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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시리아 ‘대량파괴무기’ 밀거래 커넥션 해부

중동의 ‘영생교주’ 아사드, 동북아의 ‘정신병자’ 김정일


북핵 6자회담 개막(27일)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시리아 핵 거래설'이 계속 외신을 타고 전해지면서 북핵문제를 둘러싼 분위기가 미묘해 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시리아 간의 무기거래가 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프리존뉴스>는 베일에 가려진 양국의 정치-군사적 유대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양국은 지난 4월 미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테러보고서에서 테러지원국 명단에 남아 있을 정도로 미국에게 있어 요주의 감시 대상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북한과 시리아는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공통분모 외에 대를 이은 독재체제란 공통점이 있다면서 특히 최근 수개월 간 양국 이 군사력 증강 등과 관련된 기술 협력을 강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시리아는 지난 20여 년 간 북한으로부터 장비를 사들여 중동 최대의 미사일 발사기지와 화학무기 보유고를 갖추게 됐으며,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 실험 이후에는 이 같은 대북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문은 최근 들어 북한과 시라아의 외교·군사 관계자들의 출입국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김정일은 최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42번째 생일을 맞아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22일에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북 중인 시리아 바트당 지역지도부 조직부장(사우드 일리야 다우드)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다우드 조직부장은 “영생하는 하페즈 알 아사드(2000년 6월 사망)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마련해준 수리아(시리아)와 조선 사이의 친선협조관계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김정일 각하의 깊은 관심 속에 강화 발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일 아랍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바트당은 ‘아랍사회주의부활당’이라고도 불리며 지난 1963년 이래 시리아의 집권당으로 군림하고 있어 북한체제와 그 성격이 유사하다.

이 같은 이유로 북한과 시리아는 대를 이어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됐다. 현재 북한의 묘향산 역사박물관에는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선물한 칼라시니코프(AK-47) 소총과 권총이 전시되어 있다.

이 두 독재자의 각별한(?) 우정은 부자세습을 통해 권좌를 이양하면서 아들들에게까지 대를 이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선데이타임스의 보도 내용이다. 현 아사드 대통령은 올해 5월 실시된 대선에서 97%의 지지를 얻어 재선되어 향후 7년간 더 집권하게 됐다.

▲북한-시리아 대량살상무기(WMD) 커넥션: 제임스 울시 전 CIA국장은 1993년 2월 24일 미 의회에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문제와 관련한 의회 증언에서 “북한이 최근 수 년 동안 서방 제국으로부터 무기를 입수하지 못한 시리아와 이란 등에 대해 중요한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대(對)중동 무기 수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김정일은 무기판매 대상국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대금만 지불하면 어떤 나라에도 미사일을 팔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김정일은 2001년 방북한 유럽연합(EU)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나라에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은 교역의 일부”라며 “미사일을 사려는 사람을 찾게 되면 그에게 미사일을 팔 것이고 교역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방북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면담에서도 “외화를 위해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판매하고 있고 만일 미국이 보상해준다면 미사일 프로그램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고,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 면담에서도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언급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86년~2001년까지 재래식 무기판매를 통해 약 10억 달러, 연평균으로 따지면 약 2억5천만 달러(명목상 10대 무기수출국)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90년대부터 무기판매가 줄어들어 2003년 이후에는 주요 무기 수입국이던 파키스탄과 예멘, 이집트, 리비아 등으로부터 무기구매 중단을 당해 최근에는 시리아와 이란 등의 국가들과 무기거래를 해왔다.

북한은 그동안 수백기의 스커드 미사일과 중장거리 노동 미사일, 그리고 미사일 생산기술을 시리아와 이란에 수출해왔다.

제인스(Jane's Information)연감과 미 정보기관 등의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은 지난 91년 봄 시리아에 스커드 미사일 24기를 공급한 이래 거의 매년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해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일례로 지난 2000년 북한의 ‘청천강’이라는 회사의 경우 시리아에 50기의 노동미사일을 공급하기도 했다.

한편, 미 정가 소식지인 ‘넬슨리포트’(Nelson Report)는 최근 “작년 여름 이스라엘과, 레바논 내 무장 세력인 헤즈볼라 분쟁 당시, 시리아의 지원을 받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시리아제 로켓포을 발사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시리아가 이를 충분히 확보할 경우 이스라엘에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넬슨리포트는 또 시리아는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화학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넬슨리포트는 시리아가 러시아로부터 작년 여름 헤즈볼라가 사용했던 첨단 대(對)전차 미사일이나 트럭에 탑재할 수 있는 단거리 대공미사일를 수입했다가 이스라엘의 공격 목표물이 됐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이스라엘 vs. 시리아-북한의 줄다리기: 이스라엘은 그동안 북한의 대(對)중동 미사일 수출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과 시리아 및 리비아에 북한의 미사일이 판매된다면 이스라엘의 안전보장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국교가 없는 북한과의 직접 교섭(1992년 11월)을 택했다. 당시 북한의 시리아·이란에 대한 미사일 수출이 표면화되자 벤톨 외무성 아시아 국장이 평양을 직접 방문해 북한 외교부에 대해 미사일 매각을 중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시리아와 이란과는 이데올로기 면에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면에서의 거래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 준다면 이들 국가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중지할 용의가 있다”고 응수했다.

당시 교섭에서 북한은 자금난으로 개발이 중단된 운산(평안북도) 금광에 3억 달러를 투자해 줄 것을 제의했는데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고 지질조사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이스라엘 외무성 대변인은 중국의 베이징에서 북한과 접촉할 것을 제의했고, 이듬해 7월 개최된 회담에서 북한이 이란에 대해 미사일 수출을 중지하는 대신 이스라엘이 대북 경제협력에 나서는 문제가 논의됐다.

이 일환으로 이스라엘 ‘머크리치’사(社)의 무역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 측과 곡물 및 원유 원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북한과 핵사찰 문제로 교섭을 벌여오던 미국의 압력 때문에 같은 해 8월 16일 이스라엘은 교섭을 중단했다. 그 대신 이스라엘은 한국과의 관계협력에 나섰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일간지 ‘에디오트 아하로노트’(Yediot Aharonot)는 93년 12월 4일자 보도에서 이스라엘 군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텔아비브를 방문한 한국의 정보당국자(당시 안기부)에게 이스라엘 공군에 의한 ‘이라크 핵시설(오시리크) 공폭작전’(81년)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한국 측은 그 대가로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수출 정보를 넘겨주었다”고 전했다.

▲북한과 시리아의 ‘핵 거래’ 의혹: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지난 23일자 보도에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지난 6일 시리아 북부 지역을 폭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정예부대가 미리 이 지역의 비밀 군기지에 침투해 ‘북한산 핵물질’을 확보했음을 언급했다.

신문은 미국과 예루살렘의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는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이 시리아 북부 다이르 아즈 즈와르 근교의 한 부대를 기습해 핵물질을 입수, 이 물질의 원산지가 북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러나 이스라엘 요원들의 침투 시기나 이들이 입수한 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이 이처럼 확보한 물질을 토대로 미국의 동의(approval)를 이끌어냈고, 결국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수개월의 첩보활동을 통해 다이르 아즈 즈와르에 북한인들과 북한산 핵물질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 내용이 부시 미 대통령까지 보고 됐지만, 미 정부는 폭격에 동의하기에 앞서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는 입장이었다.

신문은 또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자들과 군 과학자들이 상당기간 시리아인들과 함께 일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폭격으로 북한인 여럿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시리아 관리들이 평양을 방문한 것도 두 나라 사이의 긴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더욱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 입수한 물질의 정확한 특질이나 시리아의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점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이 북핵 6자회담에 나선 상황에서 시리아가 북한 핵 장비들을 숨겨주는 것인지, 또는 시리아가 핵탄두를 장착한 스커드 미사일 무장을 원했는지, 아니면 존 볼턴 전 UN주재 미 대사의 주장처럼 최종 목적지가 이란인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사일을 비롯한 북한산 무기는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경유해 이란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LA 타임스, 2006년 7월 27일자 보도)

하지만 북한과 시리아가 미사일 거래를 했던 핵 물질을 거래를 했던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정일 정권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미국 내 대북강경파들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에 대해 강력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인 볼턴(유태계) 전 UN 주재 미 대사는 “북한은 미국이 테러국으로 비난하고 있는 국가(시리아)들과 협력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 “비핵화 합의 이행을 앞두고 시한에 쫓긴 북한이 이 기회를 틈타 값싸게 핵 프로그램 관련 요소를 사들이려는 시리아와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 관리들을 인용해 전했다.

이와 함께 미 관리들은 북한과 시리아가 지난 여름 서명한 최소 2개의 기술교류 협약이 양 국간의 핵 협력을 목표로 한 것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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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서 악명 떨친 ‘북한산 방사포’

북한은 그동안 사정거리 1천7백~2천2백km인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시리아·이집트·리비아 등에 기술 또는 부품수출 형태로 판매해 왔으며, 대포동 계열 미사일의 개발 과정에서 파키스탄, 이란 등의 국가들과 비밀리에 협력해 왔다.

북한은 또 고사포, 방사포, 박격포, AK 소총 등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 판매했으며 잠수정을 아랍에미리트와 베트남 등에 다수 수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미사일 수출 중단 압박에 따라 97년 무렵부터 미사일 대신 탄약, 장갑차, 대전차포, 군복 등 수출 품목을 다양화 하고 자이르, 이디오피아, 르완다, 콩고, 미얀마, 예멘 등으로 거래선을 확대해 왔다.

이 가운데 시리아로 수출된 BM-11 122mm 방사포의 경우 시리아 내전에서 악명을 떨쳤다. 1982년 시리아에서 회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내전이 발발했을 때 시리아군은 북한이 제공한 ‘BM-11’ 122mm 방사포를 사용해 2만여 명의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이외에도 1982년 레바논 내전 시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시리아에 판매한 BM-11 방사포가 이스라엘군에 노획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북한군 24명을 체포하고 25명을 사살했다.

당시(1982년 7월) 이스라엘군 발표에 따르면 체포되거나 사살된 북한군들은 PLO군사고문단으로 활동하다 잡힌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들 중 몇몇은 시리아 특수부대의 옵서버(observer)로 활동하던 요원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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