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20일 4.11 총선 비례대표 후보 46명을 확정지었다. 발표에 따르면 비례 1, 2번에는 민병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정록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을 배치했다고 한다. 당초 ‘비례1번’설로 논란이 됐던 박근혜 위원장은 비례11번을 배정받았다.
이 밖에 ‘나영이 주치의’인 신의진 연세대 의대교수가 7번, 국가대표 탁구선수 출신인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이 9번,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엄마로 출연한 필리핀 귀화여성 이 자스민씨가 17번을 배정받은 점이 눈에 띈다. 또 탈북자 출신의 조명철 통일교육원장이 4번을 받은 점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인물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최근까지 중앙일보에 칼럼을 써온 이상일 논설위원이다. 이 논설위원은 비례 8번을 배정받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논설위원은 지역구 출마가 아닌 비례이기 때문에 현역 언론인임에도 공직선거법 제53조에 따라 선거일 전 90일 전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규정에 제한받지도 않고 불과 며칠 전인 3월 15일자 칼럼에서까지 특정 정당을 위한 논조의 칼럼을 쓸 수 있었다.
법적 문제는 없다 해도 이 논설위원의 갑작스런 변신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 일단 ‘정언유착’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논설위원은 15일자 칼럼 ‘김무성의 진가’란 칼럼에서 당 잔류를 선언한 김 의원에 대해 “낙천한 친이계 의원들의 연쇄 탈당으로 새누리당은 크게 흔들렸을 거다. 선진당이나 국민생각은 의원 이삭 줍기로 재미를 보면서 합당 절차를 밟고 있을 것이다. 원내 제3당을 만들면 국고보조금을 많이 챙기게 되고, 총선 기호로 ‘3’을 배정받을 수 있어서다. 결국 우파는 대분열로 야권연대를 이룬 좌파 앞에서 지리멸렬한 모습을 노출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지극히 새누리당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었다.
그는 또 “김 의원의 백의종군으로 소위 ‘비박(非朴)연대’는 물거품이 됐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 대다수가 ‘김무성의 길’을 따르는 바람에 선진당이나 국민생각은 김칫국만 마신 셈이 됐다. 양당 합당설도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됐다”며 새누리당 특정 계파 입장에서 친이계와 국민생각, 자유선진당 등의 연대 무산에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이 논설위원은 그 전주에는 ‘손수조 공천이 장난일까요?’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는 손 후보에 대해 새누리당이 공천한 이유에 대해 명분히 충분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곁들이면서 “스스로 번 돈인 전세금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발상, 운전기사·사진사·비서 역할을 하는 남동생을 빼곤 선거운동원을 한 명도 쓰지 않는 용기, 금배지를 거저 줍는 비례대표는 사양한다는 패기 등은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면서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선발전에 응모한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고 극찬했다. 손 후보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에 가까운 칭찬이 순수하게 언론인으로서, 기자로서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의 새누리당 입맛에만 딱딱 맞춘 그의 칼럼을 본 독자로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가 불과 며칠 후에 새누리당 비례 대표 8번을 쥔 것을 보면, 정황상 이런 칼럼들이 어떤 목적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파분열을 걱정하는 언론인의 충정으로 바라보던 독자들은 며칠 후 새누리당 비례 대표를 받아들고 선대위 대변인으로 깜짝 변신한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속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을까?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메이저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자신이 비례 신청을 넣은 당을 위해 사심 번뜩이는 칼럼으로 독자와 국민을 기만한 셈이다.
물론 언론인의 정치참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연주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어떻게 노무현 정부와 밀착했는지, MBC 사장을 지낸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행보가 어떠했는지, 현 정부에서 이동관, 김두우, 신재민 등 언론인들의 모습과 평가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자.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은 언론인들의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놓고 권력을 향한 아부성 칼럼을 남발하다가 곧바로 정치권력에 합류하는 모습에 대한 평가는 뻔하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이상일 논설위원의 새누리당 비례 소식은 그래서 불편하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 보여줬어야 할 양심적인 모습도 찾기 어렵다. 우파가 친노종북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거짓도 참이라는 분위기를 참아야 하고, 아닌 길도 바른 길이라고 우기는 요즘 분위기가 아무리 대세라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정치입문 하기 전까지 충분히 주변을 정리하지도 않고, 불과 며칠 전까지 자신이 비례 대표 신청을 넣은 특정 정당과 특정 세력을 위해 아부하는 칼럼을 쓰다 곧바로 선대위 대변인으로 변신한 이 논설위원이 그래서 틀렸고, 대단히 잘못됐다는 거다. 입맛이 정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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