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이하 미디어위)가 5월 15일 회의에서 여론조사 실시라는 시한폭탄 제거에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 위원들이 크게 반발, 회의 종료 직후 “한나라당측 위원들이 여론조사를 거부할 경우 미디어위 참여 계속 여부를 심각히 재고할 것", ”한나라당이 미디어법과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고, 유감"이라 주장하여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회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측 위원들 전원이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는 법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미디어 여론의 지배력, 수용자 의식구조 등 실태를 여론조사하자”며 역제안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위원들은 “법안에 대한 질의가 없는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며 전면적 재논의를 주장, 회의가 그대로 종료되었다.
여론조사 실시 문제는 애초에 미디어위의 출범 때부터 잠재된 시한 폭탄이었다. 한나라당은 이미 방송법, 인터넷 관련 법 등의 개정안을 제출한 상황이었고, 여야는 미디어위 활동이 종료되는 6월 이후 표결처리한다고 합의했다. 이에 민주당 측 추천위원들은 한나라당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미디어위에서 단일안을 합의할 것을 줄곧 요구해왔다. 문제는 단일안을 만드는 방법 역시 미디어위에서 표결처리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자유선진당 추천의 문재완 위원까지 포함하면 11:9로 찬성 측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측 위원들이 강력히 주장한 대안이 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 실시였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 “찬반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론조사 문제는 시작부터 한나라당 측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자 시절부터 여론분야를 담당해온 한나라당 윤석홍 위원 등은 “어떻게 정책의 결정을 여론조사로 할 수 있냐”며 시종일관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5월 15일 회의에서도 이헌 변호사, 최선규 위원 등이 “세계적으로 정책 관련 법안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전례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반발에 부딪히자 민주당 측 위원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여론조사 결과 반대여론이 높아도 한나라당 측이 수용하겠냐”며, “최소한 최종 보고서에 첨부될 참고용 여론조사라도 해야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 역시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 탓에 한나라당 측 위원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변희재 위원은 “최근 민주당 측 양문석 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공공미디어연구소는 지역 공청회 현장에서 여론조사 설문지를 돌리고 있다”, “22개의 조항들이 모두 법안의 내용의 찬반을 묻고 있는데, 인터넷 관련 조항은 실명제 찬반과 사이버 모욕죄 찬반을 묻는 두 가지였다”, “여론조사를 실시하게 되면 한나라당 위원 측 인터넷 분야를 대표해서 내가 질문지를 작성해야 할 텐데, 조항 하나가 200자가 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 전문 용어인데, 이를 세부적으로 나눠서 조항을 짜게 되면 질문만 40여가지 넘을 것”. “과연 그 질문 하나하나를 일반 국민들이 어떠한 추가 정보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간단한 정치인 선호도 여론조사도 응답률이 10%대인데, 이런 수준의 여론조사라면 응답률이 2-3%도 안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참고용으로도 가치가 있겠냐”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해 한나라당 측 강길모 위원이 “외부적으로 내가 여론조사를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수준의 찬반 여론조사를 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한국의 미디어의 여론지배력이 어떠한지, 수용자들이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기초자료에 대한 여론조사 실시를 찬성한 것”이라 입장을 정리했다.
이러한 강길모 위원의 대안 제시에 대해서, 한나라당 측 다른 위원들도 공감을 표했다. 최선규 위원은 “미디어 실태조사는 정책을 결정할 때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고 찬성했고, 자유선진장 추천의 문재완 위원도 “여론지배력에 대한 실증적 조사는 서울대 윤석민 교수의 보고서가 전부인데 민주당 추천위원들이 정확도에서 문제를 제기하니, 이런 의견을 수용하여 다시 한번 정확한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에서, “그러나 찬반 여론조사로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별도로 한나라당 측 최홍재 간사는 춘천 지역공청회에서 미디어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며 “이미 나는 질의 문항을 만들고 있다”며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이러한 찬반 여론조가 아닌 미디어 실태조사에 대해서는 몇몇 민주당 측 위원들도 동의를 했다. 강혜란 위원은 여론지배력 실태조사를 주장했고, 최영묵 의원도 참고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양문석 위원도 “뭐든지 다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내던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민주당 측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이번 회의에서 결정하자”고 제안하자 내부 논의 끝에 “정책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는 수용할 수 없고, 실태조사는 하자”고 역제안, 민주당 측 위원들이 반발하게 된 것.
한나라당의 황근 간사는 “나의 소신은 물론 한나라당 측 위원들 전원이 정책 찬반의 여론조사에 찬성하지 않으니,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자”며 “우리는 언론수용 행태조사는 하겠다고 했는데 민주당측에서 거부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민주당 측 위원들이 비난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해 “여론을 수렴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정책 찬반이 아니라, 정확한 미디어 실태조사가 오히려 정책 결정을 위한 참고자료와 국민여론 수렴 방안으로 더 적절하다 판단했는데, 마치 이를 두고 국민의 여론 수렴을 무시했다는 민주당 측 위원들의 비난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필요하면 성명서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안 조항을 주고 받으며 단일안 만들 의무가 있는가
여론조사 실시의 문제는 6월 15일 미디어위가 종료될 때 제출하는 최종보고서의 단일안 합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었다. 민주당의 강혜란 위원은 여러차례 공적 인터뷰를 통해 “단일안을 만들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며 한나라당 측 위원들을 비판해왓다. 이에 대해 변희재 위원은 “나는 인터넷 정책에 대한 나의 안을 갖고 있는데, 단일안을 만들려면 내 안에 동의해주면 된다”, “그러나 논의되는 상황은, 인터넷 실명제와 본인확인제는 분명히 다른 제도인데, 이런 본질적인 개념조차도 동의를 해주지 않고 있다.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사실에 대해서도 동의를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들만의 신념과 원칙이 반영된 정책안이 단일화되겠느냐”며, “국회라면 법안을 놓고 하나씩 주고 받는 게 가능하겠지만, 대체 미디위에서 조항 하나 주고 받는 거래를 해야하는 의무가 있는가”, “각자 자신의 안을 제시하고,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건가”라며 합의안을 만들자는 제안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변희재 위원은 민주당 측 위원으로부터 본인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합의 제안을 받았지만, “정말 단 한 문장도 동의할 수 없는 안이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인터넷의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반면 민주당 측 위원들은 정치적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를 대폭 넓히는 시각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이념과 철학의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디어위가 막바지로 가면서 여론조사 실시와 단일안 합의 이외에 잠재된 크고 작은 문제들도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 측에서 기존의 조준상, 류성우 위원을,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으로 교체한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누가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최소한 미디어위 위원을 사퇴하는 사람들은 대체 왜 나가는지 설명해야할 것 아니냐”며 내부적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막판에 판을 깨기 위해 강경파들이 직접 들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교체로 들어온 양문석 위원은 “판을 깨겠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들어왔다”며 이러한 의혹을 반박했다.
양문석 위원의 공영방송 임명직 거부 제안, 공개 논쟁하기로
양문석 위원은 첫 회의에 참석하자마자 “올 가을 MBC, KBS, EBS 등 공영방송 이사만 29석이 나온다. 그런 부분에 미련을 두면서 (일부 미디어위원들이) 자신의 활동과 토론 내용을 맞추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밖에선 있다”며 “미디어위원 모두가 향후 1년간 언론 관련 임명직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정파적 행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제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양문석 위원의 제안에 대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등이 연속 보도하고, 인터넷신문 미디어스에서는 위원들 개개인의 의사를 묻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한나라당 측 김우룡 위원장(한양대 석좌교수)은 “한 분의 주장일 뿐이다. 미디어위가 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며 “노 코멘트”, 최홍재 위원(공언련 사무처장)은 “방송사 쪽으로 갈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제의가 들어오더라도 거부하겠다”며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위원들에게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대단히 불쾌하다”고 말했다. 강길모 위원(미발연 공동대표)은 “마치 미디어위원들이 떡고물을 바라는 사람인 것처럼 매도했다. (1년간 언론관련 임명직 미진출에 대해) 선언하자면 100번이고 200번이고 다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나는 애당초 그런 것을 바라고 온 게 아니다. 불러주지도 않을 뿐더러 제의받아도 갈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측 강상현 위원장(연세대 신방과 교수)은 “일부 여당 위원들이 미디어위 활동이 끝나고 논공행상식으로 갈 개연성이 있다는 외부 지적이 있다 보니 예전부터 야당 추천 위원들 사이에 그런 제안이 있었다. 사적 이익을 배제하고 공적 논의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필요한 제안이라고 본다. 공식안건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 “1년이 아닌 5년으로 못박아야 한다”(최상재 위원·언론노조 위원장) “기꺼이 동참하겠다”(박경신 위원·고려대 법대 교수) “미디어위가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하다”(최영묵 위원·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국민적 합의를 위해선 위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것들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강혜란 위원·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며 다수가 양문석 위원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측 변희재 위원은 “지금 안 그래도 공공기관의 임명직이 감투화되는 현상이 노무현 정권 이후 심화되고 있고, 실제로 노정권 당시 언론관련 임명직은 민언련 출신들이 독식했으며, 양문석 위원의 단체 대표 역시 한 자리를 차지했다”며, “내가 참여하는 청년기업가들의 모임, 실크로드CEO포럼은 바로 이러한 공공직의 감투화를 비판하며 지난해 KBS 사장과, KBS 시청자위원에 공개기획서를 제출하며 지원했다‘, ”올해의 MBC, EBS, KBS 이사직에도 우리 포럼의 가장 적합한 회원이 지원하도록 할 것“, ”임명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기획서를 공개하고 필요하면 양문석 위원의 단체와 함께 자격 여부를 검증하는 공청회도 임하겠다“, ”나와 실크로드CEO포럼 측은 만약 미디어 위원들이 공공직 임명 거부를 선언하면, 이건 대놓고 공공직은 감투라고 선언하는 것이므로 동의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공공직의 감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공개토론하자“고 제안, 이를 양문석 위원이 수용, 향후 지속적으로 공개 논의를 하기로 했다.
미디어실태조사, KBS와 MBC, 거대 포털의 여론지배력 입증될 가능성
문제는 미디어위의 향후 진로이다. 한나라등 측 위원들이 찬반 여론조사를 거부, 실태조사를 제안한 것에 대해서 민주당 측 위원들이 어떠한 대응을 하느냐가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민주당 측 위원들은 “이미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거부할 것은 충분히 예상되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측 위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전체회의에서 여론조사 실시를 계속 주장하는 것과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제안한 미디어실태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좁혀진다.
민주당 측 위원들은 미디어실태조사는 한나라당 측에 유리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민주당 측 이창현 간사는 “찬반 여론조사는 불리하고, 여론지배력 등에 대한 실태조사는 유리할 것 같으니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택일했을 것”이라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측 위원들과 자유선진당 추천의 문재완 위원 등은 “정책의 판단을 묻는 여론조사와 행위와 의식을 묻는 여론조사가 어떻게 같냐”며, “유불리를 따진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민주당 측 위원들이 미디어실태조사 결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여론지배력보다는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와 거대 포털의 지배력이 훨씬 높게 나올 것이 두려워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강혜란 위원 등이 실태조사를 주장했음에도 왜 이를 합의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언론노조의 법안 저지 총력반대 투쟁 선언, 미디어위 진로의 최대 변수
또한 단일안 합의 역시 6월 15일 마지막날까지 잠재된 또다른 폭탄이다. 민주당 측 위원들은 단일안 합의가 안 되었을 시, 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고 이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는 방식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한다면 국회에서 다수를 점한 한나라당 측의 개정안 통과 명분만 제공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디어위 활동이 이렇게 종료된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판을 깨고 장외투쟁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노조 측은 총파업 등을 통해 6월 법안 통과를 적극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측 최홍재 간사는 “파업을 선언했다면 이미 미디어위의 파행을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미디어위에 진지하게 참여할 것인지, 파업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하라”고 제안했고, 최상재 위원장은 “이건 미디어위가 향후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다보니 미디어위가 태생 때부터 이미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여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애초에 여야 분쟁의 과정에서 기형적으로 태생했고, 여야 추천의 위원들이 당파성의 한계를 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입법을 하는 국회의 자문기구로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문재완 위원은 “입법은 국회의 고유권한인데 미디어위에서 상호 합의하여 법안을 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 3분의 2의 고지를 넘어선 미디어위가 남은 지역공청회, 최종보고서 문제 등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최소한의 존재의 명분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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