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4.27, 10.26 연이은 선거 패배와 예고 없이 불어 닥친 ‘안철수 돌풍’에 직격탄을 맞은 당 안팎에선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다. 덩달아 우파세력까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7일 조선뉴스프레스가 주최한 ‘한국의 보수주의가 나아갈 길’ 토론회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3가지 주제별로 나눠 진행됐다. 먼저 제1주제 ‘한국 보수의 뿌리와 정체성’에서는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강규형 명지대 기록과학대학원 교수와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의 토론이 이뤄졌다.
남시욱 교수는 한국 보수의 뿌리를 조선조 말 집권세력인 수구파에 맞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했던 당시의 진보세력이었던 ‘개화파’로 봤다. 이에 따라 개화파3세대로 이들의 대표 격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한국 보수우파세력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남시욱 “대한민국 발전원동력은 보수주의 사상” 강규형 “자칭 보수 다수는 ‘생각없는 얌체’” 한기홍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의 기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가장 진취적인 진보”
남 교수는 “한국 보수세력의 원류인 개화파와 이들의 전통을 이은 독립운동가들은 민회(국회)를 설치해 영국식 입헌군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생각해오다가 1919년 기미독립운동 후에는 공화제를 채택, 임시정부의 헌장에 명문화했다”며 “이 점은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에 의해 비로소 한국 땅에 이식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보존할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일부 논자들의 질문은 한국 근현대사를 모르는 우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남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보수주의 사상에 있다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발전을 거듭한 데는 건국 주역인 한국 보수세력의 정치적·경제적 보수주의 이념, 즉 ‘한국적 보수주의’ 사상이 원동력이 된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뒷받침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 보수세력의 업적을 산업화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화 역시 보수세력의 업적임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이 바로 김영삼·김대중이 이끈 민주통일당이라는 정통보수야당이었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 교수가 이 같이 한국 보수세력의 역사를 짚었다면, 토론에 나선 강규형 교수는 이에 공감을 표하는 한편 현재 한국 보수가 취약한 이유에 대해 “한국의 기득권, 자칭 보수의 많은 수가 ‘생각이 없는 얌체’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헤리티지 재단’ ‘존 올린 재단’과 같은 훌륭한 보수주의 싱크탱크와 지원단체가 없고, 박정희 도서관이나 기념관 건립이 기금부족으로 무산위기에 놓인 현실을 지적하면서 “(한국 보수는) 자신들 인생을 신나게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 뜻있는 재단이나 기구를 만들어 지원할 의지와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지적했다.
한기홍 대표는 ‘개화파’가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라는 남 교수의 관점에 동감하면서도 이들의 사상이 당시 조선에서 보수주의로 불리기는 어렵다고 반론했다. 한 대표는 “왕조제나 반상 신분제의 봉건제를 존중하면서 현대 민주주의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보수가 아닌 진보, 거의 혁명적 인식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기적도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보존하면서 수리해 나간 것이 아닌, 무에서 유를 창출한 가장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것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보수의 문제는 “보수를 표방하는 혹은 보수로 위장한 정치세력의 문제”라며 “애국심, 철저한 선공후사, 자기희생, 솔선수범을 하지 않고 당략과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수로 표상되어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하태경 “시민사회가 똘똘 뭉쳐 무능하고 무기력한 한나라당 박살내고 새 우파혁명 해야”
2부 토론 ‘한국 보수의 현황과 우파(右派) 대(大)개조운동의 방향’은 현재 한국 보수의 위기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 축소판이었다. 발제를 맡은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우파세력까지 덩달아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간 한나라당을 시민의 힘으로 깨부숴야 한다는 강경론을 폈고,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MB정부 실패의 책임은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방치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우파시민사회 등 모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토론을 지켜보던 어버이연합회원들이 전 의원의 박 전 대표 비판 발언 도중 거칠게 항의하며 집단 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 총체적 불통과 괴리가 고스란히 표출된 장면이었다.
먼저 하 대표는 발제를 통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최대 실적은 “우파정신을 팔아먹은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 대표는 “정권 초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직을 걸고 괴담, 허위, 거짓선동과 싸웠어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 뒷산에서 운동권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았나”면서 “좌파에 굴복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MB정부가 속된 말로 맛탱이가 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한미FTA도 온갖 거짓과 괴담이 난무할 때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는 것만 아니라 KBS, MBC에 나와 국민의 질문을 받고 설득하면서 직접 소통했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한나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판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한나라당 의원 169명이 민노당 강기갑 한 명을 못 당한다. 한미FTA, 북한인권문제 등 국가 명운이 달린 문제라면 민노당 의원들 하는 것처럼 길거리에 나와 똘똘 뭉쳐 싸웠어야 했는데, 단 한 사람도 지지집회에 나와 연설한 사람이 없다. 이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더불어 그는 “곧 보수신당이 나온다. 이 당을 키워주어야 한다. 보수끼리 경쟁시켜야 우파가 대선에서 이길 수가 있다”면서 “우파의 새로운 힘은 이제 시민사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시민사회가 똘똘 뭉쳐서 저 무기력하고 무능한 한나라당을 박살내고, 관료주의를 박살내고 새로운 젊은 정치세력을 만들어 새로운 혁명으로 우파 대한민국으로 바꿀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여옥 “우파, 책 읽지도 쓰지도 않고 오직 자리다툼만, 우파 몰락은 모두의 책임”
토론에 나선 전 의원은 “여러분이 뽑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러분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공천을 잘못해서인가? 아니라고 본다”며 “좌파가 책 읽고 토론하고 공부할 때 우파는 책도 안 읽고, 쓰지도 않았다. 박사모가 강기갑 지지운동 할 때 여러분은 뭘 했나, 박 전 대표는 뭘 했나. 민노당 강령을 안다면 박사모는 강기갑 지지운동을 해선 안 된다. 이런 말 한마디 박 전 대표는 왜 하지 못했나. 바로 여러분들이 그런 것들을 묵인하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이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대통령을 쥐새끼로 부르고, 경찰서장이 얻어맞고, 판사가 대통령을 조롱하고, TV조선에선 ‘웰컴 투 동막골’을 튼다. 이런 사회가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이제 좌파들은 자금과 경험이 풍부하다. 그에 비해 우파는 자금도 없고, 경험도 없고, 욕심만 많다. 좌파시민사회는 절대 자리싸움을 하지 않지만 우파시민사회는 자리싸움만 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당이 언제 나올 수 있겠나. 인큐베이터에서라도 키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더불어 “왜 이렇게 됐는지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치열하게 묻고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 60%를 차지하는 2040세대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움직여 정권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형준 교수는 “국민들로부터 보수가 부패하고 능력마저 없다고 인식되는 순간 한국 보수의 미래는 어둠속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어진 제3부에서는 ‘한국보수주의의 재건방향’ 주제로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발제한데 이어, 박성현 인터넷문화협회장과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토론을 주고받았다. 박 교수는 “보수가 이 시점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이라며 “그 안에서 보수는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보수의 꿈과 미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한국 보수주의의 재건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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