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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학적 자격미달, 그리고 학계의 책임 회피 (2/2)

“학계의 부조리 문제를 공론화로써 해결하려는 것은 지위를 중심으로 한 상아탑의 위계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득권을 누리는 학자들이 이에 대한 논의를 꺼리는 것이다”



진상규명 메카니즘 및 제재조치 메카니즘의 부재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의 의도는 스파우츠 박사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31] 이 사건으로 인해 제기된 더 광범위한 논점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 논점은 표절 의혹 문제와 관련해 진상 규명을 위한 제대로 된 절차가 없다는 사실이다.

연구부정행위 사건들을 다루기 위한 특별위원회와, 엄정한 조사절차, 또 특수 학술지들을 만드는 일을 희망해볼 수 있다. 명예훼손 소송과 같은 난관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극복이 불가능한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표절을 제소하는 쪽에게는 불편부당한 조사가 수행될  것을 보장하고, 잘못된 표절의혹 제소를 당한 무고한 학자들에게는 정식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에, 제대로 확립된 조사 절차는 기꺼이 환영받을 것이다.

곧 논하겠지만, 이러한 정식 조사 메카니즘의 부재는, 학계에서도 학술적 영향력보다 사회적, 조직적 영향력이 더욱 우세함을 보여준다. 

두 번째 논점은 표절이 확실히 입증된 경우에도 제재를 가하는 공식 절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대학당국은 표절자로 밝혀진 이가 스스로 사퇴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속죄할 것이라고 믿거나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외의 방법으로 부끄러운 상황이 지나가기를 희망할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일이 항상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표절의 유형이나 정도가 사안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절에 대한 공식적인 제재 수단이 딱히 없는 것 역시 사회적, 조직적 요소의 영향 때문이다. 

셋째로, 표절의 심각성은 표절의 분량, 표절의 ‘전략적 위치‘(strategic location), 그리고 표절이 나타난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 문장이나 한 단락 수준의, 고립된 형태의 표절이라면 아주 심각한 표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어떤 논문을 통째로 베껴버린 경우라면 이는 학계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의 ‘전략적 위치‘라 함은, 표절 부위가 내용상 논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는데 어떤 학술적 주장에 있어 얼마나 핵심적인 부분을 베껴왔느냐와 관계된다. 논문에서 핵심 논증 부분에서 발생한 표절은, 이를테면 비교적 부수적인 부분인 ‘문헌검토(literature review, 이론적 배경)’와 같은 곳에서 발생한 표절보다 더 심각한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따져봐야 할 요소로, 표절이 발생한 전체적인 맥락이라는 것이 있는데 해당 논문이 기여하는 바의 학구적인 성격, 또는 그외 기타 성격을 띠는지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 

‘독자적’이라고 칭해지는 연구에서 발견되는 표절이 제일 심각한 경우로서의 표절이다.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어네스트 티터톤 경(Sir Ernest Titterton)의 표절 사례에서, 티터톤 경의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여러 주장과 근거를 단순히 종합한 것이었지 전례가 없는 독자적 연구처럼 보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에서는 2차 출처의 내용은 학문에서의 인용처리 없이 자유롭게 말바꿔쓰기하여 사용되며학계에서는 표준적으로 쓰이는 출처표시 체계 자체가 통상 누락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무조건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과 같은 경우에는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박사(Ph.D.) 학위 자격을 위한 논문은 독자적인 연구(original research)의 요소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표절을 밝혀낼 수 있더라도 그 심각성에 대해 논하려면 표절의 분량과 방금 전에 설명한 표절의 ‘전략적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32]

학계 도덕률 위반 문제와 관련 여러 논점들

표절을 학계의 다른 도덕률 위반의 맥락에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계의 도덕률 위반의 예는 다음과 같다:

- 학생, 조교, 조수, 아내, 후배 등이 전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작성한 저작을 자신의 저작인 것처럼 사칭하는 착취.[33]

- 타인의 지적인 수고를 인정하지 않고 그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34]

- 논문 게재를 방해하는 일.

- 개인적인 또는 이념적인 사유로 특정 인사의 임용, 승진을 방해하는 일.[35]

- 거짓된 내용의 결과물 발표.[36]

재인용처리가 안된 2차 문헌 표절은 일단 발견만 된다면 대개 손쉽게 입증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방금 언급한 학계의 도덕률 위반 행위들은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저러한 다른 부조리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표절 문제에만 집중하고, 또 표절에 대한 규정과 제재조치에만 몰두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진 드러난 증거로 판단해봤을 때,[37] 표절은 뭇 사람들의 생각보다 학계에 훨씬 만연해 있다. 학부 수준에서는 컨닝과 표절이 아주 고질적인 수준이고 심지어 리포트들이 대규모로 사고 팔리는 수준에 이르렀다.[38] 이런 행태가 더 높은 학문적 공동체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저명한 학자들은 글의 전체 단락을 그대로 표절하기엔 적발시 잃을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표절보다는 보통 아이디어를 훔치는 표절이 더 흔하다. 이는 고에너지 물리학처럼 경쟁이 심한 분야에서 일어난다.[39]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적절하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 1,309명의 과학자들에게 "다른 과학자가 당신이 발표한 연구를 활용하였음에도 당신의 연구결과에 대해서 적절한 인용처리를 하지 않았던 경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던 한 설문에서 25%가 “그렇다, 그는 아마도 내 연구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40]

다음과 같이 극적인 사례들도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몇 명의 동료들에게 평가를 받아보기 위해 내 초기 버전 작품의 처음 다섯 챕터를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필자에게 얘기하지도 않고 동의도 없이 그 쳅터들이 그 동료들 중 한 사람의 저서 일부분으로 출판되어버렸다.”[41]


이처럼 더욱 큰 문제들과 비교해보면, 사실 재인용 처리를 하지 않은 2차 문헌 표절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주제나 분야에서 권위있는 1차 문헌이 수많은 연구논문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논문 저자들이 이 문헌을 직접 참고한 적이 없고, 그 문헌을 소개시켜준 2차 문헌도 출처로써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42]

그렇긴 하지만 잘못이 관행적으로 행해진다는 이유로 잘못을 범한 사람이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학계가 일종의 담합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서다. 표절이 학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학계 외부에서도 명백한 범죄로 인식되고 있고, 통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만연하기 때문에 이 주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학자들은 극도로 꺼리게 된다. 

표절 문제에 있어서 정의 구현의 긍정적 결과들

만약 표절 의혹에 대한 조사와 관련하여 잘 조율되고 공명정대한 절차가 학계에서 확립된다면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첫째, 상아탑의 치부와 같은 표절 문제가 공개적으로 다뤄진다면, 상아탑의 대외적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시릴 버트(Cyril Burt) 사건과 같이 공론화된 여러 연구부정행위 사건들로 인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거듭되는 공론화는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한계에 대해서도 현실적 이해를 불러올 것이다. 학자들도 결국은 도덕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일개의 인간이 아니던가.[43]

둘째, 표절 사건 조사를 위한 투명하고 확립된 절차는 학계의 위계질서를 흔들게 될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당장은 표절과 관련하여 학계에 정립된 제재 수단이 없는 형편이나 만약 입증된 표절에 대해서 확실한 징계를 받도록 할 수 있다면, 학계에서 지위와 권력을 가진 학자들에게도 표절에 대한 리스크가 커질 것이다. 2차 문헌 표절이라든지 기타 다른 유형의 표절은 수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적발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표절을 했다면 이후에는 언제나 적발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시릴 버트나 아이작 뉴턴과 같은 그 옛날의 저명한 학자들의 결함이나 부정행위도 결국에는 드러났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44] 

표절 문제가 비록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통상적인 학구적 삶의 한 측면으로서 다뤄지지 않고 무조건 터부시만 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는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45] 

공론화를 통해 표절 및 기타 학계의 도덕률 위반 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임회피? RESPONSIBILITY?

현재 학적 자격미달 및 표절에 대한 대학의 태도와 학적 조사 절차의 부재를 보여주는 징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련 의혹을 조사하는 것에 대한 학계의 책임 회피이다. 

스파우츠 박사가 뉴캐슬 대학교에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을 때, 뉴캐슬 대학교 당국은 이 문제에 대한 조사 여부는 윌리엄스에게 박사학위를 내준 서호주 대학교의 소관이라고 답변했다.[46]

학교 측의 이러한 책임 회피의 논리가 허술하다는 것은 몇 가지 가상의 사례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가령, 어떤 뉴캐슬 대학교의 교수가 이전에 일했던 기관에서 뇌물 수수나 횡령에 연루되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고 하자. 뉴캐슬 대학교 측에서 이를 그저 다른 기관의 문제로 치부하고 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설사 이전 기관이 그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교원이 다른 연구기관에서 저지른 논문 표절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보 받았다면,  설령 과거 기관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렸더라도 대학 당국은 새로운 조사에 착수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에서 대학이 당연히 개입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보다 덜 극단적인 사건들에서는 대학의 책임 회피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도 분명치는 않다.  

얼핏 보기에는 흠잡을 때가 없는 이 논점(조사 여부가 뉴캐슬 대학교의 소관이 아니라고 하는)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스파우츠가 제기한 의혹에 대하여 뉴캐슬 대학교 측이 아무런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명분이기 때문이다.[47] 뉴캐슬 대학교의 교원들 다수도 윌리엄스 박사논문의 문제는 윌리엄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서호주 대학교의 책임이라는 논리에 동의했다.[48]

조사를 거부하는 어떤 명분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 대학교 평의원회에는 원한다면 자교 교원을 조사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49]

한편, 스파우츠 박사가 서호주 대학교 측에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자,[50] 서호주 대학교에서는 책임을 윌리엄스 박사논문을 심사했던 심사위원들과 공식 절차의 준수의 여부에 돌렸다.[51] 

이는 책임을 거부하는 관료주의의 한 예로 해석할 수 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논문심사위원들의 익명성이 유지되므로 그들에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익명성은 학계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조리들의 원인이 되고 부조리를 감추기 위한 방편이 된다.[52] 스파우츠 박사가 보기에 학교 측의 저와 같은 책임 회피는 그의 지적을 묵살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의 대중적인 캠페인의 강도를 더 높여야할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개적인 조사를 수행할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는 선임 학자의 임용 적절성이나 표절 여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학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표절 문제가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따라서 표절이 심각한 위법 행위라고 인식되므로, 연관법칙에 의하면 표절 문제를 은폐한 자들도 역시 부정행위에 참여한 거나 다름없다. 

같은 논리로 논문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거니와, 학적 자격증명을 바탕으로 교수 임용을 담당하는 인사위원들도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된다. 

원칙적으로는 이것이 올바른 관점이다. 논문 심사위원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심사와 검토는 학계의 질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며, 이 영역에서의 지적 나태는 ‘엉터리 학자(shoddy scholarship)’를 양산케 하는 주요 요소이다.[53]

하지만 더 현실적으로 보면, 논문 심사 절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연구자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밖에는 달리 평가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논문의 방법론, 연구결과 또는 결론에 대해 세심하게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문에서 표절 단락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논문 심사위원들을 비난하는 것은 불공평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논리의 연장 선상에서 논문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통과했다고 그것을 누군가의 학적 능력을 증명해주는 불변의 표지로 봐서도 안될 것이다.[54] 이는 문제의 책임이 논문 심사위원들에게만 있다거나, 공식 절차를 밟았다는 이유로 학위논문이나 기타 학적 결과물을 재조사하기를 거부하는 근거의 허점을 보여준다.  

학적 자격미달 및 표절 의혹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표준적이고 공개적인 절차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 그 중요도에 대해서, 그 책임에 대해서 융통성 없고 비현실적인 태도가 계속 팽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에서 논한 바는 스파우츠 박사의 의혹제기가 근거로써 제대로 뒷받침될 수 있냐 없냐, 또 의미가 있냐 없냐를 떠나서 유효하다. 

표절이 입에 담기도 힘든 행위로 간주되는 현 상황에서는, 신빙성 있는 증거가 없다 해도 의혹 제기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에게 크게 타격이 되는 일일 수 있다.

심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비롯하여, 실제 학계에서의 ‘엉터리 학자’ 및 표절의 빈도와 중요도와 관련해 우리가 좀 더 현실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표절로 고발된 이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상황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개혁을 향해 TOWARDS REFORM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 표절 의혹 사건은 학적 자격미달 및 표절, 윤리 위반에 대한 제재방법에 대해 학계가 취하는 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개선된 규칙과 절차, 태도의 전환만으로는 상황을 바로잡기 부족할 것이다. 

위에서 필자는 학적 자격미달 및 표절 사건에 대해 정식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조사의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서 회피할 수 없도록 정식으로 해당 의혹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절의 실제 분량, 정도, 그리고 다른 학적윤리 위반행위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 심각성을 고려함에 있어서, 표절에 대한 인식이 더 현실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표절에 대한 조사가 표절 의혹이 제기된 이에게만 불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표절 및 기타 비슷한 문제들이 일단 투명하게 공론화되는 일이다. 단, 거듭 얘기하지만 학계에서 정식 절차와 모범적인 조사과정을 수립하는 것이 이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개혁을 강하게 저지하는 것은 바로 상당수 학자들, 특히 저명한 석학들이 누리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학자들은 학적 자격미달과 표절과 같은 학문적 “죄악"이라고는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상아탑의 고결한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주요 관계자들과 학자들이 지금처럼 "터부"시되는 주제들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와 책임의 감수를 피하려고만 든다면,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을 둘러싸고 일어난 분란과 같은 사건들이, 비록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브라이언 마틴 교수의 다른 논문들 :




조국 민정수석과 손석희 JTBC 손석희 사장, 김상곤 교육부장관 논문표절 사건 :




감사의 말 Acknowledgements 

논문을 작성하면서 앤 베이커(Ann Baker), 데이비드 블랫(David Blatt), 마크 디센도프(Mark Diesendorf), 코 도엘레먼(Ko Doeleman), 클라이드 맨웰(Clyde Manwell), 세드릭 퓨(Cedric Pugh), 마이클 스파우츠(Michael Spautz), 그레이엄 워커(Graham Walker), 그리고 기타 익명으로 남길 원했던 다른 동료들로부터 유용한 고언을 얻었다.  


각주 Notes 

[1] 다음은 본 사건과 관계된 유용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는 문헌들이다. : M. P. Carter, G. Curthoys and K. E. Lingren, 'Report from the Committee established in reference to the dispute in the Department of Commerce', University of Newcastle C.128:79, 4 December 1979; M. D. Kirby, K. R. Dutton, L. Gibbs and A. Oliver, Committee of Inquiry into the Conduct of Dr. M. E. Spautz, Senior Lecturer, Department of Commerce, 'Report of the Committee', University of Newcastle C.55:80, 30 April 1980; G. C. Curthoys et al., Executive of the University of Newcastle Staff Association, 'Report of the Executive to the members of the Staff Association on the recent dismissal of a tenured member of the academic staff of the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Newcastle Staff Association, 11 July 1980; anonymous, 'Lecturer dismissed!', Opus 4 (University of Newcastle Students' Association), no date (ca. June 1980), pages 4-6; M. E. Spautz, 'How I got railroaded from the University of Newcastle for blowing the whistle on the fraudulence of Al Williams', 1 February 1981(a). Dr Spautz has produced hundreds of documents relating to his case; a 'condensed catalog' is contained in M. E. Spautz, 'Memo', 18 June 1981. These may be obtained from Dr Spautz, 31 Scott Street, Flat 16, Newcastle NSW 2300. Contributions toward costs of reproduction would be appreciated by Dr Spautz.

[2] Curthoys et al. (note 1), paragraph 2. 스파우츠 박사에 따르면,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의 결함 문제는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지적해주어서 알게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Spautz, 'How I got railroaded' (note 1), paragraph 3.

[3] M. E. Spautz, letter to A. J. Williams, 8 May 1979.

[4] Curthoys et al. (note 1), paragraph 4.


[6]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은 스파우츠 박사의 수많은 메모랜덤의 주제였다. 필자가 알기로 유일하게 이 문제에 공식적인 관심을 보인 이들은 카터 등 연구진들이었다: Carter et al. (note 1), pages 2-3.

[7] 'Second Professor of Commerce', University News, volume 3, number 3, page 3 (24 March 1977).

[8] 다음 실례를 보라. Peter Blunt, 'Publish or perish or neither: what is happening in academia', Vestes, volume 19, pages 62-64 (1976).

[9] Morris Kline, Why the Professor Can't Teach: Mathematics and the Dilemma of University Education (New York: St. Martin's Press, 1977).

[10] A. J. Williams, 'Uni expert tells -- why small businesses fail; size and age are critical factors', Real Estate Journal, pages 16-18, 22 (April 1975); 'Entrepreneurs -- a neglected national resource, says lecturer; factors which make for success', Real Estate Journal, pages 14-16 (May 1975). 이 자료도 살펴보라. Alan J. Williams, 'The independent entrepreneur', in Allan Bordow (editor), The Worker in Australia: Contributions from Research (St. Lucia: University of Queensland Press (1977), pages 113-147.

[11] Williams, Real Estate Journal, May 1975 (note 10), page 16; see also University News (note 7).

[12] B. A. Quigley, Real Estate Institute of New South Wales, letter to M. E. Spautz, 2 August 1979.

[13] Michael Batten, 'Are you really suited to run your own business?', Rydge's, pages 67-69 (January 1978).

[14] A. R. B. Smith, Rydge Publications Pty. Ltd., letter to M. E. Spautz, 25 July 1979.

[15] Robert K. Merton, 'Priorities in scientific discovery',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ume 22, pages 635-659 (1957), 이는 다음 서적으로 재발간됐다. Robert K. Merton, The Sociology of Science: Theoretical and Empirical Investigatio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pages 286-324.

[16] Michael J. Mahoney and Terrence P. Kimper, 'From ethics to logic: a survey of scientists', in: Michael J. Mahoney, Scientist as Subject: The Psychological Imperative (Cambridge, Massachusetts: Ballinger, 1976), pages 187-193에서는 ‘동료의 품성을 비판한 적 있는 사람들의 평균 견적 백분율’에 대해 각각 물리학자(10%), 생물학자(15%), 심리학자(34%) 및 사회학자(34%)들이 추정한 수치를 제공한다. 또한 다음을 참고하라: Ian I. Mitroff, The Subjective Side of Science: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the Psychology of the Apollo Moon Scientists (Amsterdam: Elsevier, 1974).

[17] F. Yates, 'Theory and practice in statistics', Journal of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 Series A, volume 131, pages 463-477 (1968).

[18] Leroy Wolins, 'Responsibility for raw data' (letter), American Psychologist, volume 17, pages 657-658 (1962); Stanley Schor and Irving Karten, 'Statistical evaluation of medical journal manuscripts',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volume 195, pages 1123-1128 (28 March 1966); Sheila M. Gore, Ian G. Jones and Eilif C. Rytter, 'Misuse of statistical methods: critical assessment of articles in BMJ from January to March 1976', British Medical Journal, volume i, pages 85-87 (8 January 1977).

[19] Theodore Xenophon Barber, 'Pitfalls in research: nine investigator and experimenter effects', in: Robert M. W. Travers (editor), Second Handbook of Research on Teaching (Chicago: Rand McNally, 1973), pages 382-404.

[20] Jerome R. Ravetz, Scientific Knowledge and its Social Problems (Oxford: Clarendon Press, 1971), page 50.

[21] Kirby et al. (note 1), page 34.

[22] William D. Garvey and Belver C. Griffith, 'Scientific information exchange in psychology', Science, volume 146, pages 1655-1659 (25 December 1964).

[23] M. E. Spautz, 'Critique of the first draft of Brian Martin's article entitled "The Spautz case"', 2 August 1981, page 2.

[24] Batten (note 13), page 67. 도입부에서 편집인의 논평을 보라. Williams, April 1975 (note 10), page 16.

[25] 이러한 논점들을 다루는 몇몇 탁월한 연구들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Joel Primack and Frank von Hippel, Advice and Dissent: Scientists in the Political Arena (New York: Basic Books, 1974); Phillip Boffey, The Brain Bank of America: An Inquiry into the Politics of Science (New York: McGraw-Hill, 1975); Irving Louis Horowitz (editor), The Rise and Fall of Project Camelot: Studie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Science and Practical Politics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1967); The Insight Team of The Sunday Times (Phillip Knightly et al.), Suffer the Children: The Story of Thalidomide (London: Andre Deutsch, 1979); Brian Martin, The Bias of Science (Canberra: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 (A.C.T.), 1979).

[26] The 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 of Historical Principl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3).

[27] Robert Jay Lifton, The Broken Connection: On Death and the Continuity of Life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79), page 24.

[28] ‘잠복기억현상(cryptomnesia)’이라고도 하는데, 다음 문헌을 보라. Merton, 1973 (note 15), pages 402-412.

[29] 적절한 인용규칙과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Ravetz (note 19), pages 256-257.

[30] Brian Martin, Nuclear Knights (Canberra: Rupert Public Interest Movement, 1980), pages 66-68.

[31]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 '박사논문에서의 2차 문헌에 대한 인용처리 생략 의혹 사건(A note on some cases of alleged lack of citation of secondary sources in a Ph.D. thesis)' (1983; available from the author on request) 이는 스파우츠 박사가 제시한 바 있는,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에 있는 표절 의혹 단락 8개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를 제시한다.  

[32] Carter et al. (note 1), pages 2-3 에서 윌리엄스 교수 논문과 관계하여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언급한다. 

[33] Ron Witton, 'Academics and student supervision: apprenticeship or exploitation?', Australian and New Zealand Journal of Sociology, volume 9, number 3, pages 70-73 (1973); Robin Morgan, Going Too Far: The Personal Chronicle of a Feminist (New York: Random House, 1977).

[34] Mitroff (note 16); Jerry Gaston, 'Secretiveness and competition for priority of discovery in physics', Minerva, volume 9, pages 472-492 (1971); Jerry Gaston, Originality and Competition in Science: A Study of the British High Energy Physics Communit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35] Brian Martin, 'The scientific straightjacket: the power structure of science and the suppression of environmental scholarship', Ecologist, volume 11, number 1, pages 33-43 (Jan/Feb 1981); Joan Abramson, The Invisible Woman: Discrimination in the Academic Profession (San Francisco: Jossey-Bass Publishers, 1975); Marlene Dixon, Things Which are Done in Secret (Montreal: Black Rose Books, 1976).

[36] Clyde Manwell and C. M. Ann Baker, 'Honesty in science: a partial test of a sociobiological model of the social structure of science', Search, volume 12, number 6, pages 151-160 (June 1981); Mahoney (note 18); Michael J. Mahoney, 'Psychology of the scientist: an evaluative review', Social Studies of Science, volume 9, pages 349-375 (1979); Samuel S. Epstein, The Politics of Cancer (San Francisco: Sierra Club Books, 1978); Samuel S. Epstein, 'Polluted data', The Sciences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volume 8, pages 16-21 (July/August 1978).

[37] Manwell and Baker (note 36); Mahoney, 1976 (note 16); Mahoney, 1979 (note 36); Eugene Garfield, 'From citation amnesia to bibliographic plagiarism', Current Contents, volume 12, number 23, pages 5-9 (9 June 1980); Ian St James-Roberts, 'Cheating in science', New Scientist, volume 72, pages 466-469 (25 November 1976).

[38] Leonard Price Stavisky, 'Term paper "mills", academic plagiarism, and state regulation',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ume 88, number 3, pages 445-461 (September 1973).

[39] Gaston, 1971 (note 34). See also Mitroff (note 16).

[40] Warren O. Hagstrom, 'Competition in science',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ume 39, number 1, pages 1-18 (February 1974), page 9. See also Mahoney and Kimper (note 16).

[41] Michael Parenti, Power and the Powerless (New York: St. Martin's Press, 1978), page x.

[42] “...저자 본인의 문헌을 추가시키는 것 외엔 특정 논문의 참고문헌 목록이 한 논문에서 다른 논문으로 그냥 통째로 넘어간다. 운이 좋다면 이것이 마치 플라스미드(유전자를 삽입하여 이를 다시 세균에 넣어 배양하는 유전자재조합용 DNA)처럼 차후에 관련 분야에 있어 표준적인 참고문헌 목록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다음 문헌 Chargaff, E. "Triviality in Science: A Brief Meditation on Fashions", Perspectives on Biology and Medicine 19 (1976) 324-333, 인용은 다음에서 Manwell & Baker, op. cit. (supra note10)153.

데이빗 블라트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제시하고 있다. 핵물리학 논문에서는 여러 저자들이 u 변수의 특정 함수인 오일러 함수 P(u)를 정의하고 있다. 15의 인수에 따라, 각 논문들에는 최소한 2개 이상의 다른 P(u)에 대한 정의가 있다. 각 사례 모두 오일러가 1937년에 독일어로 발표한 원문이 1차 문헌으로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함수 P(u)는 오일러의 논문에서는 정의가 내려진 적이 없다. (오일러 함수에 대한 정의는 Blatt, D. W. E. & McKellar, B. H. J. "Three-Body Force in Nuclear Matter", Physical Review C11 (1975) 614-620. 의 참고문헌 1 ,2 ,3 ,4, 15, 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43] Magali Sarfatti Larson, The Rise of Professionalism: A Sociological Analysi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page xi: “일반적으로 전문직 종사자들의 행실이 비전문직 종사자들의 행실보다 더 윤리적이라는 암묵적 가정은 경험적 근거에 의해 입증된 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Joseph Bensman, Dollars and Sense: Ideology, Ethics, and the Meaning of Work in Profit and Nonprofit Organizations (New York: Macmillan, 1967) 에서는 학계의 윤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다음도 참고하라. David Lindsay Watson, Scientists are Human (London: Watts & Co., 1938).

[44] 시릴 버트(Cyril Burt)와 관련해서는 Leon J. Kamin, The Science and Politics of I.Q. (Potomac, Maryland: Lawrence Erlbaum. Associates, 1974) 와 L. S. Hearnshaw, Cyril Burt Psychologist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9)를 보라. 아이작 뉴턴(Isacc Newton)과 관련해서는 Richard S. Westfall, 'Newton and the fudge factor', Science, volume 179, pages 751-758 (23 February 1973) 와 그리고, Frank F. Manuel, A Portrait of Isaac Newton (Cambridge, Massachusett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을 보라. 뉴턴의 데이터 변조 문제는 라이프니츠(Leibniz)와의 우선권 분쟁에서 드러났다.

[45] 예를 들어, a handbook of research methods (Barzun, J. & Graff, H. F. The Modern Researcher. Rev. ed.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70), 앞의 문헌은 표절 문제나 다른 학적인 원칙 위반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저자들의 이같은 학적인 원칙 위반 문제들에 대한 외면은, 그런 문제들이 구태여 고차원적인 논의가 필요없는 워낙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잘못이라서 따로이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학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표절 문제와 다른 학적인 원칙 위반 문제의 만연함은 저자들의 그같은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6] D. W. George, Vice-Chancellor, University of Newcastle, letters to M. E. Spautz, 6 March 1979 and 13 August 1979; D. W. George, 'Dispute in the Department of Commerce', University of Newcastle C.109:79, 8 October 1979, paragraphs 14, 38 and 39.

[47] 다음 보고서를 보라. Carter Committee (note 1), page 2.

[48] M. E. Spautz, 'Report on the Carter and Carter Committee investigations into the Williams fraud', 26 November 1979. See also George (note 46) and M. D. Kirby, letter to Brian Martin, 14 July 1981.

[49] University of Newcastle By-law 3.6.1.6.

[50] M. E. Spautz, letter to the Vice-Chancellor,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21 December 1980.

[51] R. Street, Vice-Chancellor,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letter to M. E. Spautz, 11 February 1981; R. Street, letter to Brian Martin, 28 July 1981.

[52] Richard Davis, 'Anonymity: the cancer of academia', Education Research and Perspectives, volume 6, number 2, pages 3-11 (December 1979); Dixon (note 35).

[53] Ravetz (note 20), chapter 22. 라베츠는 page 49에서 ‘엉터리 과학(shoddy scienc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54] Mahoney (note 16), pages 86-107. 



부록 : ‘편집인에게 보내는 레터’, 1969년 4월 3일 ‘리쥐스’에 제출 
Appendix:: 'letter to the editor' submitted to Rydge's, 3 April 1979

제목 : 당신은 정말로 경영 컨설팅 사업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사람일까요, 교수님?

M E Spautz, Ph.D
경영학 선임강사
상학부
뉴캐슬 대학교

마이클 배튼(Michael Batten) 기자의 기사 “당신이 정말로 자영업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일까요?(Are You Really Suited to Run Your Own Business?)”가 최근 내 주목을 끌었다 (Rydge’s, Jan. 1978).

진단 검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산업심리학자로서, 나는 그 기사에서 소기업의 실패를 예측하는 심리적 척도의 효율성에 대한 주장에 특히 관심이 갔다. A. J. 윌리엄스(Wiliams) 교수의 연구에 바탕을 둔 진술 -- 소규모 사업의 실패 사례 중 거의 90퍼센트가 사업가들의 개인적 한계 때문에 생긴다는 진술은 단번에 눈길을 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 발견은 산업 심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되어야 한다. 더구나 전문 심리학자가 아닌 학자가 그런 발견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특히나 주목할 만한 것이다. 

기사를 통해 마이클 배튼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윌리엄스)의 연구결과 중 주요 발견은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는데서 생기는 스트레스을 감당하고 적응할 수 있는 개인들이 사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라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는 꽤 그럴 듯 하다. — 하지만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나는 배튼 기자의 기사에서 진술한 내용의 바탕은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고 있다. (A study of the Characteristics and Performance of Small Business Owner/Managers in Western Australia.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1975.) 

나는 저 논문을 검토해보았고, 저 논문의 주요 결론들이 논문에서 제시한 연구 데이터에 의해 전혀 뒷받침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논문에는, 그리고 논문 연구 결과의 해석에는 몇 가지의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 그 결함들은 위의 결론과 진술을 무효화한다. 

논문의 결함은 다음과 같다: 1) 양봉분포적이고 비모수적인 데이터로부터 계산한 적률 상관 계수; 2) 단계적 회귀분석에서 추가한 변수들의 부가적 타당도에 대한 부적절한 유의성 검정; 3) 예측변수 (감정적 반응)의 포스트기준측정(성공 vs. 실패)에 의해 앞뒤가 전도된 인과 관계; 4) “소규모 사업 실패 사례의 90퍼센트”이라고 기준에서 설명한 90% 변량에 대한 부정확한 해석 등.

만약 윌리엄스 교수의 ‘주된 결과’가 뭐라도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단지 사업 실패가 실패 후 말로 표현하는 스트레스 반응과 연관이 있다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자영업에 돈을 투자한 것에 대해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동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원인이 상관관계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상관 계수의 비논리적 측면을 일단 무시하고), “사업 실패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와 같은 결론이 그 반대의 결론 (”스트레스가 사업 실패를 유발한다“)보다 더 적절할 것이다. 

배튼 기자의 기사에 나타난 다른 진술들, 예컨대 개신교도 소유주가 더 우월하게 성공적이라는 진술 등은, 그 근거의 바탕에서부터 뿐만 아니라 그 진술이 지니는 사회정치적, 윤리적 함의에 관련해서 논박될 수도 있다. 허나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하도록 하겠다.
     
배튼 기자는 윌리엄스 교수가 이러한 개인적 성향들을 가려내기 위한 질문지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퍼스와 뉴캐슬의 은행 몇 군데에서는 사업 성공을 위한 대출차의 잠재적 가능성을 평가할 목적으로 윌리엄스의 질문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전문적, 윤리적 관점에서, 이런 은행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나의 비판 논점을 고려하고서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윌리엄스 교수로부터 이에 대한 어떤 반박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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