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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21주년, 그 명암

평행선 달려온 남북관계 돌이켜 볼 때다

1991년 9월17일 오후 유엔본부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동시에 게양됐다.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된 후 남한은 43년만에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공식 인정받게 된 것이다. 북한 역시 평양 단독정부가 수립된 지 43년만에 유엔 가입이 받아들여졌다. 북한은 1949년 2월에 가입을 신청했지만 당시 소련 이외엔 협조해주는 나라가 거의 없어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가 유엔 가입으로 겨우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외교의 성과였다는 것이다. 가입직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북이 따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영구 분단 획책’이라며 고려연방제를 통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 아래 유엔 가입을 추구했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평화통일 외교 정책에 관한 특별선언(6·23 선언)’을 통해 북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자 북한 김일성이 반발했던 것이다. 김일성 입장에서는 남북동시유엔가입이란 곧 대남적화통일 목표에 중대한 전략적 차질을 빚는 것이었다.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 중 소련과 중국은 이 같은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면서 남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했지만, 노태우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왔던 북방외교가 ‘1990년 소련과의 수교’란 결실을 맺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 정부의 북방외교는 "북한이 유엔 가입을 거부하면 단독 가입도 불사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국내외에 표출하면서 분위기 유지ㆍ확산에 주력하면서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이라는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유엔가입 결정을 내리면서 '남한이 단독으로 유엔에 가입하면 전 조선민족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들이 편견적으로 논의될 수 있어 유엔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는 불가피한 조처' 라는 내용의 궁색한 구실을 붙였지만 북한을 유엔이란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의 승리였던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어쨌든 남북한 유엔시대가 개막되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더불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남북 유엔가입 21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 근본적 변화 해법 모색할 때다

그러나 남북유엔동시 가입 21주년인 2012년 현재, 우리는 그 자체만으로는 여전히 남북문제와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는 부족하다는 현실적 고민에 직면해 있다. 남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한 후 북한은 오히려 유엔과 남한을 속이고 각종 지원은 챙기면서도 그동안 꾸준히 군비증강과 핵개발에 몰두해왔고,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과 같은 사건을 일으켜왔다. 북한에 사실상 무기력한 유엔을 통해 어떤 측면에서는 북한의 거짓과 도발에 명분을 주어왔다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유엔가입 자체로 섣불리 남북평화와 통일에 대한 꿈을 기대했던 것이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이었는지도 확인된 것이다.

남북유엔동시 가입으로 당시 교착상태에 있었던 남북고위급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대화와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남북 쌍방이 유엔에 가입 한 직후 1991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형식과 내용에서 대부분이 타결 되었던 것도 성과로 꼽히지만, 북한은 지난 2009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에 대한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 해상사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남북간 정상적이고 엄숙하게 이뤄진 합의서도 언제든 파기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또 한번 확인된 것이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얻은 것 자체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일이다. 또 북한의 무모한 정치군사적 도발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가 생겼다는 면에서도 평가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남북동시유엔 가입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실질적인 면에서 깡패 국가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무기력했다는 점, 결국 한반도 평화와 남북문제의 해결 당사자는 남북간이라는 점 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특히 북한이 무기거래와 위조지폐, 마약 등 세계의 깡패국가라는 오명을 불사하며 유엔 가입국으로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가입국의 지위만을 누려온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북한은 가입 후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전격 탈퇴한데 이어 94년 국제원자력기구 탈퇴를 선언하며 한바도에 핵위기를 촉발시켰다.

2000년대에 와서도 2005년 5월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인출, 2006년 대포동 미사일 및 핵실험을 이어가자 유엔 안보리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포함된 결의안(1718호)를 채택했다. 2009년 5월2차 핵실험 이후에는 기존 제재를 강화하고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는 내용의 안보리 결의(1874호)가 채택됐지만, 북한의 벼랑끝 불법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 남북유엔동시가입 21주년을 맞아, 3대세습이 이루어진 북한 김정은 체제를 생각해보면서, 우리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해 나가는 가운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남북동시유엔 가입이라는 과거의 한 페이지를 한번 들여다보기 바란다. 남북이 유엔의 틀에는 들어왔지만 여전히 그 틀 안에서 뱅뱅 돌며 현기증나는 남북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점검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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