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세론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최근 인터넷에서는 '맹박고스톱', 'BBK치킨', '李母二十四遷之敎', '무댓뽀맨', '다마네기' 등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모두 하나같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칭하는 것들이며, 이들 표현 속에는 네티즌들의 뿌리깊은 냉소주의와 패배주의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한때 지지율 50%를 넘는 대권후보 1위였는지 정말 황당하고 웃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을 대권후보 1위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도 분명히 존재한다.
병역비리 의혹이 제기된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와같은 사실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하고 국민 앞에 사죄했다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법정 선거비용을 과도하게 초과하여 사용함으로써 불공정선거를 이끈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법의 심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자신의 죄값을 다 치른 후 피선거권을 다시 회복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데 그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증인도피라는 명백한 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불명예 사퇴했고, '위장전입'이라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 뒤늦게 밝혀진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가? 진솔한 반성과 사죄가 있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 주가조작, 공금횡령 및 외화도피로 인해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사법당국의 조사 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출마 자체를 막을 제도적 방법은 없다. 다만, 국민 심판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할 뿐...
그렇다면 이와같은 의혹과 범죄에 하나도 빠짐없이 연루되었고, 진솔한 고백이나 사죄 없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면? 설마 그런 사람도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수많은 케이스 중 하나에만 해당되어도 스스로 양심의 자책을 느껴 후보출마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고, 혹 요행을 바라고 출마했다고 할지라도 상대 캠프와 언론을 통해 끝내 진실이 까발려질 경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조용히 퇴장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인물은 대법원에 의해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에 대해서도 '공작과 네거티브'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려하고, 한국 검찰과 미국 검찰이 조사에 착수해있는 사건에 있어서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공작과 네거티브'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결이 조작된 것이고, 한국과 미국의 검찰 조사도 공작의 산물이라는 것인가?
왜 이와같은 황당한 일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재벌·언론·정당의 3각편대가 담합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해왔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일반 국민의 경우 대통령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소한 3번의 검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첫째, 취업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우리는 강도높은 검증을 받게 된다. 정말로 건장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는지,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가 모두 진실된 것인지, 병역과 납세에 있어서 한치의 부조리나 기피행위가 있는지, 그리고 언행에 있어서 진실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등을 말이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미스테리 투성이'인 호적과 병역은 물론, 데모 경력에 대해 모 건설회사는 전혀 문제삼지 않고 그냥 '묻지마' 채용을 하게 된다. TV드라마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선처해달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렇게 첫번째 검증은 허접하고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둘째, 장관이나 국회의원 같은 임명직 혹은 선출직 고위직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혹독한 검증을 거치게 된다.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통해 눈물을 쏙 뺄 만큼 엄격하고 강도높은 검증이 이루어지게 된다. 실제로,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장상, 장대환(이상 국무총리), 전효숙(헌법재판소장) 등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낙마한 바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경우 선거를 통해 상대후보와 언론으로부터 잇따른 검증 과정을 겪게 되며 그 과정에서 낙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회창(대통령선거)을 비롯 수많은 뱃지 지망생들이 이와같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어떤 후보는 한국사회의 검증 메카니즘이 허술한 것을 역이용하여 이와같은 과정을 거푸 무사통과하는 잔머리를 구사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재벌기업의 CEO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검증을 거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깨끗하다. 정말로 내가 의혹 투성이였다면 과연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나의 경쟁자가 과연 나를 가만히 놓아두었겠는가?"하면서 말이다. 듣고보니 그럴 듯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잔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증여,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분식회계 및 공금횡령, 그리고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의 분식회계 및 공금횡령 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재벌그룹은 그야말로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다. 이들 재벌총수들이 그와같은 비리와 불법행위를 부하직원들 모르게 혼자서 했을 리가 만무하고 그렇다면 누군가 심복이 그 일에 개입되었을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재벌기업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은 어떻나 형태로든 비리와 범죄행위에 연루될 수 밖에 없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증여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무였던 박모씨는 그 후 '보은 인사'로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했고, 현대자동차와 두산인프라코어 등도 재벌총수의 현업 복귀와 더불어 일선에서 물러났던 공신들이 일제히 승진 기용된 바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도 사정이 그와 같은데 20~30년 전에 재벌기업 CEO였던 사람이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털어서 먼지 날 것이 없을 만큼 깨끗하다? 소가 웃는다. 한 단계 또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엄격한 심사와 검증이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함에도 우리 재벌기업들은 총수의 지시에 따라 그런 과정을 다 무시하고 CEO들을 선임한다. 깨끗하면 오히려 총수들 경영권 행사에 걸림돌만 될 뿐, 온갖 비리를 덮어쓰고 있더라도 충성심 높은 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지율 높다고 의혹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이렇게 두번째 검증 과정도 '잔머리'를 통해 무사히 넘어가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토록 문제가 많은 인물이 난세의 흐름을 타고 일약 1위 대권후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최대의 광역 자치단체장 직을 수행하면서 수백억대의 용역 프로젝트와 홍보비용을 물 쓰듯이 쓰면서 언론사와 시민단체의 재정상황에 깊숙히 개입함으로써 이들 손으로부터 사회고발을 위한 메가폰을 빼앗아버렸다. 심지어는 특정 언론 및 여론조사기관과는 아예 청와대 입성 후의 '보은'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면서 여론조작의 선봉에 서 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이 특정 언론사는 최소한 두번 이상 당연히 거쳤어야 할 검증을 이제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을 향해 '네거티브와 정치공작'이라는 낙인을 찍어가며 열심히 특정인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이 특정 여론조사기관은 '대세론'이 흔들릴 때마다 어김없이 '대세론 흔들림 없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며 충성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제품이 '불량품'인지를 꼼꼼히 따져서 정당의 이름을 걸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후보자를 내놓아야 할 정당이 단지 이름값이 알려졌고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량품을 시중에 풀어버렸다는 점이다. 해당 불량 정치인은 도리어 이 점을 악용하고 있다. "내가 정말 문제가 많으면 과연 당에서 나를 공천했겠는가? 나는 정당이 보증하는 깨끗한 정치인이다."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정당 구도를 보면 한 쪽은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시키면서 대량으로 제품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나오는 물건 중 상당수가 불량품이다. 다른 한 쪽은 한 때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는 했었지만 극심한 노사분규와 적대적 M&A에 휘말려 지금은 아에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다. 선거를 앞두고 불량품만 쏟아내온 어떤 기업이 "저희 제품을 사주시기만 한다면 확실한 고객감동과 AS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고 말하고, 또 다른 기업이 "제품 하나는 저희가 잘 만들었지 않습니까? 이제 싸우지 않고 협력하여 좋은 제품을 내놓겠습니다. 한번만 저희 제품을 사용해주시고 평가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과연 누구 말을 신뢰할 것인가? 지금의 정치상황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1997년과 2002년에 이어 '범여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업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정당도 당연히 작동시켜야 할 검증 메카니즘을 무시하다 보니 이와같은 황당한 경우를 겪게 되는 것이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핵심당사자(김경준, 에리카김) 모두가 재미교포이고, 이 사건이 김경준 해외도피 이후 그 사법심판의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졌기에 교포언론(썬데이저널, 미주세계일보)에서는 연일 이 문제를 핫이슈로 다루었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내 유력지도 이 문제를 여러번 다룬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미국언론을 강타했던 2003~2005년 우리 언론 중 이 문제를 다룬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더욱이 이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이 유력 대권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중동 등이 외면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한겨레-경향-서울-한국-국민 등 다른 언론들은 왜 이를 숨겼을까? 막대한 광고비와 용역비로 이들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야당후보에 대한 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미명하에...
기업이 임직원에 대한 엄격한 검증 메카니즘을 작동시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인 '소비자'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다. '불량 직원'이 '불량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이 부분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그와같은 노력을 별반 하지 않는다. '불량 총수'와 '불량 CEO'들이 '경제활동 위축 우려'와 '대외신인도 유지'라는 미명 하에 너무도 당연하게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 불법과 비리에 대해 '없던 일'로 처리되고, 정치권이라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계파인물 혹은 당의 미래를 위해 활용도가 높은 인물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 특별사면 속에 '끼워놓기'를 한다. 지금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 역시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에 '끼워팔기'로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아 현재의 위치에 올라있다.
재벌-언론-시민단체의 합작품
고객인 '독자'와 '유권자'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언론과 정당이 검증 메카니즘을 작동시키는 이유 또한 앞서 말한 기업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고, 그 무책임함과 도덕적 무감증이 절정에 달한 우리 언론은 검증 메카니즘에 대해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논조와 기사의 질에 대한 공격은 '언론탄압'이라고 목청껏 외치면 되고,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사명감과 기사의 품질에 실망한 '독자'들을 향해서는 경품 끼워팔기와 공짜를 미끼로 현혹시킨다. 최악의 경우 사실상 무가지 형태로 시중에 수십만부를 무대기로 배포하더라도 발행부수에 따른 광고비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들 맘대로 진실을 감추기도 하고 호도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누가 정론지로서 가장 진실되고 공정하냐가 아닌 누가 권력을 창출하는데에 가장 깊숙히 개입했느냐를 놓고 '1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그들 눈과 마음 속엣 '독자'라는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우리 정당문화에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흐름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손학규 탈당, 열린우리당 분당, 민주-통합신당 합당, 이재오의 '좌충우돌' 등이 모두 원칙과 도덕성을 팽개쳐버리고 권력의 단맛만을 추구한 결과 빚어진 일들이다.
바로 이와같은 한국사회 '블랙 코미디'의 정점에 바로 특정 대권후보가 올라있다. 마치 피아노를 전혀 연주할 줄 모르는 엉터리 피아니스트가 2만명 관객의 박수 속에 예술의전당 콘써트홀에 들어서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가 혹 엉터리 연주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관객들은 관람료를 모두 낸 후이며, 출구가 모두 막혀있기 때문에 엉터리 연주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퇴장할 수도 없다. 이와같은 경우를 당한 관객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스럽고 화가 날 일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와같은 일은 곧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잡지, 공연기획사, 공연팸플릿, 매표소, 현장 질서유지원 등이 모두 한통속으로 짜고 친다면 그 어떤 날고 기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이와같은 사기극에 그대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현실에 있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재벌-언론-정당-시민단체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 당연히 작동시켜야 할 검증 메카니즘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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