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세대라면 어린시절 이불속에 숨어 두눈을 빼곰히 내놓고 숨죽여 보던 드라마가 있다. 그 특유의 천둥소리와 여우울음소리에 심장이 콩닥거리면서도 눈을 뗄수 없었던 드라마가 '전설의 고향'이다.
KBS TV시리즈인 '전설의 고향'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극장에 선보인 사극공포물은 '여곡성'이후 20년만에 컴백이다.
사극공포영화 '전설의 고향-쌍둥이자매비사'(감독 김지환 주연 박신혜, 재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국 고유의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다.
평화롭던 한 마을에 10여년전 마을 호수에 빠졌던 쌍둥이 자매 소연(박신혜)과 효진. 이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연은 10년이 지난 어느날 의식을 되찾게 되고 소연의 깨어남과 동시에 평화롭던 마을에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어릴적 소연과 정혼한 현식(재희)은 집안의 약속에 따라 소연과의 혼인을 서두르는 것이 못마땅하고 소연의 동생 효진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소연과 효진의 어릴적 친구들이 하나씩 죽임을 당하면서 마을사람들은 모든 일이 소연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믿게 되고 주위의 시선을 괴로워하는 소연은 죽은 동생 효진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슬퍼한다.
소연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리면서 10년전 원한이 시작된 그때로 돌아간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양금석)는 다시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전설만 남은 '전설의 고향'
한국의 전통적인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사극공포물은 지난 60년대 전성기를 맞이하다 86년 '여곡성'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공포영화가 제작되었지만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공포영화장르는 삼류영화로 치부되는 상황에 놓인다.
한국공포영화는 이후 1998년 '여고괴담'을 필두로 '폰', '장화홍련', '거울속으로', '알포인트', '분홍신'등 다양한 소재와 촬영기법으로 여름시즌의 주류영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한국형 사극공포물의 부활격인 '전설의 고향-쌍둥이자매비사'는 공포영화라고 부르기보단 슬픈 미스터리물이라고 봐야 좋을듯 하다.
한국형 사극공포물의 가장 큰 특징은 하얀소복과 풀어헤친 머리, 입가에 흐르는 한줄기 선혈, 번뜩이는 눈빛으로 대변되는 '처녀귀신'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恨'을 품고 저승에 가지 못한 '처녀귀신'은 그 한을 풀어야만 저승길에 오르게 된다.
영화 '전설의 고향'이 공포스럽지 못한 이유는 '처녀귀신'에 있다. 우선 영화속에서 원한에 사무친 귀신의 활약상(?)이 미미하다. 그 사무친 원한에 가슴이 섬뜩할 정도의 서늘함을 느껴야 하지만 '전설의 고향'의 귀신은 너무도 얌전(?)하다.
어릴적 친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귀신의 등장 이후 무언가 공포스러운 액션을 취하려나 잔뜩 기대하면 화면은 가차없이 '상황종료'를 알려 맥이 빠져버린다.
또 한국 고유의 '처녀귀신'이라는 브랜드를 붙여주기에는 너무도 일본산 귀신인 '사다코'스럽다. 영화 '링'으로 잘 알려진 '사다코'는 어찌보면 '처녀귀신'과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긴 머리칼을 바닥에 끌며 하얀 옷을 입고 어색하게 걷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다코'다. 무언가 한국 고유의 '처녀귀신'이라고 보기엔 부족하고 '사다코'에 비해 영화의 '처녀귀신'은 귀신으로서의 면모(?)가 한참 뒤떨어진다.
'전설의 고향'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수 있는 '처녀귀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하다 보니 공포영화가 갖춰야할 공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쩌면 '전설의 고향'은 공포보다 '처녀귀신'의 사무친 원한을 통해 인간 본연의 문제를 알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사다코'를 뛰어넘어라
1998년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여고괴담'으로 한국형 공포영화의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게 됐다. 이후 '장화홍련'은 314만명이라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공포영화도 성공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많은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다지 높은 성적을 거둔 공포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영화 '링'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사다코'의 존재를 알린 영화가 되었고 하물며 국내에서 조차 '링'을 리메이크할 정도였으니 '사다코'의 위력은 가히 공포스럽다.
2007년 개봉예정인 한국공포영화는 10여편에 달한다. 그러나 이에 맞서 개봉되는 헐리웃 공포영화와 일본공포영화도 대기중이다.
'전설의 고향'이 보여준 '처녀귀신'이 역사적으로 우리것이든 문화적으로 우리가 먼저든 '사다코'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의 '처녀귀신'은 '사다코'의 한수아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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