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기관지 미디어오늘이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지난 9일 “진보언론 책임도 크다”며 훈계에 나섰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막가파식 민주주의 파괴 현실에 좌파언론 책임도 크다는 ‘반성’ 취지였다. 미디어오늘은 “진보정치의 ‘곪은 살’이 썩어 악취를 풍길 때까지 진보언론은 ‘외과의사’ 역할은커녕 쉬쉬해온 측면이 있”다며 좌파언론 전체의 자성을 요구했다.
기사는 “진보정당 내부의 패권주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부터 각종 공직선거와 내부선거, 당 운영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슈화되지 못했다”면서 “진보정당 당내 문제는 여론의 관심을 모을 ‘핫 이슈’가 아닌 측면도 있었고, 출입기자들이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드러내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는 동안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말았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드러난 ‘부정선거’ 의혹은 일반인에게 충격을 넘어 경악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보정당 전문 기자였던 한 신문사 기자는 “노동계나 범진보계 쪽에서도 패권주의 등 진보정당 문제를 건드리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바라보면서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진보언론 역시 방치한 측면이 있다”면서 “진보정당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사건은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번 사태를 대충 덮느냐, 재도약의 계기로 삼느냐에 따라 진보정치의 운명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보수언론은 진보정치 전체를 비이성적인 세력, 북한 추종세력으로 몰아세우려는 ‘프레임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진보정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저히, 처절히 반성하며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보수언론 프레임은 여론을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계속해서 권영길, 강기갑 전 대표의 통합진보당 사태 관련 비판 발언을 전한 뒤 좌파언론들의 비판보도(한겨레 5월3일자 ‘당권파 패권적인 당운영 진보정당 민주주의 질식’, 5월4일자 ‘통합진보당 ‘유령당원 투표’ 드러났다’, 5월7일자 ‘“선거부정 아니라니 소름”…낡은 정파질서 깨야’, 경향신문 5월4일자 ‘당권파 “당권 줄게 지분 보장하라” 거래’, 5월5일자 ‘“경선조사 못 믿겠다” 이정희·당권파 반발’ 등)를 이어 전했다.
그러면서 “보수언론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색깔론 보도’보다 진보언론의 비판이 진보정당에는 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며 “문제는 진보언론의 그러한 모습은 ‘뒷북 비판’의 측면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가 불거질 때 매서운 비판보다는 사실상 방치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물론 비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의 사례처럼 연일 1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진보정당 내부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근본적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조언자와 감시자의 역할을 다했는지는 되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홍세화 “통진당에 진보 미래를 맡기는데 한겨레도 한 몫 하지 않았나”
미디어오늘이 내놓은 좌파언론의 내부 감시 소홀 이유는 꽤나 궁색하다. “진보언론 기자들이 진보정당을 봐준 게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은 단선적인 접근이다. 뉴스라는 ‘상품’을 기준으로 볼 때 진보정당 내부 소식은 국민의 관심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주요 진보성향 언론이 이슈화에 주저한 원인일 수 있다.”며 “실제로 진보정당 내부 상황을 애써서 취재해 기사로 내놓아도 언론에 비중 있게 실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주장한 대목을 말한다. 즉 좌파언론 기자들이 좌파진영 내 부조리한 정치적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취재했지만, 국민의 관심사안도 아니었고, 기사화해도 비중 있게 실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명은 애초 기사가 화두로 삼은 통합진보당 사태만으로도 쉽게 반박이 된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곧바로 국민의 관심 사안이 됐고, 좌파언론들에서 애써 취재하지 않아도 중도·우파언론을 비롯해 많은 언론들이 충분히 비중 있게 다뤘다. 오히려 미디어오늘 주장과 정반대로 좌파언론들이 통합진보당 사태가 국민의 관심 사안이 되지 못하도록 노력(?)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 기자 출신이자 전 진보신당 대표를 지낸 홍세화는 14일 한겨레가 ‘이런 후진적 정당에 진보의 미래 맡길 수 있나’란 사설로 통합진보당을 비판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까지 그 정당에 진보의 미래를 맡기는 데 한겨레도 한몫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그 정당의 후진성을 이제사 알아차렸나요? 한겨레...ㅠㅠ”라고 꼬집었다. 좌파언론매체와 기자들이 통합진보당 내부사정을 다 알고도 숨겨온 사실을 비판한 것이다.
인터넷과 SNS 등도 마찬가지다. 진보신당 게시판의 ‘좝파’라는 네티즌은 총선 후인 4월21일 ‘진보언론 책임론 -통진당 사태’란 글에서 “2004년에 민노당이 10석으로 진출한 뒤에도 언론이, 특히 한겨레가, 당내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쏟았더라면”이라며 “진보언론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결국 보수언론이 먼저 나서게 마련이다. 당시에 언론의 역할로 당내 문제가 제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8년이란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당시에 문제가 해소됐으면 분당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쯤 진보정당은 30~40석 남짓의 중견 정당이 돼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커뮤니티 사이트 클리앙의 ‘졸린눈’이란 네티즌은 “통진당 사태는 진보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며 자신이 여러 차례 통합진보당의 지역 경선 잡음, 비례 대표 경선 부정 등에 관해 글을 올렸음에도 좌파언론들은 전혀 관심 갖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련의 사태들이 꾸준하게 발생해 왔고, 통진당 내부에서도 계속적으로 문제가 제기 되어 왔다”며 “최소한 진보언론이라도 이런 사항들을 취합해서 유권자에게 알려줘야 했지만 한겨레, 프레시안, 경향 등에서 이런 기사를 본적은 정말 가뭄에 콩나기였다. 다들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반MB 라는 구호아래 새누리당 까기만 바빴지”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오늘, 3월엔 이정희 여론조작 사태 방탄기사 내보내
한편 미디어오늘이 좌파언론의 통합진보당 비판을 ‘뒷북’이라 표현한 것도 코미디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미디어오늘은 총선 직전까지 여론조작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에 대해 좌파언론들이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옹호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 3월28일자 기사 ‘진보정당에만 가혹한 도덕성 이중잣대’는 “진보언론은 자기편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반면, 보수언론은 자기편의 잘못을 적당히 감추거나 물타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진보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당사자는 ‘융단폭격’을 당하곤 한다. 반면 보수 쪽에서 비슷한 사안이 터졌을 때는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국회의원 후보직 사퇴로 이어진 ‘관악을 사태’도 생각해볼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총선 전 한겨레마저 이정희 대표 후보사퇴를 주장할 때 미디어오늘만은 반대한 셈이다.
이렇듯 철저한 진영논리에 따라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하던 미디어오늘이 뒤늦게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좌파언론 책임을 묻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것.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은 “미디어오늘은 한겨레 등과 더불어 좌파진영 내 치부를 감추고 방패 역을 자임해온 정략매체로 오늘날 통진당 사태의 진짜 주범 중 하나”라며 “가장 먼저 나서 ‘남 탓’을 해버리면 정말로 그 모든 게 다 ‘남 탓’이 돼버리는 줄 아는 모양이다. 국민이 관심이 없다, 열심히 취재해도 잘 안 실린다에 이어, ‘뒷북 비판’ 운운까지 가면 아무리 좌파성향이더라도 일반상식을 지닌 대중은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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