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스타과학자’로 손꼽히는 정재승 교수에게서 논문 자기복제 혐의가 여러 건 발견됐다. 연구데이터와 관련된 도표가 자기표절되거나 아예 논문이 통째로 이중게재되는 등 사안이 심각해 일부는 ‘논문철회(retraction)’가 불가피해보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2일, 국내 유일 연구부정행위 전문 민간조사기관인 연구진실성검증센터(이하 검증센터)는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의 학술지논문들에서 텍스트 및 도표 자기표절 혐의는 물론, 국제 전문과학학술지(SCI급)에서는 절대 금기시하고 있는 연구부정행위인 ‘전면 이중게재’까지 한 혐의를 찾아냈다”며 “정 교수가 황우석 사태 전후, 그리고 황우석 사태가 꽤 지난 시점에서도 버젓이 자행한 연구윤리위반이라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연구부정행위 중에서 자기표절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형태는 연구데이터와 관련한 도표(영어로는 figure 또는 table 이 있다)를 재활용하는 일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11년에 공동발간한 연구윤리 교재인 ‘연구윤리 사례집 : 좋은 연구 실천하기’에서는 연구데이터 자기표절(중복게재)의 심각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계열에서 볼 수 있는 중복게재는 주로 동일한 데이터를 두 개 이상의 논문에서 사용한 데이터 중복의 예다. 동일한 데이터를 중복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도 여러 가지 정황과 논문에서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후속 조치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 정도에 따라 후속 조치의 수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그림 하나, 표 하나만 같더라도 중복게재에 대한 책임을 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 지금까지 본 필진이 확보한 판정 사례를 볼 때, 일단 두 개 이상의 논문에서 동일한 데이터가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비중이 크지 않은 경우라도 (모든 조사위원 및 전문가 자문위원의의 의견이 항상 100%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중복게재라는 판정을 피하지 못했다.”
본지가 확보한 검증센터의 검증 자료에 따르면 정 교수의 논문 실적 중에서는 이 같은 도표(연구데이터) 자기표절에 연루된 국제과학학술지(SCI) 논문이 5개가 있었다. 추가로 연루된 2개의 논문은 자기표절 중에서 가장 최악의 형태로 손꼽히는 ‘이중게재’로, 사실상 똑같은 논문을 동시에 각각 다른 전문과학학술지에 투고·게재한 경우였다.
텍스트는 물론, 도표(figure)까지 다른 과학학술지 논문에서 그대로 옮겨
먼저 정재승 교수가 2002년 5월 학술지 ‘Biological Cybernetics‘에 발표한 논문 ’Detecting determinism in short time series, with an application to the analysis of a stationary EEG recording‘은 그 내용 중 상당수가 사실은 같은 해 11월 학술지 ‘IEEE Transactions on Biomedical Engineering’에 발표한 논문 ‘A method for determinism in short time series, and its application to stationary EEG’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검토 결과, ‘Biological Cybernetics‘에 발표한 선행논문의 도표 3개(Figure 2a,b. , Figure 3.a,b. , Figure 4a,b.)가 도표는 물론 도표 하단설명까지 ‘IEEE Transactions on Biomedical Engineering’에 발표한 후행논문에 그대로 실렸음이 확인됐다.
도표만이 아니다. 요약(Abstract), 서론(Introduction), 연구방법론(Method), 결과(Result), 논의(Discussion)까지, 논문의 전 범위에 걸쳐서 텍스트 자기표절도 역시 확인됐다. 정재승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주요 저자인 교신저자(책임저자)로 참여했다.
정 교수가 2005년도 8월에 학술지 ‘Journal of Computational Neuroscience’에 발표한 ‘Dynamical Heterogeneity of Suprachiasmatic Nucleus Neurons Based on Regularity and Determinism’도 마찬가지다. 이 논문 내용의 상당 부분은 2003년도에 학술지 ‘Neurocomputing’에 발표한 논문 ‘Nonlinear determinism of spiking activity recorded from rat suprachiasmatic nucleus neurons in vitro’에 힘입은 것이다.
텍스트는 물론이거니와 도표 3개(Figure 1, Figure 2, Table 1)가 통으로 베껴졌다. 양 논문은 모두 정재승 교수가 1저자로 참여한 논문이다.
특히 정 교수의 2005년도 8월 발표 논문은 자기표절 논문을 넘어 자신이 이미 발표한 다른 논문 2개를 이어붙인 짜깁기 논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가 어렵다. 해당 논문은 정재승 교수가 2005년 3월에 학술지 ‘Journal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에 발표한 논문 ‘Bicuculline-induced complexity reduction of spike trains in Rat Suprachiasmatic Nucleus Neurons in Vitro’의 내용 상당수도 그대로 옮겨졌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본지 검토 결과, 2005년도 3월 발표논문의 도표 2개(figure 1, figure 2)와 텍스트가 역시 그대로 베껴졌음이 확인됐다. 2005년 3월 논문은 정재승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음이 확인됐다.
똑같은 논문을 각각 다른 학술지에게 투고·게재하는 일까지
검증센터는 2005년도 8월 발표논문과 2005년도 3월 발표 논문의 투고시기와 게재시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증센터는 “양 논문의 투고시기와 게재시기가 상당 기간 겹친다”면서 “이런 논문들을 동시투고하는 것만으로 이미 연구윤리위반인데, 동시게재까지 됐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증센터는 “우리가 아직 과학학술지에 대한 검증 경험은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국제과학학술지 논문에서 이런 노골적인 짜깁기를 확인한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학술지 차원이건 학교나 연구소 차원이건 다른 공저자들의 경우도 징계 등 책임을 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지적했다.
자기표절 중에서 가장 심각한 형태는 사실상 똑같은 논문을 각각 다른 학술지에 발표하는 이중게재의 경우다. 정재승 교수가 2011년 3월에 학술지 ‘Schizophrenia Bulletin’에 초록 형태로 발표한 논문 ‘A study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ratio of 2nd-4th digit length and cerebral latrality’는 사실상 영한번역만 된 상태로 같은 해 11월 학술지 ‘생물정신의학’에 ‘제2수지-제4수지 길이 비율과 대뇌 편측화 관계 연구’ 제하로 그대로 실렸다. ‘생물정신의학’지는 이미 3월에 발표됐던 이 논문을 ‘원작논문(original article)’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후행논문인 국문논문은 2011년 2월에 투고하고 선행논문인 영문은 2011년 3월에 투고했으므로 이 역시 거의 동시에 양 학술지에 똑같은 논문을 투고한 것”이라며 “수시모집에서 함부로 바꿔타기 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학술지의 원칙도 똑같은데 정재승 교수는 ‘생물정신의학’지는 물론이거니와 ‘Schizophrenia Bulletin’지를 기만해 이중등록을 한 것이라 이 경우도 양 학술지 모두에서 논문철회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통과학자로서는 물론, 대중과학자로서의 실력에 대해서도 의혹 제기돼
정재승 교수는 이공계에서는 롤모델로 꼽힐 정도로 한국에서는 ‘과학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사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학계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키워준 언론계, 출판계에서도 그의 실력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볼맨 소리가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가령, 좌파 매체인 ‘프레시안’은 2011년도에 정 교수의 대표적 저서 ‘과학콘서트’ 10주년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편집위원들로부터의 다음과 같은 지적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출판사를 옮겨서 출간한 10주년 개정 증보판 자체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크게 다루어야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과학 저널 ‘네이처’의 요약판이라는 세간의 평가도 있다.”, “이 책은 문화방송(MBC)의 책 읽기 프로그램의 선정도서가 되면서 그 프리미엄으로 원래 가치에 비해서 더 많이 팔렸다.”, “오히려 독자들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넘어서는 정재승의 다음 저작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편집위원은 이 책과 꼭 관련을 지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물리학자들이 물리 이론을 내세워서 경제를 분석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편집위원은 이 책을 직접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 과학책이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 과학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를 다시 상기시켰다. 좀 확대 해석하자면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의 위치를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 규정지은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개정 증보판이 원래 책과 비교해서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도 부언했다.”
정 교수의 전공은 물리학이고 그 중에서도 복잡계 연구가 주전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선 주제로도 발언권을 행사하다가 결과적으로 경박하다는 인상을 남겼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가 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공방이 한창이던 당시, tVN 방송에 출연해 반과학적 괴담에 편승하여 체르노빌 원전 사고 관련 사망자, 피해자 숫자를 과장 발언했었던 일이다. 정 교수는 이 일로 같은 학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로부터 항의방문까지 받아야 했다.
정 교수에게는 심지어 이공계형 폴리페서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 교수는 2010년도에 KBS 블랙리스트 논란이 한창일 당시, 과거에 자신이 자문을 하던 프로그램인 KBS ‘TV 책을 말하다’가 폐지된 사유와 관련 ‘좌파 지식인들이 많이 출연하는 것을 윗선이 불편해 했다’는 식 폭로성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1년도에는 대표적인 허위선동 팟캐스트인 ‘나는 꼼수다’의 카이스트 콘서트와 관련하여 본인이 직접 학내시설에 대한 대관신청 과정에도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 교수는 지난 대선때는 SNS 를 통해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낙선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돼지발정제 범죄를 일으킨 홍준표후보는 심각한 자격 미달로 이번 대선에서 사퇴해야 한다”면서 “이를 판단하는데 있어,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법과 인권의 문제이다”라며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나 혹시 할법한 주장을 트위터에 공개하기도 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재승 교수는 현 정권 들어서도 황우석 박사와 연루된 인사인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낙마와 기독교계와 연계된 인사인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의 낙마에도 공개적으로 앞장서 정치 본능을 계속해 드러내 보였다. 두 사람의 낙마와 관련해 정 교수가 제시한 명분은 박기영 본부장의 경우는 연구윤리(부당저자)의 문제, 박성진 장관 후보의 경우는 반과학(창조론) 입장의 문제였다.
검증센터는 “정재승 교수가 학계에 입문하며 세운 목표는 ‘네이처’ 게재 논문과 베스트셀러를 모두 쓰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던데, 날이 갈수록 전자쪽 목표와는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족한 학계의 입지를 만회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좌파 세력과 거기에 편승하는 출판계, 방송계에 아첨이나 떠는 처신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학자로서의 장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재승 교수는 ‘한겨레21’ 제653호(2007년 3월29일자) ‘[인터뷰특강] 인간이라니, 자부심 가질 만하지 않나’에서 황우석 교수 문제를 거론하며 연구부정행위 문제와 관련한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본인의 연구윤리위반 문제와 관련 오랫동안 능청을 떨어온 정 교수 본인이 현재 가장 새겨야할 고언일 수 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황우석 교수는 자신의 부정이 너무 큰 저널에 실렸기 때문에 더 도드라졌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엄격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고. 이런 점에서 황 교수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된다. 이전 세대의 ‘관행’이었던 표절 문제를 고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다. ‘그 시절 우리 다 그랬다’라고 커밍아웃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연구윤리위반 의혹과 관련 정재승 교수의 해명
아래는 위 연구윤리위반 의혹과 관련하여 본지 질의에 대해서 정재승 교수가 보내온 답변 내용이다. 정 교수의 두세번에 걸친 답변 내용을 합친 것으로, 오탈자 등 일부 편집만 하고 그대로 전재한다. 독자들의 균형있는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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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논문이긴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선 2003년에 neurocomputing에 실린 SCN 논문은 학회발표(conference paper)입니다. 다시 말하면 neurocomputing 이라는 저널이 매년 그 맘때 계산신경과학 학회에 발표된 성과 중 우수 연구를 4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 한 호(issue)에 담아 proceeding 으로 저널의 구 호를 운영해 왔습니다.
과학자들은 대개 연구성과가 나오면 먼저 학회에 발표를 하고, 추후에 저널에 논문 형태로 출간합니다. 그러다보니, 학회발표 논문은 추후 저널에 실린 논문과 유사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신경과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는 학회 발표논문 보다는 ‘저널에 실린 논문’을 중요한 연구업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과 2002년 논문은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 논문들인데 결과가 다릅니다. 방법을 계속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미 분석한 1차 논문의 결과 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어, 제 지도교수들께서 더 개선한 방법론도 매우 훌륭하니 이것도 저널에 논문 형태로 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법론 중에 유사한 부분은 그대로 두고 새로 개선된 부분만 바꾸어 새로운 결과와 함께 논문을 작성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의 20년 전 얘기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유사한 부분이 두 논문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논문작성 윤리 규정에서는 모든 문장을 paraphrasing을 해서 한 문장당 6단어 이상 연속해서 같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18년 전인 그 시기에는 그렇게 엄격하게 규정을 운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국내 논문이나 카이스트 이전 논문들은 승진 등 평가에 아예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국내 논문을 외국 저널에 내기 전 단계로 논문을 작성하고 추후 보강하여 해외저널에 내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국내 논문은 업적으로 크게 간주하지 않고 저 또한 인정 받을 마음이 없어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재승 드림 |
[ 정재승 교수 자기표절 혐의 자료는 연구진실성검증센터 검증자료실에서 다운로드해주시기 바랍니다. 논문 원문은 제공할 수 없는 점 혜량바랍니다. ]
학계 부조리 문제를 다룬 브라이언 마틴 교수의 논문들 :
논문표절 문제를 다룬 어빙 헥삼 교수의 논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