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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의 분쟁과 교원 해임에서의 적법절차 (1/2)

“상아탑 내에서의 학자 간의 분쟁에 대한 대처 문제와, 그런 학내 분쟁 속에서도 학문의 자유를 유지하는 방법”



 아래 글은 호주 울롱공 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  사회과학과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 교수의 논문 ‘Disruption and due process : the dismissal of Dr Spautz from the University of Newcastle’을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번역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스파우츠 박사와 윌리엄스 교수 사이의 분쟁 사례는, 호주의 한 대학에서 교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2차 문헌 표절 문제 제기와 관련된 갈등 문제, 그리고 해당 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의 표절 묵인 또는 조사거부 문제와 관계된다. 

본 사례는 서울대 조국 교수(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 중)의 석박사 논문 표절 문제를 만약에 서울대 로스쿨 또는 서울대 내부 다른 후학 교수가 문제제기를 했을 경우, 어떻게 사태가 진행되었을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본 사례는 또한 조국 교수가 한 정치권력으로 완전히 전화(轉化)할 때까지 왜 그의 상습적 논문 표절 문제가 오랫동안 서울대 학내에서 전혀 부각이 될 수 없었는지, 그 상황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국 교수의 논문 표절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버클리대와 서울대가 협잡까지 서슴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상아탑의 위계, 부패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 문제는 상아탑 내부의 힘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세계 보편적 문제다. 따라서 외부세력이자 제3세력인 언론매체의 비판적 분발은 상아탑에 대한 고발자인 브라이언 마틴 교수가 주문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이에 연구진실성검증센터와 미디어워치는 브라이언 마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앞으로 그의 학계 비판 논문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아래  ‘스파우츠 박사와 윌리엄스 교수 사이의 분쟁 사례’ 관련 논문들과도 병행해서 읽어봐주시기 바란다.





참고로, 브라이언 마틴 교수는 본인의 학자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학교의 연구진실성 검증과 관련하여 과연 공적 기관과 공식 절차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더더욱 회의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브라이언 마틴 교수의 관련 후속 논문들도 앞으로 차례차례 소개하도록 하겠다.

아래 논문은 1983년도에  베스트(Vestes)’라는 학술지에 실린 것이다.(Vestes (Journal of the Federation of Australian University Staff Associations), vol. 26, no. 1, 1983, pp. 3-9) 독자 이해를 위해 일부 소제목과 사진, 캡션은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덧붙인 것임을 밝힌다.



학계에서의 분쟁과 교원 해임에서의 적법절차
(Disruption and due process : the dismissal of Dr Spautz from the University of Newcastle)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주 뉴캐슬 대학교(University of Newcastle)로부터 종신재직권을 받은 바 있는 상학부 소속의 선임강사인 스파우츠(M.E. Spautz) 박사가 1980년 5월 경, 학교로부터 공식적으로 해임 조치를 당했다.[1]  

스파우츠 박사는 이제 더 이상 학교로부터 봉급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스파우츠 박사는 자신과 관련한 학교 결정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 여전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파우츠 박사에 대한 종신교수직 해임 조치가 결정되기까지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소 괴이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필자는 여기서 스파우츠 박사의 해임 문제를 둘러싼 본 사건의 세부적 내용들에 대해서 일일이 판단하고 평가를 내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는 이 사건의 극단적인 특성 때문에 더욱 도드라지는, 보다 넓은 논점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한다.

본 논문을 통해서 필자가 다뤄보려는 좀 더 넓은 논점이란 바로 상아탑 내에서의 학자 간의 분쟁에 대한 대처 문제와 그런 학내 분쟁 속에서도 학문의 자유를 유지하는 방법과 관계된 것이다.[2]

이 논점과 관련하여 필자의 제언은 바로 학내 분쟁에 대처하는 상아탑의 메카니즘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대학 기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많은 참여와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례 The Case

스파우츠 박사는 1973년에 호주 뉴캐슬 대학교(University of Newcastle)에 선임강사(senior lecturer)로 부임했다. 그는 이전에 미국의 여러 대학교들은 물론이고 관련 업계 쪽에서도 많은 경력이 있었던 사람이다.

1976년,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는 두 번째로 교수직 임용 공고를 새로 냈다. 임용 합격자는 호주의 여러 중등, 고등 교육기관에서 연구 및 강의 경력이 있었던 앨런 J. 윌리엄스(Alan J. Williams) 박사였다. 윌리엄스 교수는 임용 1년 전인 1975년에 호주의 대표적인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인 서호주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3] 



비록 윌리엄스 교수가 임용됐을 당시는 아니지만 스파우츠 박사도 사실은 이전에 아무도 합격자가 없었던, 1974년과 1975년에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 교수직 임용 공고 때 지원했었던 과거가 있다.[4]

윌리엄스 교수가 1977년도부터 교수직을 맡은 지 약 18개월이 지난 후까지도 윌리엄스 교수와 스파우츠 박사 사이의 표면적 관계는 단지 상학부의 동료학자로서의 관계였으며 둘 사이에 어떤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1978년 하반기에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는 경영학과와 회계재무학과, 두 부분으로 분리되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경영학과의 학과장으로 임명되었다. 스파우츠 박사 역시 경영학과로 가게 됐지만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의 새 경영학과장 직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1978년 9월, 경영학과의 첫 행정회의에서 스파우츠 박사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윌리엄스 교수에 대한 학과장 지지 안건을 홀로 거부했다.[5]

이 시기부터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의 학자로서의 학적 ‘자격증명(credentials)’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데, 그는 특히 윌리엄스 교수가 받은 박사학위의 유효성과 그 학적 가치 전반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에 대한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은 그 내용이 처음에는 윌리엄스 교수와 상학부의 동료들, 대학 당국자들에게 사적으로 전달됐었다. 이후에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은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 문제에 대한 강력한 의혹 제기가 담긴 내용의 메모랜덤이 교직원들에게 널리 배포되는 형태의 대규모 캠페인으로 확장됐다.[6]

카터 위원회 구성

1979년 10월에 뉴캐슬 대학교는 M.P. 카터(M.P. Carter) 교수를 중심으로 한 3인의 교수들로 위원회(이하 ‘카터 위원회’)를 꾸려 윌리엄스 교수와 스파우츠 박사 사이의 분쟁 문제에 대해 조사를 했고 12월에 그 결과를 학교 측에 보고했다. 

카터 위원회는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윌리엄스 교수의 상학부 내에서의 연구실적, 그리고 스파우츠 박사의 윌리엄스 박사에 대한 비판 캠페인 전반에 대해 조사를 했다. 카터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가 월리엄스 교수를 대상으로 벌인 일들에 대해서 전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카터 위원회로부터 보고서를 제출받은 후에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스파우츠 박사에게 별도로 보낸 서한(letter)에도 포함된 내용의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을 통해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윌리엄스 교수의 학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에 대해 신뢰를 표명했다. 

또한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스파우츠 박사로 하여금 윌리엄스 교수에 대한 비판적 캠페인을 중단토록 결의했다. 아울러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스파우츠 박사로 하여금 그가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 문제와 학적 지위 문제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접촉하는 일을 더 이상 못하도록 결의했다.[7]

“스파우츠 박사는 카터 위원회가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 측에 제출한 보고서의 사본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파우츠 박사는 그 당시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가 자신에게 보낸 서한의 본질과 관계된 공식적 이유를 알지 못했다.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의 서한 발송 이후, 스파우츠 박사를 상학부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연구실로 재배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스파우츠 박사는 연구실 재배치를 거부했다.”[8]


이 일이 있고난 후,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의 문제에 대한 메모랜덤을 돌리는 캠페인(스파우츠 박사는 자신의 캠페인을 '정의를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justice)'이라 불렀다)을 지속했다.

“이 캠페인은 윌리엄스 교수 뿐만 아니라 부총장이었던 D.W. 조지(D. W George) 교수, 부-부총장인 M.D. 커비(M.D. Kirby) 감찰관과 같은 다른 대학 당국자들도 논박하고 공격하는 광범위한 것이었다.”[9]


커비위원회 구성

1980년 2월에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M.D. 커비 감찰관을 중심으로 한 4인의 위원회(이하 ‘커비 위원회’)를 조직했다. 커비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가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비판적 캠페인을 계속해 벌이는 일과(자신의 연구실 출입문에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는 일, 캠페인과 관련해 학교 복사 시설을 이용하는 일 등), 이전에 카터 위원회의 보고서 제출 후 통과된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의 결의안에 대한 불복종을 하고 있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커비 위원회에서는 스파우츠 박사가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의 지시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점 , 그리고 윌리엄스 교수 등에 대한 비판적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커비 위원회의 보고서는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에 1980년 5월 20일에 제출되었고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당일에 1980년 5월 23일부로 스파우츠 박사를 종신교수직에서 해임토록 결의했다.

스파우츠 박사는 해임 시점부터 자신의 비판 대상을 넓혀서 뉴캐슬 대학교의 여러 당국자들을 물론이거니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정부의 당국자에게까지도 ‘당신들이 나의 정의 구현을 방해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스파우츠 박사는 학교로부터 해임 조치를 당한지 3년이 지나도록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의 학적 결함을 폭로하고 자신의 직위 문제와 관계하여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 *

지금까지 필자가 기술한 것은 바로 스파우츠 박사가 학교로부터 해임 조치를 당하기까지의 간략한 개괄이다. 더욱 자세한 개괄 보고서는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the Executive of the University of Newcastle Staff Association)’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본 논문도 이 개괄 보고서를 적극 활용 및 인용하고 있음을 밝혀둔다.[10] 다만,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의 개괄 보고서조차도 이 사건의 복잡성이나 파문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이미 카터 위원회, 커비 위원회,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 또 스파우츠 박사 본인이 한 것처럼 이 사건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이 사건을 통해 부각되고 있는 더욱 핵심적인 주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즉,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서 보다 일반화된 논의를 할 것이다. 어떤 논점들은 구체적으로 뉴캐슬 대학교 사건의 경우에만 해당되지만, 이런 상황은 다른 호주의 대학교와 해외의 다른 대학교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필자가 논의하는 것의 많은 부분들을 충분히 일반화해서 고찰해 볼 수 있다. 


규칙, 정의, 질서 Rules, Justice and Order

스파우츠 박사의 해임 사태를 통해 제기해볼 수 있는 가장 명백한 논점은 상아탑에서 이러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적절한 규칙이나 절차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칙과 올바른 절차 이행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종신재직권을 갖고 있는 교수에 대한 해임 결정을 하는 것과 관련하여 제대로 정해진 기준이 없는 듯 하다. 대학이 종신재직권을 갖고 있는 교수를 해임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주 심각한 조치인데도 말이다. 

물론, 대학이 학칙을 통해서 해임이나 기타 다른 조치와 관련된 처리방법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학칙이 반드시 해당 대학으로부터, 또는 보다 더 넓은 공동체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하고 통일된 원칙과 절차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11]



스파우츠 박사나 학칙에 의거한 다른 징계대상자들의 관점에서는, 대학의 학칙이라는 것이 어떤 확실한 취지라는 것도 없는데다가, 또 학칙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는 자의적인 해석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둔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스파우츠 사건에서 규칙와 절차의 결함은, '학칙을 둘러싼 전쟁(the battle of the by-laws)'이라고 부를 만한 갈등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는 스파우츠 박사를 해임했던 사안과 카터 위원회와 커비 위원회를 구성했던 사안 등 기타 여러 의사결정 문제에 있어서 학칙을 적용했다. 스파우츠 박사의 해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뉴캐슬 대학교 측이 학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분명 논쟁에 부쳐볼만한 사안이다.

물론 스파우츠 박사 본인은 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했다. 총장이 대학의 전 직원에게 보낸, ‘우리는 (스파우츠 박사에 대한) 해임을 결정함에 있어서 우리 대학의 기반이 되는 법과 학칙을 심사숙고했다’는 내용의 서한은 이 문제에 대해 대학 당국이 느끼는 긴장감을 드러냈다.[12]

해임 과정에서 학칙이 철저히 지켜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보다도 더욱 중요한 문제는 바로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와 관계된 문제이다. 

(편집자주 : ‘자연적 정의’란 적법절차에 있어서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과 관련된 영미법의 주요 법리중 하나로, 1)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 재판관이 되어선 안 되고(편견배제원칙), 2) 또 그 누구라도 청문 과정도 없이 불이익을 당해서 안 된다는 원칙(쌍방청문원칙),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가 강조했듯, '유사법정으로 구성된 기관에서 위법 혐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제소를 당한 것과 관련하여 스파우츠 박사는 완전하고 효과적인 소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야 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13] (볼드 강조는 원문에 따른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일반적인 관례이다.

카터 위원회는 사실 스파우츠 박사의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내 분란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학내 분란 해결과 상학부 내의 화목 복원을 위한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서’ 조직되었다. 

이와는 달리 커비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의 비위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조직되었지만,[14] 커비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의 행위가 견책, 정직, 해임의 징계를 받아야 할지를 평가할 공식적인 권한은 없었다.[15]

스파우츠 박사는 위원회의 조사과정에 참여토록 권유받았고 실제로 커비 위원회의 청문회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그런 자리에서 이뤄진 공방의 내용이 곧 그의 해임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은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다시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의 말을 빌리자면, '학내에서 누군가에게 학칙 위반과 관련한 공식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 이전에 신고, 고발이 있었어야 함은 물론이고 어떤 학칙을 위반했는지와 관련된 공식 제소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16] 이 논점은 뉴캐슬 대학교 교원 협회의 보고서에 잘 다뤄진 바 있으니 여기서 더 논하지는 않겠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곧 뉴캐슬 대학교 당국과 평의원회가 당혹스러운 문제에 직면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상반되는 과제를 놓고 저울질해 봐야했다: 두 가지 상반된 과제란 바로 스파우츠 박사(는 물론이거니와, 잠재적으로, 다른 사람들)가 ‘청문회’와 ‘정당한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대학교 당국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질서를 유지하면서 학교의 다른 구성원들이 계속 학적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중에서도 두 번째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바로 대학교 당국과 평의원회가 취한 많은 조치들 중 카터 위원회와 커비 위원회를 구성한 일과 스파우츠 박사를 해임한 일의 주요 근거가 되었다. 

그들은 스파우츠 박사의 '정의를 위한 캠페인'이 상학부의 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했다고 여겼다. 시간을 소모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교원들간 세력 양극화를 유발하고 감정적 트라우마를 야기해서 연구 활동과 강의 활동을 크게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커비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가 뉴캐슬 대학교 평의원회의 지시사항에 불복했으며 지속적으로 윌리엄스 교수를 음해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전시하고 배포하는 캠페인을 감행하면서 이러한 목적으로 대학의 복사 기구를 계속해서 이용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커비 위원회는 스파우츠 박사가 연구실 재배치도 거부했으며 그의 캠페인을 통해 상학부 내의 연구활동도 방해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17]

학계에서의 진정한 질서란 과연 무엇인가

위원회의 결론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위원회의 결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른다. 

스파우츠 박사의 학사 방해 행위 - 또는 '학적 관례의 위반' - 의 정도가 너무도 심각해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와 같은 분열적 행위들이 발생한 데에 어떤 합당한 근거는 없었는가? 만약 합당한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방해 행위가 해임을 수반할만한 정도의 일이었는가? 

커비 위원회는 이 질문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변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학 평의원회가 스파우츠를 해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암시적으로 저 의문들에 대해 모두 ‘그렇다’라고 답변한 셈이다.

이러한 개괄들은 학적 기관의 적법 절차와 비교를 해보았을 때 무엇을 진정 학계의 질서로서 인정해줘야 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대학 당국자들은 질서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규칙과 절차를 제정하고 준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대학 당국자들이 선호하는 '질서'란 그들의 입맛에 맞는 극히 제한적인 질서라는 것이다.  

대학 당국자들이나 선배 학자들이 후배 학자의 연구활동 및 강의활동에 대해 과도한 심사를 한다든가, 강좌 폐지, 연구비 삭감, 또는 사소한 괴롭힘과 같은 방식을 동원하여 방해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저항적 소수파 지식인(dissidents)'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에게 자행된다.[18]

현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학내 절차의 결함과 ‘질서’ 유지에 대한 집착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스파우츠 박사의 소위 ‘학내 분열’ 사건을 악화시킨 듯하다 (일단 그런 분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첫째,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에 대한 스파우츠 박사의 의혹제기에 대해서 대학 당국의 응답 부재 또는 책임 회피가 있었다.[19] 

이러한 응답 부재는 부분적으로 학계의 분쟁을 다루는 데 있어서 딱히 확립된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약 초기 단계에서 대학이 어떠한 조치라도 취했었다면 추후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완화시켰을 수도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역전된 도발(inverse provocation)‘이다. 스파우츠 박사가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 문제에 대해서 질의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서, 윌리엄스 교수는 이와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일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반박을 시도하지 않았다. 

스파우츠 박사의 의혹제기가 비록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윌리엄스 교수는 학자로서의 직업 정신에 따라 최소한 학문적인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대응을 했어야 했다. 

더군다나 교수로서, 즉 학계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윌리엄스 교수는 학문적인 대응을 했어야 옳았다. 특히나 윌리엄스 교수가 학술지에 발표한 실적이 없는 관계로 학술지를 통해 그에게 도전장을 던질 수 없던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윌리엄스 교수는 학계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 어떠한 공론장에서도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대학 당국자들이 윌리엄스 교수에게 스파우츠 박사에게 대응을 하도록 종용했다는 증거도 없다. 이러한 무대응은 스파우츠 박사의 행동을 더욱 격화시켰으므로 암묵적 도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학 당국의 질서 유지에 대한 집착이 상황을 악화시킨 요소로 그 두 번째는 스파우츠 박사로 하여금 캠페인을 중단토록 명령한 카터 위원회의 권고 사항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그와 같은 결정이 반드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는 기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학내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더 우선을 둔 결정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위원회 보고서가 띠었던 징계적 성격은, 보고서의 결론에 맞추어 스파우츠 박사에게 내려진 명령에 의해 연장되었는데 이 명령은 위원회가 어떤 논리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설명하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20]

궁극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스파우츠 박사가 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자신의 입을 봉쇄하려는 시도(blackout)로 받아들이고 추후 '정의를 위한 캠페인'을 보다 크게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학계의 관례’와 관련된 논점 The issue of 'normal academic practice' 

스파우츠 박사의 해임 문제로 인해 부각되었던 중요한 문제는, 커비 위원회가 거론한 바 있는, 스파우츠 박사가 따르지 않았다는 '학계의 관례(normal academic practice)'에 대한 기준이다. 

1979년도 하반기에 접어들었을 시기에 스파우츠 박사가 배포했었던 ‘메모랜덤’에는 대부분의 논문이나 학술지에서 쓰이는 '학술적 언어'가 아니라 '대중적 언어'가 쓰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본 논문의 부록에 수록돼 있는 메모랜덤을 보면 스파우츠 박사의 ‘대중적’ 문체가 어떤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학술적 방식으로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 문제에 대한 비판을 했을 때와 극명히 대조된다. 

스파우츠 박사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어체적이면서 강압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윌리엄스 교수를 포함한 대학 당국자들과의 접촉에 실패하고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에 대한 비판도 학술지들에서 게재가 거부당하자, 스파우츠 박사는 자신이 느끼는 불만사항을 들어줄 청중을 확보하고자 일부러 그와 같은 문체를 사용했던 것이다.[21]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구어체적이고 강압적인 언어의 사용이 본질적으로 비학술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학계의 논쟁에서는 격식을 차린 언어와 문체를 사용하고 정치인들이나 택시기사들의 논쟁에서는 다소 다른 언어와 문체를 사용할 뿐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합당한 결론은 학술적 언어와 문체가, 학술적 결과물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학자들은 학술적 언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고(최소한 학계 공론장에서는),[22] 학자가 아닌 이들은 비학술적 언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학술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학술적 결과물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학술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학식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학술지와 같은 학계의 공론장에서 사용되어온 언어의 진화 양상에 대해서 논해볼 수도 있겠다. 수십 년 전에는 논문에서의 문체가 훨씬 구어체적이었다. 오늘날에는 수동체를 선호하고 저자가 자신을 지칭할 때 '우리(We)'라고 표현하는 일이 너무나도 만연해 있어서 ‘사이언스(Science)’와 같은 학술지들은 아예 능동체 사용을 요구하고 적절한 경우에는 1인칭 단수 표현의 사용을 직설적으로 촉구하고 있을 정도다. 



학술적 문체의 이같은 변화는 학문적 글에 있어서 표현의 범위를 줄이고, 잠재적 독자들을 소외시키는 것 이외에도 학술 탐구의 본령을 ‘(시행착오성의) 탐색(quest)’이 아닌 ‘(오류가 없는) 연역(deduction)’인 것처럼 왜곡시킨다.[23]

각 개인들이 단조로운 문체를 선호하는 오늘날의 학술지 편집 경향과 학계의 선호에 맞서기는 너무나 어렵다. 능동적이고 직설적이면서 참여적인 문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칠고 비객관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문체의 논문은 비학술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학술지에 게재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 학계에서의 학적 표현 방식에 대한 규범은, 스파우츠 박사가 상학부 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한 몫 했을 수 있다. 해임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말이다. 물론 스파우츠 박사의 정도를 벗어난 수많은 감정표현에 대해서 적절한 관점을 가지는 것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투박하고 익살스러운 신문 칼럼니스트들의 기준에 비춰보아도 스파우츠 박사의 문체는 매우 구어체적이고 직설적이다. 

언어와 문체에 대한 학자의 편견을 고려하더라도, 스파우츠 박사가 그의 글에서 과연 얼마나 ‘정도(正道)’를 넘었는지는 평가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많은 학자들이 보기에 스파우츠 박사의 캠페인 방식이 스파우츠 박사 자신에게 도로 해악이 되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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