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출판사와 집필진에게 모두 829곳을 수정·보완하라고 엊그제 통보한 것과 관련해 한겨레신문이 23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를 살리려고 교육부가 ‘물타기’한다”고 비판하는 사설을 내놨다.
학생들이 배울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를 바로 잡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의 앵무새같은 이분법적 비판을 늘어놓은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매도한 이 신문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하거나 남북분단 책임이 남한에 있다는 식으로 기술한 타 교과서의 문제점은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은 이날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 지시 문제를 트집잡으면서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꼼수’일 뿐”이라며 “교육부는 이제라도 교학사 교과서 검정을 취소해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교육부 권고 내용을 살펴보면 물타기 의도가 잘 드러난다. 교육부는 애초 객관적 사실과 표기·표현 오류만 잡아내겠다고 했다가 21일 발표 때는 서술상의 불균형과 국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분석했다고 밝혔다”면서 “이들 내용이 대부분 북한 관련 서술에 집중된 것을 보면 7종의 교과서에서 흠집을 찾으려고 기준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졸속 작업을 하다 보니 권고 내용이 틀린 것도 여럿이다. 게다가 교학사 외의 교과서에서는 오탈자까지 속속 짚어내 오류 숫자를 늘리려고 한 흔적이 뚜렷하다”며 “그럼에도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가 다른 교과서의 2~4배에 이른 것은 이 교과서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8월 말 8종의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심사에서 통과된 이후 논란이 집중된 것은 교학사 교과서뿐이었다. 이 교과서는 친일파의 행위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등 역사 교과서로서 허용될 수 있는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많았다”면서 “게다가 사실 관계가 잘못 표현되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수백 곳 지적돼 교과서로서 수준 미달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수였다. 그렇다면 국편의 검정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교과서만 검정 취소하면 그만인데도 교육부는 굳이 8종의 교과서 전부에 대해 사실상의 재검정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실·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를 좌우 이념 논란으로 치환하려 한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과 새누리당 등 여권의 뜻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신문은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바꿔버린다면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역사전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교육부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기 바란다”고 밝혔다.
애초에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집중된 것은 좌편향적 시각을 가진 이들과 야당이 교학사 교과서를 마녀사냥식 트집을 잡고 비난몰이에 먼저 나섰기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이 알려지기도 전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활동을 한 사람으로 표현” 등의 허위사실들을 유포하면서 의도적으로 문제화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 신문은 의도적인 여론몰이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교학사 교과서만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제가 됐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자유언론인협회 김승근 미디어위원장은 “교육부가 교학서 교과서와 함께 다른 교과서들의 오류 수정 지시를 한 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목적의 물타기이기 때문에 그럼 다른 교과서들의 문제와 오류는 절대 수정하면 안 되고 그냥 넘어가야한다는 얘기인가? 한겨레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며 “한겨레신문이야말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정치정략적으로, 이념적으로 물타기하는 것이다. 단순오류는 물론이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미화하거나 북한의 독재체제를 비판하기보다 남한의 산업화를 헐뜯고 태어나선 안 될 존재처럼 묘사한 교과서들의 문제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수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앙일보는 같은 날 <한국사 교과서 오류 수정이 먼저다> 사설을 통해 “이러한 수정·보완은 교학사라는 우편향 교과서를 두둔하기 위한 것도, 나머지 교과서를 싸잡아 부실한 교과서로 몰고 가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내년 3월부터 접하게 되는 교과서가 정확하게 쓰여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일부 집필진들이 교육부의 수정·보완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온당하지 않다. 한국사는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이지 저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선전책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한겨레신문의 사설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였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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