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0일 남북적십자사간 전화 통지문을 통해 우리 정부의 대북 수해 지원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해왔다. 하지만 회동을 통해 지원 문제를 논의하자는 우리측 제안을 거부하고 북한은 먼저 지원 품목과 수량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수해를 당한 당사자가 도움을 주겠다는 측에 어떤 물품과 수량을 지원할 것인지 먼저 밝히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또한 우리측 지원 품목 내역을 보고 지원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도 전혀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북한이 이와 같은 황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작년 수해 때의 경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해에도 우리 정부가 50억원 상당의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식량, 시멘트 등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품목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우리의 선의에 퇴짜를 놓은 적이 있다.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기준을 맞춰 놓고 그에만 맞춰 받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올해 태풍과 집중적인 비 피해로 176명의 사망자와 21만 5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수치는 사망자 수가 작년보다 3배가량 증가한 것이고, 이재민 피해도 증가한 것으로 북한 입장에선 우리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피해를 입은 작년보다 식량 생산량도 60만t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지원이 절실한 북한 주민을 생각하기보다 자연재해마저 대남 전략적 차원에서 악용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수해 지원은 안정적 대북 리스크 관리 차원
이런 북한을 상대로 정부가 지원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고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세계적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우리의 신용평가 등급을 올리는 데 하나의 이유가 됐던 것은 안정적인 대북 리스크 관리 때문이다. 국내 좌파진영과 북한은 현 정부의 남북관계 기조에 대해 강경일변도의 파탄정책이라고 비난을 퍼부어왔지만, 실은 북한 핵 폐기 문제를 우선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인도적 지원 문제와 남북대화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미국 등 세계에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원칙 대응이라는 안정적 신호로 읽혀졌고, 그 신호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의 북한 수해 피해 지원 문제가 논의되고 평가되어야 할 일이지, 일각에서 제기하듯 남북대화, 교류 중단이라는 오명을 벗고 성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폄하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일부 좌파언론은 이번 정부의 지원에도 남북관계 개선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무조건 깎아내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원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고, 지원을 결정하면 남북관계 개선이 없을 것이라고 딴죽을 거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바라는 태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반대를 위한 반대, 특히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남북관계 문제를 악용하려는 태도로 밖에 볼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예측 불가능한 상대라는 것이고, 그럴수록 우리 정부는 원칙을 세워 일관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이어 이번 우리 정부의 수해 지원 결정은 옳은 판단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남북관계에만 매달려 북한의 의도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북한 정권과는 일절 대화할 수 없다는 강경일변도의 태도도 아니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 제안 거듭 거부시 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북한과 남한 종북세력에게로
우리 국민이 북핵을 반대하면서도 북한 주민을 위한 북한인권법을 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 원칙을 지키면서도 수해 지원 문제와 같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도적 지원 문제는 정치적 문제를 떠난 말 그대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일 뿐, 이것을 굴욕적 남북관계로까지 비약해서 해석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처한 현실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고서도 거듭된 수해 피해로 식량난과 함께 주민의 체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경제개혁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개혁개방의 징조로 보고 있지만, 북한 주민의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 덜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이번 우리 정부의 수해 지원 제안에 품목과 수량을 적은 리스트를 먼저 요구하는 오만한 태도는 거둬들여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과거의 수구적, 냉전적 태도에서 벗어나 남북관계 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신호로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건, 북한 주민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뿐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인도주의적 지원 제안에 북한 당국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는 지가 그 척도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남한 내 종북세력의 여론 분열 작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북 원칙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이 이번 우리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다. 거듭된 우리 정부의 인도적 제안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또 다시 뿌리친다면 소위 남북관계 단절, 파탄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에 있다는 점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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