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gary) 인류학과 어빙 헥삼(Irving Hexham) 교수의 글 ‘Forget about academic fraud - were you sexually harassed?’를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어빙 헥삼 교수의 허락을 받아 번역 소개하는 것이다.
어빙 헥삼 교수는 인류학, 종교학 외에도 연구윤리 분야에서도 국내외로 자주 인용되곤 하는 저명한 학자다. 어빙 헥삼 교수는 조국 교수, JTBC 손석희 사장 등의 표절 문제로 서울대학교와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버클리대 캠퍼스), 미네소타 대학교가 허위성 결론을 내거나 사안 자체를 은폐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자문을 구하자 본 글을 소개시켜주었으며 번역도 허락해주었다.
본 글은 캐나다 워털루(Waterloo) 대학 사회학과 케네스 웨스더즈(Kenneth Westhues) 교수의 편저인 ‘학계에서의 직장내 집단적 따돌림 : 20개 대학으로부터의 보고(Workplace Mobbing in Academe: Reports from Twenty Universities)‘(2004)에 한 챕터로 실렸던 것이다.
본 글의 일부 내용은 요약 형태로 어빙 헥삼 교수의 홈페이지에도 게재된 글에 실렸으며 해당 글은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따로 번역한 바 있다.(논문 표절 문제가 상아탑에서 다뤄지는 실태) 관련 번역 부분은 여기서도 그대로 전재한다. 본문의 사진과 캡션은 모두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별도로 추가한 것이다.
첫 번째 장 : 학적사기와 성희롱 문제에 대한 학교 당국의 대응
PART ONE: ADMINISTRATIVE RESPONES TO ACADEMIC FRAUD AND SEXUAL HARASSMENT
도움을 주려는 보직교수들을 경계하라* Beware of Administrators Offering Help*
(* 다음 내용은 필자의 친구가 실제로 겪은 내용이다. 세부적인 여러 사항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변조되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캐나다 동부의 한 유명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내 친구인 킹스턴(Kingston) 교수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한 주제에 대해서 국제 학술 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 국제 학술 대회를 조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을 얻기 위해서 그녀는 캐나다 정부 산하의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편집자주 : 약칭 SSHRC 로 우리나라의 한국연구재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여러 저명한 서적들의 저자였던 그녀(킹스턴 교수)는 이에 더해 최근의 연구 성과들도 덧붙여 자신의 학문적 경력을 소개한 후, 국제 학술 대회를 위한 기획서 제출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녀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규정에 따라 해당 국제 학술 대회를 주최하고 진행할 별도의 학내 기관도 물색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이 소속된 학과를 통해 국제 학술 대회를 개최하고자 했다. 헌데 이 국제 학술 대회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기 직전에, 그녀의 학교에서 그녀가 소속된 학과보다 더 큰 학내 학술기관의 책임자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킹스턴 교수에게 이러한 학제적 성격의 학술 대회는 자신의 담당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편의상 스내치(snatch) 교수라고 명명할, 이 저명한 학자이자 큰 학술기관의 책임자가 갑자기 자신이 기획한 국제 학술 대회를 지원을 하겠다고 하자, 들뜬 그녀(킹스턴 교수)는 곧바로 수락하였다. 그 결과, 스내치 교수와 스내치 교수가 담당하는 학내 기관이 그녀의 국제 학술 대회 기획을 처리할 책임자가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기획서를 스내치 교수에게 제출하자, 스내치 교수는 자신이 그 기획서를 검토하는데 며칠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자기가 소속된 학내 기관의 연구지원 담당부서에 이를 전달해 절차에 따라 기획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내치 교수는 이런 방법을 쓰면 킹스턴 교수가 별도로 더 해야 할 일도 없고 자신의 비서 중 한 사람이 킹스턴 교수의 기획서 사본도 만들 것이기에 따라서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킹스턴 교수가 그냥 자신이 직접 이 절차를 밟으면 안되냐고 하자 스내치 교수는 이것이 일반적인 절차이며 그녀가 더 이상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타인을 이용해 명성을 쌓다 Building a reputation on the backs of others
며칠 후 스내치 교수의 비서인 패이스풀(faithful) 씨가 킹스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기획서에서 예산안 부분에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에 패이스풀 씨는 여기 스내치 교수의 연구실로 와서 직접 문제를 해결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헌데 몇 분 후 패이스풀 씨로부터 킹스턴 교수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스내치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학교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어있다는 협박이 들어왔고, 이에 빠르게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패이스풀 씨는 그래서 근처 커피숍에서 킹스턴 교수를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스내치 교수의 비서인 페이스풀 씨는 예산안 부분이 위로 드러나도록 접힌 기획서 사본을 킹스턴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킹스턴 교수는 재빨리 기획서의 예산안 문제를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기획서 맨 앞장을 훑어보았다. 헌데 놀랍게도 기획서에는 더 이상 그녀가 기획자가 아닌 걸로 나와 있었다.
누군가가 첫 번째 장에 있는 기획자 관련 내용에서 킹스턴 교수가 아닌 스내치 교수를 학술 대회 기획자로서 바꿔치기를 해놨고, 스내치 교수가 소속된 기관의 관계자가 거기에 공식 인가도 내린 상태였다.
킹스턴 교수는 스내치 교수의 비서인 패이스풀 씨가 저지른 실수일거라고 생각하면서 패이스풀 씨에게 이를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패이스풀 씨는 스내치 교수가 그렇게 바꾸라는 지시를 명확하게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패이스풀 씨는 다른 사람의 학술 대회 기획서를 스내치 교수의 기관이 주최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제출할 때 이렇게 하는 것이 스내치 교수가 해온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말했다.
킹스턴 교수가 “도대체 누가 자신의 기획서를 그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넘긴다는 말인가요?”라고 묻자, 패이스풀 씨는 ”스내치 교수가 당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나요? 저는 항상 이렇게 하는 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동의했을 줄로만 알았어요”라고 답했다.
이어 킹스턴 교수가 ”지금껏 아무도 내게 그런 식의 제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누가 그런 식의 제안을 했더라도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혼란스러워진 패이스풀 씨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러한 문제에 대해 스내치 교수 말고는 한번도 의논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다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유감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아직도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킹스턴 교수는 자택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스내치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획서 이름 바꿔치기 문제를 거론했다. 스내치 교수는 이에 곧바로 그녀가 인가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 일환으로 자신이 이름을 그렇게 바꿨다고 답했다.
스내치 교수의 주장은, 킹스턴 교수의 이름으로 기획서를 제출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기획서를 제출하는 것이 지원을 위한 인가를 받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스내치 교수는 자신이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의 인가를 통한 지원을 받아낸 이력이 많다고 호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킹스턴 교수가 자신도 역시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으로부터의 인가 이력은 많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기획서를 제출해서 자신이 직접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를 상대해보겠다고 항의했다. 이에 스내치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만나서 논의해보자며 점심 식사를 제안했다.
며칠 후 그들은 예정대로 만났다. 스내치 교수는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기나 철회하기는커녕 자신의 인가 이력이 아주 많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기획서를 제출하는 것이 훨씬 인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킹스턴 교수가 스내치 교수의 주장에 수긍하지 않고 기획자 이름을 원래대로 복원시키라고 하자 스내치 교수는 고압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스내치 교수는 그녀(킹스턴 교수)에게 추후에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상을 받고 싶으면 자신의 조건에 동의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킹스턴 교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채 자리를 떴다.
“혹시 성희롱이라도 당했습니까?” “Were you sexually harassed?“
이 사태에 대한 킹스턴 교수의 대응은 대학교 교무부총장을 만나 스내치 교수가 저지른 심각한 부정행위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교무부총장의 주요 관심사는 그녀가 과연 ‘성희롱(sexual harassment)’을 당했는지 여부였다.
킹스턴 교수가 “아닙니다. 스내치 교수는 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부정행위를 통해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교무부총장은 급히 킹스턴 교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러면서 그냥 스내치 교수와 잘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교착상태에 빠져버린 킹스턴 교수는 결국 교무부총장에게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에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교무부총장은 그녀가 스내치 교수가 소속한 기관이 아닌 다른 기관을 통해 국제 학술 대회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와 동시에 교무부총장은 대학의 위신에 “큰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절대로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에는 이 문제를 알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스내치 교수에 대해서도 징계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교무부총장이 드디어 제대로 상황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킹스턴 교수는 교무부총장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달랐다. 새로운 학내 기관이 국제 학술 대회를 주관하게 되었음에도 스내치 교수가 여전히 킹스턴 교수를 두고 자기 밑에서 일하라며 압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 킹스턴 교수와 그녀의 남편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웃음소리만 들리는 익명의 장난 전화에 시달리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보았으나 근처 대학의 공중전화에서 걸려오는 것이라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지금도 킹스턴 교수는 스내치 교수가 당시 장난전화의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스내치 교수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부터 갑자기 장난전화가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범인을 스내치 교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하필 그 시기에 장난전화가 걸려왔던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표절의 발견 The Discovery of Plagiarism
역시 우연의 일치이지만 킹스턴 교수의 남편인 워드스미스(Wordsmith) 교수는 스내치 교수와 같은 전공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스내치 교수를, 자신의 아내와 분쟁이 생기기 전까지는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다. 헌데, 스내치 교수가 기획서 표절 문제와 관련해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식 발뺌을 한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워드스미스 교수는 일전에 스내치 교수의 저서에서 수상한 문구를 봤던 것을 갑자기 기억해내게 됐다.
스내치 교수가 해당 저서에서 학계의 한 이론 논쟁에 대해 해설할 때, 이론 주창자 중 한 사람에 대해서 “turned pink inside”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워드스미스가 알기로 이러한 특징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은, 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영국의 한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 말고는 없었다.
아내의 국제 학술 대회 기획서가 표절된 사건이 촉발시킨 기억에 따라, 워드스미스 교수는 다시 한번 스내치 교수의 저서에서 그 표현을 찾아보았다. 단락 끝에 분명히 그 특훈교수의 저서에 대한 각주(출처표시)가 달려있기는 했다. 그러나 워드스미스 교수가 다시 한번 해당 단락의 원문과 대조를 해본 결과, 스내치 교수가 대부분 그 특훈교수의 저서에 있는 문장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용부호(“”)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스내치 교수의 한 저서에서 이같은 문제를 찾아낸 후 스내치 교수의 다른 저서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봤다. 역시나 스내치 교수의 여러 저서에 걸쳐 다른 저자의 문헌에 있는 내용들이 인용부호 없이 그대로 슬쩍 바꿔치기 되어서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내치 교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표절자였다. 마지막으로 확증을 더하기 위해, 워드스미스 교수는 스내치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도 구해서 조사해봤다. 여기에서도 또한 광범위하게 표절이 발견되었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What is plagiarism?
워드스미스 교수가 스미스 교수의 저작에서 발견한 표절은 상대적으로 밝혀내기도 쉽고 저지르기도 쉬운 형태의 표절이었다. 이는 적절한 출처표시와 인용부호(쌍따옴표“”)가 없이 타인의 문헌에 있는 구체적 표현들을, 단락이나 문장째로 직접적으로 베껴오는 표절이었다.
워드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표절’이란 실제로는 타인의 작품을 단순 재생산한 것임에도 마치 독자적 결과를 만든 것처럼 오인하도록 의도적으로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타인의 지적 수고와 표현을 도용하는 일이고, 마치 내 것인 듯 사칭하는 일이다.
학계에서의 표절은 타인의 저작에서 인용부호(“”)와 정확한 출처에 대한 표기가 없이 반복적으로 4개 단어, 혹은 그 이상의 단어를 가져와 그것을 마치 자신의 연구 결과물, 학적 결과물인 것양 하는 것이다(Academic plagiarism occurs when a writer repeatedly uses more than four words from a printed source without the use of quotation marks and a precise reference to the original source in a work presented as the writer’s own research and scholarship).
(편집자주 : 텍스트를 인용부호(“”) 또는 출처표시 없이 그대로 베끼는 표절은 ‘텍스트 표절’이라고 하며, 가장 확증이 쉬운 형태의 표절이다. 영어로는 이런 표절을 'verbatim copying', 'word-for-word plagiarism', 'copy & paste'라고 칭한다. 참고로, 어빙 헥삼 교수나 캐나다 대학에서의 텍스트 표절 판정 기준과는 별개로, 국내외로는 표현을 그대로 베끼는 ‘텍스트 표절’의 경우 컴퓨터과학이나 언어학적 연구결과를 근거 통상 6단어 연쇄 길이를 최소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상용적인 표현인 아닌, 매우 특징적인 표현을 베껴왔을 경우는 심지어 2단어 연쇄로도 표절 판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6단어 연쇄도 표절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6단어 연쇄’ 표절 판정 기준에 대한 소고)
설사 이처럼 타인의 지적 수고의 결과물을 그대로 베껴오는 일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표절은 발생할 수 있다. 타인의 학적 결과물을 다루는 일을 한다면 마땅히 진지한 상호 작용으로서의 논쟁점을 추가한다든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든지, 또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는 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수고가 없이 단순 말바꿔쓰기(paraphrasing)의 연장에 불과한 일만 하는 것도 일종의 표절이 될 수 있다.
노골적인 표절은 독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낯이 뜨겁게 만드는 그런 표절이다. 이런 표절은 해당 학자가 인용했다고 하는 텍스트의 출처를 실제로 확인해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다 적발할 수 있는 그런 표절이다. 다시 말해 너무나도 노골적인 표절이라서 최소한의 학문에 대한 열정, 또는 학적 지능만 있다면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표절이라는 뜻이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스내치 교수의 저작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그런 노골적인 표절이었다.
표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Taking plagiarism seriously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발생했던 표절 혐의 사건(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 November 5, 1999, p. A18-20)에서 해당 학교의 일반교수들과 보직교수들은 사안에 걸맞지 않게 대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잘못된 대응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슈워츠(Michael Schwartz) 교수는 예의 사건에서 표절의 증거들을 검토한 후에 “물론 이 경우에 인용부호(”“)를 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들이 옮겨진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이 중범죄는 아니다”(op. cit p. 19)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슈워츠 교수와 같은 학자들의 주장은 “표현의 도용인 ‘텍스트 표절’보다는 생각의 도용인 ‘아이디어 표절’을 경계해야 한다”(op. cit)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구구한 변명에 불과하다. 슈워츠 교수는 ‘아이디어 표절’이, 표현과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하는 ’텍스트 표절‘보다 표절임을 증명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용부호(“”) 없이 타인의 표현을 그대로 자기 문헌에 복사해서 붙여넣는 것은 표절임을 증명하기가 간단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표현이 아닌 추상적인 생각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돌고 도는 법이다. 또한 사람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을 시에도 비슷한 환경이라면 닮은 생각을 낳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생각의 도용인 ’아이디어 표절‘은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표현’과 관계된 표절은 무시하고 ‘생각(아이디어)’에 관계된 표절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은, 학계에서 표절자가 계속 활개치도록 조장하는 수가 있다. 인용부호 없이 타인의 표현을 그대로 복사해서 이용하는 것과 출처를 표시하는 일을 생략하고 대충 말을 바꾸어 쓰는 방식으로 표절을 하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인용규칙 위반으로서의 표절이 제 3자가 인식하기 쉬우며 표절임을 증명하기도 쉽다.
자신들의 동료가 학적 사기꾼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학자들은, 그냥 에둘러서 대충이라도 원 저자의 문헌에 대해서 논문에 언급했었다면 인용부호가 없더라도 표절 혐의를 받아선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저런 식의 주장은 법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타인의 문장을 차용했을 시에 설사 각주로 출처표기를 했어도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것은 표절 혐의에 대한 적절한 변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나폴리타노와 프린스턴 대학교 재단 사이의 분쟁 사건(Napolitano v. Princeton University Trustees)에서 법정의 명확한 판단이기도 했다.(Cf. Ralph D. Mawdsley, Legal Aspects of Plagiarism, Kansas, National Organization on Legal Problems of Education, 1985)
저런 식의 주장으로 표절을 변호하는 학자들은, 자기 수하 은행 직원이 은행의 돈으로 마음대로 투자를 하고 다녔음에도 대충 원금은 돌려놓았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은행 지점장과 같다. 비록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애매한거 아니냐는 식이다. 법원 그리고 경찰은 이런 식으로 수하 은행 직원을 변호하는 지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표절자가 저 은행 직원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편집자주 : 어빙 헥삼 교수가 위에서 언급한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표절 사건은 텍사스 A&M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발생했던, 선후배 교수들끼리의 표절 혐의 고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진상규명 문제가 대학조사위원회, 미국사회학협회, 미국국립과학재단으로까지 넘어가 미국 학계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빙 헥삼 교수도 인용한 미국의 고등교육전문지인 ‘크로니클오브하이어에듀케이션(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의 ‘텍사스 A&M 대학교에서의 연구부정행위 의혹 문제에 관련된 분쟁이 한 학과를 무너뜨리다(At Texas A&M, Conflicting Charges of Misconduct Tear a Program)’라는 제목의 1999년도 기사가 가장 읽을만 하다. 이 사건은 어빙 헥삼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표절 문제 제기에 있어서 인용부호(“”)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었으며, 무엇보다 고발자와 피고발자가 모두 조금씩 연구부정행위 의혹이나 종신재직권 문제가 있어서 쌍방 모두의 경력과 명성에도 큰 타격이 갔던 사건이다. 여러 교수들이 연루된 사건이다 보니 이 사건은 텍사스 A&M 대학교 사회학과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후유증을 남겼는데, 표절 문제가 학계 외부의 개입없이 학계 내부적으로, 자체적으로 정리되긴 무척 어렵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스내치 교수의 도작(표절)을 고발하기로 한 결정 The decision to report Professor Snatch’s fraudulent work
자신의 아내(킹스턴 교수)가 스내치 교수로부터 다시는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의 인가를 통한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식의 지속적인 협박을 받게되자 워드스미스 교수는 스내치 교수의 여러 연구부정행위 문제들에 대해 정식으로 제소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를 위해 스내치 교수의 표절 행위에 대한 예시가 담긴 50페이지가 넘는 서류를 준비했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학장에게 스내치 교수에 대한 제소장을 제출하자, 학장은 유감스러워하면서 만약 스내치 교수가 무혐의로 결론이 난다면 제소자인 워드스미스 교수가 대학으로부터 징계를 받게되거나 법적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장은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이번 제소는 그냥 취하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하지만, 워드스미스 교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상황은 충분히 심각했고 또한 자신이 제시한 증거 자체가 워낙 명백한 것이었다.
이에 그는 스내치 교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스내치 교수에 대한 연구부정행위 혐의 제소를 끝까지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행정적 정의(正義) Administrative Justice
스내치 교수의 연구부정행위 혐의에 대한 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정식 심리 절차가 완료되기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워드스미스 교수는 도서관에서 주요 문헌들에 대한 복사 기록들을 계속 살피면서 스내치 교수에 대한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들이 자신이 제출한 스내치 교수의 표절 증거 자료와 원문들을 실제로 대조하는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워드스미스 교수는 스내치 교수가 표절을 했음을 증빙하는 자료를 (필자를 포함한) 신뢰하는 일부 학자들에게 보내 솔직한 의견도 구했다. 그들도 스내치 교수의 저작에 명백히 문제가 있다고 알려왔고, 제소도 정당하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연구진실성위원회의 본회의가 열리기 일주일 전, 학장은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장이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에서의 중요한 위원회 위원직을 피조사자인 스내치 교수와 같이 수행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방금에야” 알게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장은 그래도 연구진실성위원회가 결정하는 사항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진실성위원회의 본회의가 열렸을 때 제소자인 워드스미스 교수는 참석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도서관 복사 기록들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 중 아무도 표절 증거 자료와 원문을 실제로 대조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워드스미스 교수는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동료 교수로부터 스내치 교수가 오후 내내 대학의 변호사와 함께 학내의 비공개 현안에 대해 의논을 했다는 사실도 전해들었다.
연구진실성위원회 본조사가 종료된 후 6주 정도가 지나자 학장은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자신이 연구진실성위원회로부터 결과 보고서는 받았지만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학장에게 도대체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물어보았지만 학장은 아직 아무런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채로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3번, 혹은 4번 정도 정보 공개를 요구한 끝에, 학장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스내치 교수의 부정행위 문제가 불거진 것은 악의적 제소에 의한 것은 적어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따라서 관련해 제소자인 워드스미스 교수가 징계 또는 법적 소송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학장은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워드스미스 교수로부터 제출받은 여러 표절의 예시들에 대해서 단지 한 특출난 학자가 과로를 겪다보니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빚어진 실수라는 식 판정을 내렸다.
사실 워드스미스가 제출했던 다수의 표절 관련 예시들은 다른 학술 저서도 아니고 스내치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나왔다. 또 여기에는 그가 원문의 오탈자까지 그대로 표절을 한 사례가 있음에도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그런 판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워드스미스 교수가 제출한 제소장의 일부 사소한 기술적 실수에 오히려 집중을 했고, 스내치 교수가 학적 결과물들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학적 사기(academic fraud)를 저질렀다는 핵심적 쟁점에 대한 심각한 논의는 회피해버렸다.
이러한 결과를 받아본 워드스미스 교수는 학장이 왜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그같은 판정 내용을 알려주는 일을 그토록 오래 미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워드스미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학내 풍문을 듣게 되었다. 교무부총장이 비록 스내치 교수의 표절에 매우 분노하긴 했지만,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과 같이 연구윤리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기관에 스내치 교수의 문제가 알려져 학교가 그 어떤 불이익을 당할까봐 학교에서도 이 문제로 따로 공적인 조치는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 결과, 스내치 교수를 다른 대학교로 전출시키도록 압력도 들어왔다고 한다. 수 개월 후 실제로 스내치 교수는 승진의 형태로 서부 캐나다쪽의 대학교에 좋은 조건의 자리로 이직했다.
첫 번째 결과물 :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 인가에 의한 지원 문제 The consequences: SSHRC Grants
한편으로 킹스턴 교수와 워드스미스 교수는 거의 9년 가까이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의 인가를 통한 지원을 받는데 실패했다. 물론, 그들은 스내치 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이리 되었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수 차례 지원 신청을 했고 때때로 매우 뛰어나다는 외부 평가도 받았지만 정작 재단 위원회에서는 항상 감점이 됐다는 것이다.
인가 관련 결정을 내리는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의 위원회에 스내치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스내치 교수의 친구들 중 일부가 참여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스내치 교수가 친구들에게 킹스턴 교수와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불이익을 주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킹스턴 교수와 워드스미스 교수의 생각은, 스내치 교수 혹은 그의 친구들이 학계에 이들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렸고, 또 이들의 연구도 전반적으로 깎아내린 것이 좌우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스내치 교수 사건의 진상을 모르는 다른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 위원회 위원들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미리 강조해야겠지만, 하여간 킹스턴 교수는 실제로 별 어려움을 겪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남편인 워드스미스 교수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연구진실성위원회의 활동이 끝난 후 시간이 흘러 스내치 교수가 결국 대학을 떠났지만 그가 소속되어 있던 학과의 학과장이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대학 업무를 명목으로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학과장은 워드스미스 교수가 일부러 스내치 교수에 대해 중상모략을 했었다는 식의 독설을 퍼부었다.
대학의 규정 때문에 공개적으로 스내치 교수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 워드스미스 교수는 결국 자신과 학장, 학과장의 회동을 주선했다. 그러나 회동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학장은 이 심각한 얘기를 하기를 거부했고, 회동 이전의 상태에서 더도 덜도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얘기한다면, 그 자리에서 학장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것은 마치 교무부총장이나 총장과 같은 상부의 어느 누구로부터 직접적인 어떤 지시를 받은데 따른 것처럼만 보였다.
두 번째 결과물 : 대학에서의 행정적 괴롭힘 문제 The consequences: administrative harassment
그 후 10여 년 동안 워드스미스 교수는 지속적으로 사소하면서도 매우 실제적인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이것은 성적 채점이라든지 기타 다른 문제에 있어 학생들의 명분없는 불만성 투서와 같은, 사소하면서 매우 거슬리는 문제 제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한번은 워드스미스 교수는 자신의 대학원생들로부터 그들이 스내치 교수의 친구였던 학과장으로부터 학과 사무실로 초청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학과장은 대학원생들에게 워드스미스 교수와의 관계에 대해 묻고선 혹시 워드스미스 교수에 대한 불만사항은 없는지에 대해 확인했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원생들은 워드스미스 교수에 대한 불만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대학원생들은 학과장이 오히려 자신들 사이에 무슨 첩자를 심으려는 것 같아 불쾌감을 느꼈다고 워드스미스 교수에게 토로했다.
그 학과장이 대학원생들로부터 워드스미스 교수에 대한 불만사항을 듣는 것을 실패하자, 해당 대학원생들도 또한 일부 교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워드스미스 교수는 알게됐다. 또한 워드스미스 교수는 자신과 함께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했던 대학원생들 중에서 매우 적은 수만이 학과의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학교에 꾸준히 항의했지만, 학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적대적인 행정적 처분을 받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워드스미스 교수는 자신이 혹시라도 스내치 교수 건에 대해 과민반응을 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이 표절이 확실할지는 몰라도 여하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표절이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인정되거나 흔한 경우였을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King)의 표절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였고 목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빌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의 표절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문에 워드스미스 교수는 표절 문제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결국 워드스미스 교수는 북미 학계에서의 표절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검증하기 위해 스내치 교수의 분야는 물론, 자신과 같은 분야에 있는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들 학자들 모두가 자신이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학계의 기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 마틴 루터 킹은 학위논문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표절을 범했던 경력이 있다. 북미의 일부 대학에서는 그의 표절 사례를 표절 예방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본보기로 쓰고 있을 정도다. 미디어오늘과 전 한겨레 논설위원인 김종철 씨는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최초로 북미에서는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마틴 루터 킹의 표절 문제 전모를 기사로써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도 표절의혹)
이러한 결론을 내린 후, 워드스미스 교수는 우연찮게 한 유명한 상업출판사로부터 어떤 원고에 대한 검토를 부탁 받았다. 그는 원고를 읽은 즉시 이 원고에 표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고를 보내준 편집인에게 연락을 취해 이 상황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됐다. 편집인의 얘기는 그를 매우 놀라게 했다.
편집인에 따르면, 자기 출판사는 정기적으로 표절 원고들을 받고있고 대략 10퍼센트에서 20 퍼센트 정도의 학자들이 표절자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편집인의 출판사는 절대로 표절 원고는 받지 않는다는 아주 엄격한 방침이 세워두었다. 헌데 편집인은 오히려 학구적 내용의 출판물을 간행하는 출판사들이 이러한 표절 원고를 받고서도 아무런 수정도 없이 출판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무척 실망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화에 근거를 두고 워드스미스 교수는 자신을 괴롭히는 학과장을 포함하여 학적 능력에서 비교적 두드러지지 못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물에 부정행위가 있는지 여부를 본격적으로 조사했었다. 편집인이 말한 대로 정말로 약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 정도의 저작물들에 노골적인 표절이 있음이 분명해보였다.
후에 그는 자신의 조사결과가 보편적인 것임을 확신케 하는 윌프리드 데쿠(Wilfried Decoo)의 ‘대학의 위기 : 연구부정행위 문제에 직면해서(Crisis on Campus : Confronting Academic Misconduct)’(2002)라는 책을 읽게 됐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자신이 특별한 내부고발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발견한 표절건들에 대해 따로 고발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신에 이러한 부정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교직원 회의에서 워드스미스 교수는 학계로 들어오려는 미래의 지원자들과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여러 가지 방안들 중에서도 특히 유럽에서 시행하는 것처럼 지원자들이 학위자격증의 공증받은 사본과 함께, 임용 지원을 하는 새 학교의 인사위원회의 검증을 거친 주요 저작물의 사본도 같이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은 예전부터 워드스미스 교수를 두고 자기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학자라는 식으로 경멸감을 표명해온 학장에 의해 결국 기각되었다. 학장은 또한 워드스미스 교수를 두고서, 매우 실망스럽게도 학적 동료의식이 없는 학자라고 지적했다. 학장의 지적은, 만약 누군가가 다른 캐나다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우리 대학으로 지원을 했다면 학위를 준 대학의 심사위원회에서 이미 면밀한 검증을 거쳤으리라는 것이다. 임용을 하는 대학의 인사위원회에서 굳이 그 학위가 정당하게 취득된 것인지, 논문을 제대로 썼는지 따로 검증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학장은 말했다.
실제로 유럽을 제외하고 전 세계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장이 얘기한 관례가 굳어져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자격증명을 의심하는 일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부정행위들을 은폐시키는 기전이 되고 있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이러한 문제를 다른 동료 학자에게 토로하자 그 동료 학자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한번은 자신이 박사논문 심사위원회의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적이 있었었다. 헌데 표절 문제가 대두되어 위원회는 박사논문 자체를 학위자격에서 철회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학원 원장의 지원을 받은 그 학과의 장이 갑자기 개입했고, 그 결과 외부 심사위원인 자신은 위원회에서 쫓겨났었다. 해당 박사논문은 결국 박사자격으로 통과되었다.
인종주의가 행정적 괴롭힘의 하나의 원인이 되는가? Is racism a factor in Administrative harassment?
사실 워드스미스 교수는 호주에서 학자 경력으로서의 모든 학위를 취득하고서 캐나다로 이민을 온 이민자이다. 그는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 전에 호주와 미국에서 몇 년간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경우와 또 아내(킹스턴 교수)가 목격한 경우를 모두 고려해봤는데, 이상하게도 자신들이 재직 중이던 대학에서 총장이라든지 부총장, 처장, 학장 등 보직교수들이 부정행위 문제로 다른 교수를 압박하는 경우는 그 대상이 주로 소위 말하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였다.
다시 말해 캐나다 이외의 국가에서 태어났거나, 캐나다 바깥의 나라에서 학위를 취득한 교수가 바로 보직교수들의 공박 대상이었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다른 대학에서 근무하는 동료 학자들에게 그쪽도 이와 비슷한 패턴인지 물어보니 그들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이러한 발견은 워드스미스 교수로 하여금 자신이 재직하는 대학교가 19세기 사람들이 인종주의라 명명했던 것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또 비록 그가 수집한 제한된 사례로써 일반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워드스미스 교수는 대부분의 캐나다 대학교들도 역시 이런 인종주의 문제에서 마찬가지일거라고 믿게 됐다.
본래 19세기의 “인종주의”는 오늘날과는 달리 단순히 피부색의 구별에 의해서만 제한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그보다는 그것은 인종적 배경과 민족적 특성에 기인한 모든 형태의 차별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즉, 남아프리카에서도 영국계 백인과 네덜란드계 백인들의 사이의 갈등은 역시나 “인종 문제”처럼 받아들여졌었고, 캐나다에서도 영국계 캐나다인과 프랑스계 캐나다인 사이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캐나다의 대학에서 인종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엘리트들이 학계를 쥐어 흔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워드스미스 교수의 추론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이 엘리트들은, 캐나다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또는 캐나다의 대학이 아닌 다른 나라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학자들을 비토하고 차별하는 듯 하다.
이것이 어쩌면 지나친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금껏 성희롱 가해자로 고발당해 중징계를 받은 학자들이 하나같이 캐나다 밖에서 태어났거나 교육받은 학자들인 이유를 설명해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무엇이 “성희롱”을 구성하는가? What constitutes “sexual harassment”?
워드스미스 교수가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살펴본 바에 따르면, 총장이나 학장과 같은 대학의 보직교수들은 학내에서 제기된 여러 성희롱 의혹 사건들을 중 무엇을 엄히 대처할지 혹은 무엇을 기각할지를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몇 명의 캐나다인 교수들이 자신의 여제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징계가 없이 넘어갔던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교수가 정말로 부적절했던 처신을 했는데 징계없이 넘어간 사건들과, 가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어떤 교수가 실제로 징계를 받는 사건들의 차이점을 만다는 것은 문제제기를 하는 쪽의 항의의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보직교수들의 태도에 달려있었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알기로는 최소 3건의 사건에서 여대학원생들이 학과장과 학장에게 항의를 했지만 오히려 여학생들이야말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그 여학생들은 보직교수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어야 했다. 만약 사건을 학교 밖으로까지 키우면 법률 관련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추후 업계에서 모든 길이 막힐 것이라고 말이다. 학생들은 그래서 사건을 쟁점화시키고 정의를 구현해보려는 과정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워드스미스 교수가 또한 관찰한 바로는 어떤 성희롱의 정황이 있었을 때 동료 교수들이나 학과장들과 학장들이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학생들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라고 했던 증거가 충분했다. 이러한 부추김에 힘입어 문제제기를 했던 대학원생들은 연구활동이나 조교활동에 있어 연구지원금과 같은 충분한 물질적인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대학원생들은 마치 2등 시민과 같은 대우를 받았어야 했고 공부를 계속 해나가는데 있어서도 학과로부터는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만 받을 수 있었다.
워드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자기가 목격한 모든 성희롱 의혹 사건들에서 학생들로부터 문제제기성 압박을 받게된 교수들은 뛰어난 연구능력과 논문 발표 실적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해당 교수에 대한 그러한 압박을 주도한 학과장들은 학계에선 상대적으로 출신 학교의 위상으로든 논문 발표 실적으로든 뒤쳐지는 사람들이었다. 성희롱 의혹 사건에서 문제제기의 희생양이 된 학자들은 하나같이 1류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매우 활동이 왕성한 학자들이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워드스미스 교수는 어떤 학자에 대한 성희롱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때 사건을 본격적으로 부각시키느냐 혹은 기각시키느냐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는, 의혹이 제기된 당사자에 대한 동료 학자들의 ‘질투심’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주 : 인종 문제가 없는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성희롱 가해자나 연구부정행위자로 찍혀서 압박을 당하는 교수들은 주로 이공계열 학자일 개연성이 있다. 대한민국 대학교는 학내외 정치에서 인문사회계열 학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총장 등 대학교내 주요 보직도 인문사회계열 교수가 주로 장악하기 때문에 이공계열 학자가 여러모로 차별을 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제기해볼만한 가설이다. 한국에서는 특정 엘리트 고등학교(가령, 경기고) 출신이냐 아니냐, 또 특히 자교 출신의 학자냐 아니냐, 어떤 정치성향을 갖고 있느냐도 역시 이런 차별 문제의 기전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장 : 캐나다 대학의 위기의 반영
PART TWO: REFLECTIONS ON THE CRISIS IN CANADIAN UNIVERSITIES
대학 보직교수들과 학적사기 University Administrators and academic fraud
워드스미스 교수가 믿는 것처럼 총장이나 학장과 같은 보직교수들이 학내의 다른 교수들에게 제기된 성희롱 의혹 문제를 자신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왜 표절 문제는 그와 비슷하게 활용하지 않는가?
무려 10% 에서 20% 의 학자들이 연구부정행위를 통해서 얻은 이력으로 지금의 지위에 올랐다고 하는데도 보직교수들이 왜 이러한 문제는 회피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특정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리고 끝맺을 수 있는 성희롱 문제와는 달리) 한 저명한 교수의 저작에서 발견된 노골적인 표절은 그 교수만이 문제가 아니라 학계 전체의 자정능력에 심각한 불신을 낳게 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장기간 재직해온 교수의 저작이 노골적인 표절을 담고 있다는 것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학계의 여러 학자들이 자신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어떤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학계에 입문하여 대학 정교수로 올라가기까지 그의 연구는 이론적으로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여러 검증을 거쳐온 학자의 저작에도 노골적인 표절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학계의 다른 구성원들인 석사과정 지도교수, 박사과정 지도교수, 졸업논문심사위원, 인사위원들, 학과장, 학장들도 다 하나같이 직무유기를 했거나 무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경우에 노골적인 표절을 적발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저자의 참고문헌에서 임의로 대상을 선정한 다음에 원문과 대조해보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논문 지도교수들에게 있어선 누구에게나 뻔히 보이는 노골적인 표절이 담긴 논문을 적발해내는 일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듯 하며, 결국 표절 논문은 속절없이 학위자격으로써 통과된다. 논문 지도 책임이 있는 이들이 직무를 유기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표절 논문을 승인한 지도교수에 대해서는 표절 문제로 처벌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이와 같은 비중으로 중요한 점은, 이론적으로는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엄격한 임용과정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졸업예정의 박사과정 학생은 본인이 고용할 가치가 있는 학인인지를 대학 임용위원회에 설득해야 한다. 임용 전에 후보자의 논문을 해당 학과에서 최소한 교수 몇명이라도 나서 검증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그러나 워드스미스 교수가 제시한 증거로 보았을 때 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교수들에게 다시 한번 더 채용절차를 강화시키는 것을 통해 연구부정행위를 방지하는 것을 요구하기에는, 그들은 이미 자신의 업무를 보는데에도 바쁜 상황이다. 이러한 학자들은 학교에 채용될 교수 후보를 고를 때, 실제 연구업적이 아닌 그저 눈에 뻔히 보이는 동료애 따위에 기대게 된다.
임용 이후에 조교수는 3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친 후 종신재직권(tenure)을 신청하게 된다. 조교수 기간 동안 그의 모든 논문들이 검토되고 분석되어야 한다. 헌데 많은 표절자들이 종신재직권까지 얻었던 사례를 본다면, 관련 논문들의 검토와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이 명백하다.
종신재직권을 얻은 이후에도 부교수, 그리고 정교수로 승진하는 동안 또 수많은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각 검증 단계에서 승진 후보자들의 논문 실적에 대한 사항이 학과장, 인사평정위원회 그리고 총장에게 보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표절을 범했음에도 적발되는 표절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승진 후보자들의 저작들을 면밀히 검증하는 일에 학과장, 인사평정위원회 그리고 총장이 사실상 실패했었다는 것이고, 이들은 그야말로 허울 뿐인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출판 또는 연구기금을 요청하는데 필요한 논문을 검증하도록 부탁 받은 학자들 중에는, 표절이나 다른 학적 사기 행위가 있는지는 전혀 검증해보지 않고 단순히 논문을 슬쩍 읽고서 의견만을 표명하는 경우도 있다. 학계의 ‘동료심사(peer reviw)'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몇몇 학술지 출판사들이 표절을 잡아내어 논문 게재를 거부하는 일이 있지만, 게재가 거부된 논문은 다른 출판사나 학술지에 투고되기도 한다(미국의 대형 출판사에 근무하는 한 수석 편집인은 자신의 출판사는 표절을 이유로 원고를 거절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그렇게 거절된 원고가 아무런 수정도 없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되곤 한다고 필자에게 알려왔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은 우리가 연구부정행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야 전문가들이 학술지나 저서를 검토하고 있는 우리의 ‘동료심사’ 시스템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표절자들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이 시스템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노골적인 표절 저작이 출판되고 있다는 점은, 학술지나 출판 분야의 심사위원 중 극히 일부만이 각주와 참고문헌의 원 출처를 살펴보고 비교해본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워드스미스 교수의 관찰 결과가 옳다면 연구부정행위 문제와 성희롱 문제의 악용은 캐나다의 대학들이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연구부정행위의 가능성과 대학 보직교수들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입안하고 시행할 때가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러 대학들의 총장, 학장 등의 보직교수들은 실제론 강의나 연구로서는 실패한 학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보직교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것이 정교수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워드스미스 교수는 이런 보직교수들 중 상당수는 학적 사기꾼들일 것이라 믿고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보직을 맡게 되었기에 추후에 자신의 학적 사기가 적발될 가능성으로부터도 역시 자신을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 보직교수들은 강사나 연구자로 있을 때도 무능했듯이, 사실은 대학 관리자로서도 무능한 이들이다. 그러나 보직교수들은 일단 대학의 관리자이기에 외부의 검증 절차를 피할 수 있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화하며 응당한 처벌을 피하고 있다.
대학 행정과 현재의 위기 University administration and the present crisis
캐나다 대학교들에 지금과 같은 위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960년대 이래 캐나다 대학교들에서의 행정 시스템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반드시 알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대학의 행정은 학술기관 측면의 관리, 그리고 거대기업 측면의 관리로 나누어져 왔고, 물론 이는 오늘날의 유럽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행정에 있어서 대학의 일반 운영적인 측면의 행정은 전문적인 행정직원들과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 고용된 서무직원들이 도맡고 있었다. 단, 새로운 교원의 채용과 승진, 그리고 강의 계획이나 교육과정 편성과 같은 (연구와 교육에 직접 관계되는) 측면의 행정은 학자들이 맡았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학자들은 강의와 연구 이외에, 학교에서의 교무적 행정을 담당했음은 물론 심지어 인사권도 관리했었다.
학장은, 비록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수업을 단축하면서 1년에서 3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임명되어 일하는 보직이었다. 총장과 부총장은 수업을 거의 담당하지 않았지만, 일정량의 수업 의무는 있었고 역시 활발한 연구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보직이었다. 이같은 보직들은 상대적으로 임기가 짧은 편으로, 보직교수들은 임기가 끝난 후에는 다시 평상시처럼 수업을 담당하기를 기대받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봉이라든지 공간구획, 예산안 편성 등과 같은 학교에서의 순수한 행정업무는 학과장이나 학장같은 학자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런 문제들은 학자로서의 길을 밟은 이가 아닌, 전문 행정직과 이를 보조하는 서무직으로 구성된 대학본부의 관할이었다. 즉, 교무 행정과 일반 행정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존재했었다.
헌데,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동안의 급격한 인구 증가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동안까지 고등교육의 수요를 증대시켰다.
이 때문에 새로운 종합대학교들과 일반대학교들이 급증했지만, 늘어나는 학생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자격 미달의 학자들도 인력난 때문에 상황이 절박했던 대학들에서 채용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자격 미달의 학자들에게 박사 학위를 취득 이후에 전임이 되자마자 출중한 강사로서의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연구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논문 발표 실적까지 요구하는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자격 미달의 학자들이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은 학내에서 보직을 맡아서 교무 행정과 강의 업무를 병행하고 있는데 심지어 연구 활동와 논문 발표 활동까지 다 같이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대학본부가 이런 항변을 받아들이자마자 그다음 단계는 학과장이나 학장같은 보직교수들이 자신들은 교무행정 이외에 전임 교수로서의 강의 업무까지 같이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학과장과 학장의 강의 시간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고, 오늘날에는 보통 학과장의 경우에는 한 학기에 하나의 강의만 진행하고 심하게는 1년에 하나만 진행하며 학장의 경우에는 아예 강의를 하지 않는다.
이런 회피술의 성공은 오랜 기간에 거쳐 이루어졌었는데 그 부산물로 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연구활동과 강의활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다양한 학내 보직들이 만들어졌다. 즉, 학과 고문직, 대학원 고문직, 부학장 등과 같은 직위가 재빠르게 생겨난 것이다.
학자로서 유망한 교수들은 보통은 자신들의 강의와 연구에만 신경을 썼었기 때문에, 학자로서 자격미달인 다른 교수들이 대학의 보직을 맡으려 하는데 있어 이의를 거의 제기하지 않었았다.
사실 학자로서는 수준이 떨어지는 교수들이라도 보직을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그래도 최소한 어떠한 형태의 책무라도 완수했고, 또 다른 교수들의 관련 부담을 줄여주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학적으로는 허울뿐인 교수들(deadwoods)'이 점차 학교의 보직을 장악해내가면서, 이들이 강의활동과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학교에서 새로운 보직를 더 만들어내고 이를 차지하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1970년대부터 대학본부의 행정직원들과 비서들이 맡았던 업무들이 점차 보직교수들의 업무로 이관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3분의 1정도의 연봉 밖에 되지 않았던 서무직들의 업무도 고연봉의 교수들의 업무로 넘어가면서 해당 업무 자체의 인건비도 상승했다. 그와 동시에 학자들이 새로이 대학 행정 분야로 유입되자 보직교수들의 연봉 역시 상승했다.
전통적으로 학과장은 보직교수로서의 대학 행정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소정의 사례비를 받았었다. 공식적으로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단, 현실적으로는 학과장은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강의실적과 논문실적을 바탕으로 한 다른 교원의 연봉 인상에 맞출 수는 없으므로 그에 대한 보상의 명목으로 고액의 연봉 인상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행정 업무에 대한 연봉 인상은 학과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구적인 연봉 인상이다. 따라서 그같은 연봉 인상은 행정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는 참으로 큰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자로서의 연구실적을 바탕으로 했다면 80,000 달러 이하의 연봉를 받았어야 할 교수들이 보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120,000 달러 가까이 받게 됐다.
필자의 이같은 주장이 잘 믿기지 않는다면 실제로 학과장, 학장, 부총장, 그리고 각 대학교 총장들의 이력서와 논문 발표 실적부터 한번 확인해보면 된다. 일반 대중의 인식과 달리 대학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교수들은 연구실적이 매우 빈약한, 허울뿐인 학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고등 교육의 미래를 결정하는 여러 정부 조직의 이사회나 위원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편집자주 : 한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가 특히 대학 정원의 확대와 대학 설립 확대의 시기였다. 특히 1995년도에 대학설립준칙안이 마련되면서 대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 기간을 전후로 하여 학위논문들의 수준, 대학 교수로 임용된 이들의 수준에 대해서 조시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발견될 개연성이 있다.)
캐나다의 대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 Regenerating Canadian Universities
워드스미스 교수는 캐나다의 대학교들은 개혁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학의 보직들에서 학적으로는 실패한 교수들을 이제 그만 끌어내리고, 양질의 전문적인 행정직원들이 이를 대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한다:
1) 학교의 일반적인 행정업무는 학적 허세가 없는 전문적인 행정직원과 이를 보조하는 서무직원에 의해 담당되어야 한다. 행정 관련 보직을 맡고 있는 정교수가 일반 행정직보다 대학에서 훨씬 많은 연봉를 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같은 조치는 주 정부가 교육예산을 크게 절약토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심지어 현재의 교무행정과 관련된 비용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조치다. 교무행정과 기타 일반행정의 분리는, 대학의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바꿀 것이고 강의가 가능한 교수의 수를 늘릴 것이며, 학교 예산을 크게 절약케 할 것이다.
2) 일부 교수가 담당할 교무행정 업무는 교육과정, 연구주제 등과 같은 대학에서의 학업과 연관된 문제에만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높은 연봉을 받는 학자들로 하여금 공간 구획이나 심지어 사무실이나 교실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같은 하찮은 업무에 종사케 하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다. 이는 인건비가 낮은, 학적 경력은 없는 서무직원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3) 학장을 제외하고 어떠한 교수도 강의 시간 단축의 특혜를 허용해서는 안되지만, 연구와 논문 프로젝트를 위한 외부 자금을 지원받았을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학생을 별도로 지도하는 것과 같은 기타 모든 행정적 업무가 교수들의 당연한 일상적 업무로 취급 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면 모든 교수가 전임으로써 강의를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강의의 양이 늘어날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과에서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교수를 더 채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것이다.
4) 학장들은 한 학기에 최소한 하나의 강의는 진행해야 할 것이며 연구활동과 논문발표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이에 더해 학장이 진행하는 강의 중 최소한 하나는 비교적 대규모의 학부생 강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야 실제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대학원생에 대한 "지도"의 형식으로써 할당된 강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회피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5) 부총장이 된 교수는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자신의 전공 분야로 학부생 강의를 진행해야 하며 비록 줄어들더라도 연구활동과 논문발표활동을 지속해야만 한다. 그래야 보직교수로서도 대학생활에서의 실제 현장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6) 대학 총장들은 그 지역사회의 대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선정되면 되는 일이다. 즉, 연구활동이 충분히 가능한 학자가 구태여 총장직을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학계와 별 연관이 없더라도 그 지역사회에서 상당히 존경받고 있는 인사가 총장직을 수행하면 된다.
7) 주립 대학의 교수들은 공무원이므로 연봉 내역은 공개되어야 하고 대중들이 이러한 정보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교수들의 이력과 눈문 발표 실적은 형식을 갖춰 인터넷에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비롯해 해당 교수들의 기본적인 학적 저작물들의 사본은 고용된 대학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누가 실제로 학자로서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며, 더러는 누군가가 맡은 교수직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궁극적으로 학적으로는 자격미달인 교수들이 학내 주요 보직에 오르는 것을 막을 것이다.
8) 교수들의 승진은 학문적 기준으로만 결정되어야 한다. 교수들이 기본적인 학교 행정 업무과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이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는 기준이어서는 안된다. 학과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정 업무는 교수라면 누구나 하는 일반적인 업무의 일부분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좋은 강의를 제공하는 것 역시 승진의 기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수라면 당연히 좋은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의란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학자의 본분인 ‘연구’의 대체물은 될 수 없다. 모든 교수들은 당연히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해야 하며, 당연한 학교 행정 업무의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을 승진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물론, 일반적인 행정업무를 수행하는데 실패하거나 날림 강의를 제공하는 교수는 승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치 못하는 한심한 교수는 당연히 승진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비록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좋은 강의를 제공하는 교수라 하더라도 논문 발표 실적으로써 드러나는 확실한 연구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역시 승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9) 연구에 있어 혁신과 창의적 사고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은 내향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종신재직권 문제와 관련되어 모든 교수의 임용 문제는 국내외로 열린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각 학과들은 교원을 다양한 이력으로써 구성토록 해야 한다. 해당 학과의 졸업생이 교원이 되는 비율은 15% 를 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교원은 일단 학문적 성과와 능력을 바탕으로 채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 연구부정행위 혐의가 있다며 보직교수로부터 문제제기를 당한 평교수는 자신의 혐의에 대한 무죄 입증을 법정에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보직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의 경우, 송사를 처리하는데 있어 무제한의 자금이 있는 듯하기 때문에 송사를 장시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교수로서는 보직교수와 법정에서 대적하는게 무척 힘겨운 일이다.
스내치 교수의 사례처럼 표절과 같은 연구부정행위에 연루된 보직교수들을 위해서도 대학의 자문변호사가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대학의 법률 비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개된 대학들의 예산안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중 극히 일부에서만 어느 정도가 법률 비용으로 소모되며 왜 비용이 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공적 자금의 남용으로 보이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학의 법률 비용 지출에 대한 주의 깊은 감시는 물론, 대학의 자문변호사를 활용하여 보직교수들을 지원하는 일에 대해서도 주의 깊은 감시가 필요하다.
11) 마지막으로, 지방 정부들은 대학 옴부즈맨들을 임명해서 대학 보직교수들의 행태를 잘 감시하고 타인과는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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