시민사회와 활발히 소통해왔던 전여옥 국민생각 대변인은 우파시민사회 현 주소를 다음과 같이 뼈아프게 진단했다.
“좌파단체들은 신념을 위해 자기 돈 쓰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운동한다. 그러나 우파단체들은 돈을 받고 움직이길 바란다. 이런 우파단체를 새누리당은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 관변스타일을 버리고 이념과 가치 중심으로 세력화를 이뤄 새누리당에 분명한 경고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 귀담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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